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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목사 칼럼

김기홍 목사님은 18년 동안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강의하셨고
분당에 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하고 은퇴하여
현재는 목회자들의 영성훈련을 위해서
faith 목회아카데미 학장으로 재직 중이시다.
<명설교 분석2> 크리소스토무스(347-407AD)
조회 833 추천 0 비추천 0 2015-09-12 14:03 작성자 : 관리자

크리소스토무스(크리소스톰)은 귀족의 아들이었다. 안디옥에서 태어나 당시 로마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풀의 주교가 된다. 그 도시는 사치가 극에 달했으나 그의 삶은 금욕적이었다. 그가 받은 최고의 교육과 설교자로서의 최고의 존경에 비해서 그의 삶은 너무 단순했다.

스스로 적은 양의 음식을 지어먹었고 맨바닥에서 잤다. 소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자였다. 최고의 주교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물질과 명예와 권세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그것들로부터 자유하는 훈련을 해왔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사랑과 존경을 드렸다. 하지만 높은 성직자들과 궁중의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치나 사교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황후의 미움을 사서 귀양을 가게 되고 도중에 죽는다. 그 소식에 당시 모든 사람들이 슬퍼했다.

그가 얼마나 설교를 잘했던지 별명이 주어진다. 그것이 바로 크리소스토무스이다. 황금의 입이란 뜻이다. 본명은 요한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변화시켰다. 그를 아는 거의 모든 대중들로부터 완전한 지지를 받았다. 그가 설교할 때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감동이 극에 달하면 청중들은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가 황금의 입이 된 것은 그가 꼭 할 말을 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위로와 칭찬만 하지 않았다. 말씀을 거룩한 삶에 적용시켰다. 사치한 사회를 향해 책망의 말도 많았다.

그의 설교는 주로 강해였다. 성경 본문 자체의 순서를 따르는 단순한 전개 형식이었다. 그의 장점은 성경을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재능이었다. 신기하게 맥을 잘 짚었고 세상사를 잘 알았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수도사로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그의 설교는 첫째 공감이 풍부했다. 둘째 신학적 진리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데 뛰어났다. 그리고 세 번 째로 그의 설교는 열정적이었다. 한 마디로 화끈한 것이었다. 설교시에 청중에 대한 민감성이 대단해서 언제나 뜨거운 호소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아래의 설교는 예배를 안 드리고 전차 경주나 연극 구경 간 사람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당시도 오늘날처럼 예배보다는 다른 재미있는 곳에 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여기서는 지면관계상 앞부분만을 실어본다. 그의 설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음미해 보자.

 

여섯 번째 교훈

 

세상으로 가는 신자

경기장에서는 또 다시 전차경주와 사탄의 구경거리들이 펼쳐집니다. 동시에 우리 회중은 줄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금식으로 얻은 부를 낭비하지 말고 사단의 구경거리들이 일으키는 분노를 자초하지 말라 권면한 것이 이 때문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모두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할 일을 못해 의무 태만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권면이 별로 득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보십시오. 지난 번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오늘 어디 있습니까? 영적 설교 들을 기회를 버리고 경기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순절 기간과 부활절에 얻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한 영적 교제를 전부 잊어버린 것입니다.

앞으로 나는 무슨 열정으로 설교해야 할까요? 그들이 내 말에서 더 이상 도움 얻는 바가 없고 설교가 계속될수록 무관심만 더욱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나의 슬픔을 가중시키고 동시에 그들의 죄를 더욱 무겁게 합니다. 슬픔만 아니고 실망도 함께 늘어갑니다.

농부가 힘 다해 수고한 후에 땅이 그 노동에 대한 보답은커녕 돌처럼 얼어붙어 있다면 어찌할까요? 다시 경작하기가 망설여질 것입니다. 모든 노력이 헛되고 무익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생이 힘을 다해 가르쳐도 제자들이 거의 변화가 없다면 같은 열의로 가르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땅이 농부를 배신할 때 농부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고 노동의 대가는 없습니다.

영적 교육은 그와는 다릅니다. 비록 제자들이 변함없이 태만하고 변하지 않는다 해도 교사는 자기 할 바를 다하기만 하면 수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그 제자들이 태만하다고 수고에 대한 보답을 끊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듣건 안듣건 가르치는 이에게 풍족한 보상을 해 주십니다.

하지만 제 상급에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득을 보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만큼 여러분이 잘못되는 것은 내 자신에게도 손실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내 기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토록 간절히 권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으로 이렇게 계속 예배를 등한히 한다면 그 죄는 더욱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방탕한 삶의 대가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 하였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을 오늘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경멸하고 세상 따라 경주장과 사탄의 구경거리로 달려간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들의 잘못을 알기에 줄곧 가르치고 저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듯 격려했습니다. 그들에게 악으로 인해 빚어지는 해독을 가르치고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도록 고무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다 변명해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들에게 무슨 변명거리가 있을까요? 그들은 그런 태만에서 비롯되는 엄청난 손해를 입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비방의 구실도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그들을 용서할까요?

그들은 나이도 생각지 않고 죽음이 임박한 것도 모르고 과거의 죄가 얼마나 큰지 생각도 않고 더욱 자기 죄를 더하고 있는 늙은이들입니다. 젊은이들이 그들의 허랑방탕한 생활을 본받는데 누가 그들을 용서할까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식의 허랑방탕함을 바로 잡을 수 있으며 어떻게 젊은이들의 방탕한 감정을 다스리겠습니까? 자신부터 평생을 자제할 줄 모르고 살아온 주제에 말입니다. 자기 행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지겠다하더라도 그 좋지 않은 습관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신자로서 삶의 원리

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덕을 흠모하고 본받게 함으로 그들에게 준 도움에 대한 보답도 받습니다.

같은 원리로 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만 벌을 받는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허랑방탕한 삶을 할 기회와 유혹을 제공하기에 더 무서운 벌을 받게 됩니다.

나이든 분들이 그런 허랑방탕에 빠져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한 사도 바울의 권면을 청종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로서 청소년들을 어떻게 타일러야 할까요?

사도 바울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 충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우리 게으름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보는 것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허랑방탕하도록 자극하는 사람들 앞에 무서운 심판이 놓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범사에 있어서 덕에 유의하라고 권하며 말합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의 권면의 엄격함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하는 모든 일이 이런 기초 위에 서도록 책임을 지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하도록 하십시오. 여하한 행동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크리소스토무스의 설교하는 방법이다. 물론 더 길고 많은 분량이 따라 나오지만 그의 설교의 진행법과 표현을 한 부분 살펴본 것이다. 중간 중간에 소제목들은 원문에는 없지만 읽는 이를 위해서 필자가 첨가한 것이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아주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방탕함을 지적하고 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만 지적하는 게 아니다. 매사가 그런 식으로 되어서 세상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을 한탄하고 있다. 그러고도 교회에서 어른 대우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혼내고 있다.

그의 설교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성경의 원리로 설명하고 실제적인 호소로 나아간다. 그러면서 그의 어조는 차츰 빨라진다. 제스쳐는 생기에 넘치고 음성은 더욱 격렬해진다. 회중은 숨을 죽이고 간간이 요란한 박수갈채를 보낸다.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묘사한다. 그것이 영적인 축복과 얼마나 반대가 되는지 역설한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종이 주는 말씀이 허사가 될 때 잘못된 신자들에게 얼마나 손해가 오는지 지적한다. 그들은 변명할 것이 없다. 그가 이처럼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신앙적인 행동이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해를 주고 교회 전체를 비방받게 함을 말하면서 동시에 덕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도 말한다. 그들도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 그리고 교회에 유익을 준다. 결국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 이것이 신자의 삶의 원리임을 성경말씀으로 확증한다.

그는 대중을 위해서 설교하지만 그들을 기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설교자들이 칭찬 받고 자기 설교에 매혹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술을 쓰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는 칭찬에 무관심하면서 소금으로 고르게 양념을 한 감사를 만들려 한다.

그러기 때문에 황후를 비롯한 사치하고 세속에 물든 사람들의 미움을 샀던 것이다. 그의 설교를 들을수록 고위층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여기에 정치적인 성직자들이 가세하여 그를 축출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당하는 것도 주를 위해 감사했다.

그는 귀양길에서 죽었다. 유익을 보는 몇 사람은 기뻐했지만 국민 대다수는 가슴 아파했다. 그가 죽고 몇 년 뒤에 황제는 자기 가문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에게 최고의 영예를 드렸다. 고대의 설교자들 가운데 그만큼 명성을 누린 사람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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