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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의 사람은 새사람의 표본
조회 120 추천 0 비추천 0 2020-01-15 17:55 작성자 : 김목사
팔복의 삶은 새 사람의 표본  마5:3-10  

 

기독교인 이라고 말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어떤 교인은 불신자로부터 "기독교인이 뭐 저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우리는 천국백성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천국백성의 삶을 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님께서는 산상수훈 설교에서 천국 백성의 삶의 특성을 8가지로 설명하셨는데, 이를 산상 팔복이라고 말한다. 즉 산상 팔복은 복 받는 비결이 아닌 천국백성으로서 기독교인이 당연히 살아가야할 삶의 지표를 말씀해주고 있다. 이에 산상 팔복의 말씀을 통해 기독교인이 따라야 할 삶의 표본은 무엇인지 점검해 본다.

 

1,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심지가 약하거나 소심한 자, 다른 사람들보다 무능무지한 자를 의미하지 않고 영적 가난을 의미한다. 여기서 가난은 프토코스로 그 뜻은 비천하고 무력하여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간혹 자신이 죄가 없다고 말하고 그렇게 믿는다. 그것은 위선일 수밖에 없다. 마치 예수시대의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자신들은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선 죄인일 수밖에 없다. 속죄는 우리 자신들의 노력으로써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없이 얻은 것이다.

한편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만과 위선의 삶을 버리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한 겸손한 성도의 삶이다. 더불어 세속적 마음에 지배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부귀와 학벌, 집안, 외모에 의존하지 않는 신앙인의 삶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심령이 가난해지기 보다는 세상 적 부귀와 명예를 좇고 있다. 또한 자신들이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해 남을 정죄하는 죄를 범하고 있다.

 

2, 애통하는 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5:4)

다니엘이 민족의 죄를 자복하기 위해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릎 쓰고 기도하며 간구한 모습(9:3-19)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 애통은 영적인 애통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불의()에 대한 애통이며, 사람들이 자랑하는 도덕성과 자기의(self-righteousness)의에 대한 애통을 말한다. 즉 경건한 애통, 신앙적 성격의 애통으로 회개를 의미한다.

죄에 대해 통회 자복하는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없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한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하며 애통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성도는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려고 힘쓰기 때문에 죄를 범하면 심히 애통하게 된다. 즉 자신의 죄를 회개 하는 애통함이 없이는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고속성장 바탕에는 선배 신앙인들의 새벽제단 기도와 애통하는 기도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엔 교인들뿐만 아니라 교계지도층까지도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한국교회의 타락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부터라도 죄에 대한 애통하는 거룩한 기도가 다시금 필요하다.

 

3, 온유한 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하나님의 사람이 좇아야 할 삶(딤전6:11)중 하나인 온유는 잘못된 일이 있는 자에 대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자세이며(벧전2:19-25), 타인에 대해서 관용으로 대하는 자세이다. 바로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며 예수의 마음인 것이다. 이에 대해 칼빈은 온유란 부드러운 마음으로 살며 노하기를 더디 하며 절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온유는 프라우스인데 잘 길들여진 동물에 적용되는 낱말로, 명령에 순종하여 고삐가 이끄는 대로 잘 따르도록 훈련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가 온유한 자의 대표라고 말하고 있다(12:3).

또한 온유한 자란 하나님의 다스림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기고 순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원망이나 불평, 불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온유인 것이다. 이런 삶의 모습은 모리아의 한 산으로 올라가는 이삭에게서 볼 수 있으며, 순종의 조상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신앙인의 삶에 있어서 겸손과 순종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겸손 혹은 순종한다고 말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신앙인의 온전한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는데, 그것은 순종이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5:6)

이 세상은 불의가 만연하며, 의인은 하나도 없다(3:10). 의란 죄가 전혀 없는 상태,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상태, 마귀가 참소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의에 주린다는 것은 믿음에 대한 갈급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노아에게서 의인의 모습을 보셨고 홍수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셨는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15:6, 13:39). 더불어 성경은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지만, 오직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불의한 자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몰두하는데 반해 의로운 자는 각종 예배에 참석함으로써 영적인 갈급함과 의(믿음)에 대한 갈망을 충당한다.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의 신앙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성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두 자매는 모두 주님을 경외하고 사모했지만 섬기는 태도에 있어서는 서로 달랐다. 마르다는 봉사와 손님 대접으로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열중했다. 마리아의 행동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주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배는 영적인 갈급함을 충당해 주지만, 형식적인 예배참석은 마르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은 예배 참석과 봉사수준에 머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즉 불의한 세상에서 진정한 의를 찾기를 원하시지만, 많은 신앙인들은 마르다의 신앙수준에 머물고 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긍휼은 불쌍히 여겨 동정하는 것이며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다른 사람이 어려움과 불운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며, 시련당할 때 그들 상황 속에 들어가 함께하는 것이다. 긍휼 즉 자비의 마음은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하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훈훈한 사회를 만든다.

주님께서 믿는 자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명령하셨는데(10:37), 구제(나눔과 섬김)는 복음증거와 함께 교회의 주요사역 중 하나이다. 하지만 베 품 없는 신앙이나 신앙 없는 베 품은 경계해야 한다. 전자는 열매 없는 뿌리라면 후자는 뿌리 없는 열매로 온전하지 못한 긍휼인 것이다. 또한 긍휼은 남을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데, 주님은 베드로에게 긍휼의 비결로 일흔 번씩 일번 번 용서하라’(18:21-22)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악평하거나 동료를 평가함에 있어 험담을 일삼지 않고 온화함과 관대함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화로 인해 사회가 경제적 이해관계와 빈부의 격차가 심화됨에 따라 인간관계에서 점차 삭막해지고 자비가 사라지고 있다. 긍휼이 없는 사회는 삭막함과 비참함만이 남을 뿐이다. 이에 교회가 나서서 나눔과 섬김의 사역에 앞장서야 한다.

 

6, 마음이 청결한 자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탐욕과 두 마음 즉,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려는 마음이 없다는 뜻으로, 여기서 마음은 카르디아로 정신, 의지, 감정 등 인간존재의 중심을 가리킨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두 마음을 품고 산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르지만,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으로 말씀대로 살고자 한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한 마음을 품을 것을 명령하신다(2:2-5). 그렇지만 세상을 따르도록 하는 탐욕의 마음과 유혹 등의 욕망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으며,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써는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없다. 시편 기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에 다가오는 세상의 유혹과 탐욕들을 다스리고 내어 쫓을 수 있다(119:9)고 말씀한다.

 

한국교회는 마음의 깨끗함을 상실해가고 있다. 교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각종 이권과 부정에 연루되면서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점차 하나님의 뜻보다는 세상 적 욕망에 이끌리고 있어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7, 화평케 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를 뜻하는 에이레네와 행하다, 만들다. 를 뜻하는포이에오의 합성어로 평화를 만드는 자’(peace maker)라는 의미를 갖는다. 평화를 베풀라는 계명은 초대 교회의 권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화해와 평화 수립에 대한 의무는 기독교의 중심계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평화는 단순히 다툼과 분쟁을 없애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를 이뤄나가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다툼과 분쟁으로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시기, 질투, 상호 반목 등을 없애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화평케 하는 자, 곧 성도의 삶의 표본을 찾을 수 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자기 영의 빈곤을 깨달은 자이며, 통회의 눈물을 쏟고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복하며, 남에게 관대하며 도움의 손길을 뻗힐 줄 아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21세기를 평화의 세기라고 말하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은 폭력과 갈등, 분쟁으로 얼룩져 있다. 서로 반목하고 있는 이 지구에 평화와 화해가 수립될 수 있도록 평화를 만드는 사역을 갖고 있는 교회가 나서서 평화운동을 펼쳐야 한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5:10)

의롭게 살기 위해 고통 받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증거로 인하여 핍박받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도에게 있어 옳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을 보고 기도하는 행위를 넘어 우상에게 절하거나 불의와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일로 인해 고통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의를 위해 핍박받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고통당하는 신앙인의 삶으로, 성도는 신앙생활로 인해 사회생활에서 불이익과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도 있고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지만 그것을 감내해 나가야 한다.

(믿음)를 위한 핍박은 순교정신으로 기독교를 부흥 성장시킨 원동력이 된다. 바울은 복음 증거로 인해 심한 매질과 수많은 위협을 당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고후11:23-27).

신앙인은 매일 매순간마다 세상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을 당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할 자격이 주어진다.

 

생활 속에서 순교정신이 사라져 버렸다. 교회에서조차 하나님보다는 종교적 상업주의와 맘몬주의(산업자본)에 얼룩져 있다. 교회의 세속화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방해하고 위협하고 있다. 교회를 부패케 하는 21세기 우상인 맘몬주의를 교회 밖으로 몰아내는데 최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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