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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목사 칼럼

김기홍 목사님은 18년 동안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강의하셨고
분당에 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하고 은퇴하여
현재는 목회자들의 영성훈련을 위해서
faith 목회아카데미 학장으로 재직 중이시다.
경건과 참경건
조회 836 추천 1 비추천 0 2015-08-28 15:20 작성자 : 관리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10:2)

 

믿지 않는 사람의 선행과 믿는 사람의 선행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예수를 믿지 않고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예수를 믿지만 하나도 본이 되지 못하는 사람보다 못한가? 실제로 가톨릭은 구제와 선행을 많이 강조하는 데 개신교는 이런 점에 아주 약하다는 비판을 듣는다. 도대체 선행과 경건은 우리 신자의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

 

많은 교회가 구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잘해주어도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에 모든 힘을 다 모은다. 어떤 교회는 구제를 가장 중요한 교회 활동으로 삼아서 TV나 매스컴에 계속 홍보하는 것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넓히고 치장하는 것을 무섭게 비판한다.

 

너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네 위의 높은 궁창을 바라보라.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뿐이니라.”(35:5)

 

선행으로 하나님께 무슨 보상을 요구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이 선행을 하면 같은 사람들에게나 유익을 주지 하나님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또한 악을 행해도 같은 사람들에게나 고통을 주지 하나님에게는 해를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선행이나 악행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말인가? 어떻게 하든 내버려두시는가?

 

하나님은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선행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세상 사람들이라도 바르게 살고 가정을 돌보고 모범적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반면에 신자로서 선행이나 구제에 뒤지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신자는 불신자보다 선행에서 더 앞서야 한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이다.

 

기도와 구제는 상달된다

 

고넬료는 이방인이었다. 로마의 백부장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국인들을 개처럼 여겼다. 하나님의 은혜 밖에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외국인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았다. 식사라도 함께 하면 부정을 탔다. 그러므로 아무리 권세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스라엘인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한 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면 놀라운 일이다. 웬만큼 훌륭해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되 그것도 훨씬 뛰어나야 그렇게 여겨주지 않겠는가. 고넬료의 인격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 이스라엘도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는 가장 훌륭한 수준이었다. 권력도 재산도 많았지만 자랑하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만 경배하고 기도와 구제에 힘썼다.

 

그의 기도는 상달되었다. 그의 구제도 기억되었다. 비록 예수를 믿지 않았고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가 한 일을 기억하셨다. 그래서 그에게 여러 가지 축복을 주셨다. 백부장으로서 권세도 누리고 물질도 부요하게 하셨다. 그 외에도 여러 세상적인 복을 많이 주셨을 것이다. 세상수준의 선행은 세상수준의 복을 준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다. 그가 그런다고 영혼까지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지옥을 면하고 죄사함을 받고 하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를 안 믿어도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겉모습은 완벽한 신자였다. 그보다 못한 신자가 얼마든지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래도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소유한다.

 

그의 영혼 그릇에 생명만 담아진다면 그의 모든 경건생활은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마치 흑백영화가 천연색으로 바뀌는 것과 같다. 그림자가 실체로 변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고넬료라는 그릇에 영원한 축복을 담으시기로 정하셨다. 그러니까 고넬료가 기도를 많이 했기에 하나님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 마음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가 유대교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대한 경건을 갖도록 은혜를 베푸셨고 다시 그 경건을 받으시고 더 큰 은혜 곧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구원의 시작도 중간도 끝도 다 하나님의 공로로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증거이다.

 

신자의 기도와 구제는 더욱 소중하다

 

고넬료의 이야기에서 볼 때 기도와 구제역시 영혼의 구원과는 별도로 필요한 것이요 유익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것은 사회를 정화해준다.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준다. 물론 그런다고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는 못한다. 그들이 악을 버리고 의의 길로 돌아서게 하지 못한다. 그래도 악을 억제하는 기능은 발휘하게 한다.

 

고넬료는 그 차원을 넘어서야 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영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기 위해서 깨끗케 하셔야 했다. 그는 아직 부정한 짐승이었다. 아직 종의 차원에서 경건한 사람이었다. 고넬료의 가장 경건한 부하도 아들이 될 수 없다. 부하가 더 훌륭해도 아들 대우는 받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도 아들로 바뀌는 과정이 필요했다.

 

베드로도 기도와 구제를 하고 고넬료도 기도와 구제를 하였다. 베드로의 것은 어떻게 다른가?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차원에서 세상에 남겨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그리고 그리스도로 그렇게 하고 있었다. 신자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한 몸이다. 세상에 보여지는 그리스도이다. 세상 사람들은 신자를 통해서만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본다.

 

베드로가 선행한 것은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그도 자신의 의지와 생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성령께서 감동으로 그렇게 하신다. 어떤 경우에는 내 영이 선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다. 여하간에 신자가 하나님을 의지해 일을 할 때는 성령이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 효력은 영원하다. 그 결과로 자신과 남들에게 영원한 삶을 준다. 그러나 고넬료의 것은 세상 차원의 것이요 세상에 머무는 동안 잠깐 유익할 뿐이다. 그것은 죄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아직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의 수준이다. 그것으로 하늘의 것을 살 수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를 깨끗케 하실 필요가 있었다.

 

더 이상 부정한 짐승이 아니라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도와 구제도 깨끗해져 능력과 효과를 얻어야 할 것이었다.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시작해도 성령이 힘을 공급하지 않으시면 사람의 것으로 그치고 만다. 어디 기도와 구제뿐이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일들은 다 성령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가? 하나님은 기도와 구제도 좋아하시지만 깨끗하게 된 사람의 기도와 구제를 더 원하신다는 점이다.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벧전4:11) 하나님은 신자에게 선행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하신다. 그것을 믿고 의지하고 하라.

 

경건생활은 범사에 유익하다

 

기도와 구제가 정말로 인정이 되려면 영혼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힘으로 차원이 다른 기도와 구제를 드리게 된다. 그것이 영적 차원에서의 축복으로 변화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죽음과 함께 모든 선행도 사라지고 만다. 여기에서 복음적이고 영적인 선행이 무엇인지 보게 된다. 절대로 간과해서 넘기면 안 된다.

 

어떤 사람의 간증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는 신자로서 사랑과 은혜로 살고저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폴란드의 한 노인 병원을 방문한다. 거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외롭게 병과 투쟁하며 자기들 생의 마지막을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젊은 사람은 58세의 여자 환자였다. 지난 8년간 말을 하지 않고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의사였지만 사랑하는 남편이 죽자 삶을 포기한다. 달리는 열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다. 열차는 목숨대신 두 다리를 빼앗아갔다. 이 가슴 아픈 여인을 보자 저절로 무릎이 꿇어졌다고 한다. 뭉툭하게 잘려진 다리에 입을 맞출 때 어떤 큰 힘이 압도하고 있었다. 그녀의 고통과 상처를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의 조국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은 부상 당한 천사입니다. 천사는 하늘을 나는데 다리가 없어도 됩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누워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병실 전체가 다 흐느껴 울었다. 그 여인의 얼굴은 빛나기 시작하였다. 간호사에게 외친다. “내 휠체어를 좀 가져다주세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렵니다.”

 

이것은 하나의 간증일 뿐이다. 그러나 큰 교훈이 실려 있다. 물론 영혼 구원이 최고의 선행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을 받으면 어떤 삶이 살아지는지 스스로 경험을 해야 한다. 영혼 구원을 실천하는 삶이 구제요 선행이요 경건이다. 나 자신이 사람들을 돕는 천사인줄을 아는가?

 

믿지 않는 사람은 주위를 밝히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자기의 힘으로 그리 해야 한다. 촛불과 같은 삶이다. 영혼이 구원받지 못했기에 너무도 부족한 힘으로 그렇게 살다가 사라진다. 또한 동시에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해결도 받지 못한 채로 살다가 간다. 최선을 다해보아도 결국은 모두가 허무로 돌아가 버린다. 작은 불빛이다.

 

신자가 되었으면서도 그냥 옛날 삶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많이 있다. 자기의 구원받은 영혼으로 비추지 않는다. 어두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빛이 요구되는가? “우리 작은 불을 켜서 험한 바다 비추세 물에 빠져 헤매는 이 건져내어 살리세.” 이것이 신자가 된 목적이다. 신자는 심지만 빌려주고 영원히 힘을 공급받는 등불임을 아는가?

 

신자가 고넬료 수준의 경건에 머물 수 있다. 구원받고 새 힘을 받았음도 자기 힘으로 선행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훌륭해도 세상적 수준에서 마쳐질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가 된다면 자신은 물론 남도 유익하게 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 방법과 힘으로 경건하라. 자신이 새로운 천사로 변했음을 알라. 마음껏 날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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