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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홍목사 칼럼

김기홍 목사님은 18년 동안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강의하셨고
분당에 아름다운교회를 개척하고 은퇴하여
현재는 목회자들의 영성훈련을 위해서
faith 목회아카데미 학장으로 재직 중이시다.
<명설교 분석1> 오리게네스(185-254 AD)
조회 867 추천 1 비추천 0 2015-09-11 17:44 작성자 : 관리자

오리게네스(오리겐)는 대표적인 알레고리적 설교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설교를 살펴보면 복음을 알레고리로 설명함을 알 수 있다. 설교자라면 누구나 무엇보다도 복음의 이해에 정통해야 한다. 그러면 성경구절을 어느 정도 알레고리로 설명해도 그처럼 감동과 영감을 준다. 오리게네스는 아름다운 언어로서 성경을 은유적으로 풀어 설명했다.


그는 헌신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건한 부친으로부터 문법, 수학, 논리학, 수사학을 배웠다. 덧붙여 매일 성경을 배웠다. 나이가 들어서는 알렉산드리아의 교리문답 학교에 들어가서 클레멘스의 제자가 되었다. 그가 16세가 되자 무서운 박해가 일어났다. 부친 레오니데스는 투옥되어 순교한다. 그리고 가족의 재산은 몰수되었다.


오리게네스는 금욕과 청빈을 실천했다. 맨 바닥에 자며 금식하였다. 그러면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공부하였다. 감독 암브로시우스는 그에게 생활필수품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사무원들과 속기사도 주었다. 나이 40이 넘어 가이사랴에서 사제로 서임된다. 후에 또 다른 혹독한 박해 시에 두로에서 체포된다. 심한 고문을 당해 건강을 잃고 69세로 사망한다.

그의 삶의 특징은 용기, 헌신, 학문적 열정, 겸손이었다. 당대의 논쟁적인 문제들을 다루었기에 다른 사람들과 갈등도 있었다. 신학 문제와 성경 주석에 집중하여 공부하였으며 그것을 문화와 연관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한 설교에는 그의 폭넓은 사상과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난다. 참으로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을 통해서 흘러나옴이 분명하다.

초기 시절의 신자들은 모두가 자신을 복음설교자로 생각했다고 한다. 오리게네스는 설교자들이 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부친도 당시 헬라 철학과 문학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철저하게 그를 훈련시켰었다. 그는 본문의 의미와 배경을 이해하는데 우선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는 깨달은 것을 아름다운 알레고리로 설명했다.


어떤 알레고리였던가? (Kerr)의 말을 들어보자. “창세기에 있어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요셉의 색동옷은 그의 다양한 지식을 의미한다. . .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정결한 동물들은 착실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명상하는 정통 신앙인을 의미한다.” 당시의 흐름대로 그도 성경의 의미도 초보적인 것과 깊은 것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이 육체, , 영으로 구성되어 있듯 성경도 삼중적 의미 즉 문법적, 도덕적,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육에 의해서 교화되고 수준이 향상되면 영에 의해 교화된다고 주장했다. 이제 그의 설교 한 부분을 살펴보고 알레고리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하자.

  

첫 번째 설교 (아가서 1:1-12)

우리는 모세를 통해 배웠습니다. 어떤 장소는 단순히 거룩한 곳이 아니라 거룩한 곳들 가운데서도 거룩한 곳이며 또한 어떤 날들은 단순한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일등 가운데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솔로몬의 글을 통해 또 배웁니다. 단순한 노래들이 아니라 노래들 가운데 노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가서입니다.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곳들 가운데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사람은 더욱 복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 가운데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더욱 복이 있습니다. 노래들을 이해하고 부르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러나 노래 가운데 노래를 부르는 그 사람은 더욱 복이 있습니다.


거룩한 곳들에 들어가는 사람이 거룩한 곳 가운데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필요합니다. 또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안식일 가운데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도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비록 성경의 모든 노래들에 통달해 있다해도 노래들 가운데 노래의 수준에까지 오르려면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노래 잘하는 유능한 사람을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애굽에서 나와야 합니다. 애굽 땅이 뒤에 있게 되면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 첫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 노래는 이러합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는 영광스러운 위엄을 지녔도다.” 그러나 이 첫 노래를 불렀다고 해도 노래 가운데 노래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계속 가야만 합니다.


광야를 거쳐 영적 여행을 계속하십시오. 마침내 열왕이 파놓은 우물에 도달하십시오. 그러면 거기서 두 번째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후 거룩한 땅의 입구에 이르십시오. 거기 요단강가에 서서 모세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더 나아가 여호수아의 인솔 아래 싸워서 거룩한 땅을 기업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벌들이 여러분을 위해 예언하고 판단하게 되어야 합니다. 드보라가 벌을 의미하고 있음은 여러분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사사기에서 발견되는 노래들을 여러분의 입술에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열왕기에 올라가면 다윗의 노래에 도달합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원수들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도망하여 찬양합니다. “주는 나의 안식처요, 힘이요, 피난처요 구세주이시라.” 그는 노래 잘하는 자였습니다.(삼하23:1) 그 다음으로 이사야서로 가십시오. 그와 더불어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나의 포도원에 대한 노래를 부르리라.”


이 모든 노래들을 통과하였을 때 발길을 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배우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아름다운 영혼처럼 노래 가운데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는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에 관련되었을까요? 하나님이 보여주신 한에 있어서는 네 명의 인물들 즉 신랑, 신부, 신부와 함께 한 처녀들과 신랑과 함께 한 친구들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부가 한 것도 있고 신랑이 한 것도 있습니다. 때로는 처녀들이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랑의 친구들이 노래합니다. 결혼식에는 처녀들이 신부를 수행하고 청년들이 신랑을 수행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이 모든 등장 인물의 의미를 모른 채 본문을 보아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복음으로 구원받은 사람 이상을 여기서 찾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이 노래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신랑은 그리스도이고 신부는 점과 흠이 없는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거룩하고 완전합니다. 신부와 더불어 있는 처녀들은 누구입니까? 비록 신실하기는 하지만 신부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신부 못지 않게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믿는 사람들의 영혼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과 더불어 있는 청년들은 천사들과 은혜로 완전함에 이르른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네 무리 즉 신랑과 신부, 서로 화답하는 두 성가대들을 보게 됩니다. 처녀들과 함께 노래하는 신부가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는 신랑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파악한 다음에는 노래 중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내용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부와 연합해 신부와 함께 노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부가 듣는 것을 여러분도 들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 만일 신부에 연합하여 신부에게 주어지는 말을 들을 수 없다면 최소한도 신랑의 친구들과 서둘러 연합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미칠 수 없다면 신부의 수행원 가운데 머물러야 합니다. 신부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시녀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이 인물들은 드라머인 동시에 결혼 노래인 아가서의 등장 인물들입니다.

아가서는 분명히 결혼의 노래입니다. 이교도들도 여기서 결혼축가를 얻습니다. 신부가 먼저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는 순간 대답이 들려옵니다. 거기 신랑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시녀들이 자기의 행렬 가운데로 모여드는 것을 봅니다.

 

그때 신랑이 신부에게 화답합니다. 말한 후에 그는 여전히 신부의 구원을 위해 고난 당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친구들은 신랑이 상에 앉을 때까지라고 화답합니다. 그리고 신랑이 수난을 극복하고 일어날 때 신부를 단장시켜 주고자 나갑니다.

 

이제 신부가 기도로 첫 번 째 말한 내용을 살펴봐야 합니다. 본문이 뭐라고 합니까? “그로 하여금 그의 입의 입맞춤들로 내게 입맞추게 하소서.” 무슨 의미입니까? “신랑께서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내게 입맞춤을 보내려 하시는가?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바로 그의 입술이로다. 그러니 그로 하여금 오게 하소서. 친히 오게 하소서!”

 

그리하여 신부는 신랑의 아버지에게 간구합니다. “그가 직접 나에게 입맞추게 하소서.” 이렇게 해서 내가 아직 말하고 있는 동안 내가 여기 있도다라고 내가 말하리라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신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아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후 계속된다)

   

이 글을 읽어보면 오리게네스가 단지 알레고리만 사용해서 설교를 이상하게 만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신앙의 이해를 도와준다. 그는 위대한 암브로시우스에게 지원을 받았다. 이 암브로시우스도 알레고리적인 설교의 대가이다. 그의 설교를 듣고 아우그스티누스(어거스틴)가 변화하였다. 아우그스티누스는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 이해를 잘 못했었다. 그러나 알레고리가 도왔다고 한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은 오리게네스처럼 성경과 복음을 확실히 이해하면서 알레고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어떤 설교자는 영해라고 해서 알레고리를 많이 사용한다. 특히 부흥회에 가서 들어보면 너무 멋대로 말한다. 그러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받아쓰라고 한다. 교인들은 구원의 도리나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을 기록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오리게네스는 확실한 구원의 도리와 복음을 이해시키기 위한 도움으로 알레고리를 사용했다. 그래서 듣고 나면 구원의 도리와 복음만 남고 도움으로 사용된 것들은 사라진다. 마치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해서 암탉을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그가 복음에 확실히 섰음은 그의 설교를 읽을수록 더욱 느낀다. 이 설교의 후반부에 어떻게 주를 사랑하는지 설명이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에 부어졌기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신자에게 자신의 것을 부어주신다. 신자란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이다. 내 속에 무한한 그 사랑이 있음을 믿을 때 나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물론 신앙의 과정을 거쳐서 들어가는 것이지만 무슨 고행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깨닫고 믿으면 된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누구나 다 깨닫고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오리게네스는 우리가 그러한 깊이에 들어가기를 사모해서 교회의 가르침과 신앙인들과의 교제를 열심히 할 것을 간절히 은유적으로 권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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