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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 사는가
조회 50 추천 0 비추천 0 2019-11-05 06:41 작성자 : 김일출
누구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가? (요 12:36-43)

 

 

 

 

언제나 살아 계신 하나님!

어두운 시대를 보고 계시며,

흔들리는 교회와 성도들을 바라보시며 아파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

오늘 저희들이 세상의 일들을 멈추고 겸손히 당신 앞에 나와

온 맘으로 제직/임원 훈련학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이번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하나님의 능력으로 교회와 가정과 우리의 자신을 치료하시고,

새로운 은혜를 공급하시어

제직/임원으로서 저희들의 신앙이 다시 회복되는

축복을 체험케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곳을 향한

순종의 모습을 갖고 살도록

저희들을 바르게 고쳐 주시길 소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제직/임원 훈련학교 8주 동안 함께 하시고,

한 사람도 탈락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오늘 제목은 누구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가?입니다.

 

사람은 동기(incentive)에 의해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동기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다시말 하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보다 왜 그것을 하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유형의 동기에 의해 살아갑니다.

하나는 옆도 볼 겨를 없이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고, 다른 또 하나는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그 사회는 삭막하고 썰렁하기에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따뜻하고 정이 있기에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점점 자신을 위해 살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결혼도, 가정도,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친구도,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외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의식들을 갖고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길 내가 살고 봐야지! 내 코가 석자인데.....!

정말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까?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 잘되는 것을 보면 얼마든지 그 길을 가겠다는 마음! 내 코가 석자가 아니라 내 코가 없어져도 괜찮으니 당신 코가 더 높아지라고 마음먹는 사회가 좋은 사회요 살만한 세상인 것입니다.

 

신자에게도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신자도 동기(incentive)가 잘 되어있어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제직/임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이것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신자가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신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43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신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됩니다.

그러나 신자중의 괜찮은 신자라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기 보다 자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바리새인이 누구입니까?

율법에 능통한 자로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대로 산다는 즉 하나님의 법대로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자부하는 사람들이고, 밤낮 기도하며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다릅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과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은 다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기도를 잘하며, 경건하며 하나님의 법대로 산다고 했지만 궁극적인 삶의 incentive, 즉 삶의 동기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가장 강조한 부분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행하여지는 것이 제일 큰 목표였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기도의 목표도 능력이나 축복이나 기적에 대한 응답보다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동기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간절했던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이 날마다 부르짖던 기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했던 내용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12장 24절-28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다시 요한복음 16장 32절-17장 4절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의 삶의 동기와 목적은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익이냐, 하나님의 이익이냐, 자신이 죽는 쪽이냐 사는 쪽이냐, 내 것이냐 하나님의 것이냐 라는 손익 계산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이익 쪽으로만 살기로 작정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주님의 사명이며 그분의 목표였습니다.

당신이 얼마든지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주님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만을 선택하셨습니다.

 

왜 자꾸 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 강조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44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숨걸고 싸우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취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되고 내가 기분 좋아야지, 네가 영광 받으면 그날 밤은 억울해서 잠을 못 잡니다. 내게 득이 되고 내 손에 뭔가가 들려져야 하고, 뭐 좀 알아줘야지 만족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내 영광, 내 자신, 내 것을 찾는 순간은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 것을 고집하면 예수가 떠난 사람입니다.

 

신자들이 실수하는 언어 생활 중에 그래도 인간인데! 사람인데! 섭섭하고 기분 나쁘지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선 안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보다 더 중대한 사람으로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닙니까?

 

본문 37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합니까?

표적을 보고도 왜 믿음이 살아나지 못합니까?

그렇게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표적들을 주셨는데 왜 믿지 못합니까?

 

다시 39절과 40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 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이 막으셨다는 것은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눈을 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담을 쌓았습니다. 때문에 믿음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가려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무리 좋은 것들을 주어도 그것 가지고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성을 쌓으니 이제는 어떤 것을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데 무엇을 더 주시며, 은혜를 모르는데 무엇을 더 허락하시고, 깨달음이 없는데 더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엎드려 몸부림치는 데 믿음도, 응답도, 기쁨도, 소망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목회자나 신자들이 무서워해야 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다면 돌아서야 합니다.

 

당신 마음이 아직도 감사치 못하고, 은혜를 모르는 쓴 뿌리들인 억울함, 불평, 불만, 고집, 교만 등과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과 복, 그리고 하늘의 귀한 것들을 포함하여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인 줄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는 동안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때로 두려움으로 살 때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아프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가슴이 덜컹합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속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야! 너 또 일 저질렀구나!

○목사야! 너 또 딴 짓 했구나!

그 때는 더 이상 다른 말로 변명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무릎 꿇고 하는 한 마디, 하나님! 이 죽일 놈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고 나면 아이들이 건강합니다.

어렵던 일들이 사라집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게 될 때 문제는 사라집니다.

 

목사나 제직/임원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문을 막으시면 하루, 아니 한 순간도 답답해서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루를 굶어도 속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한 끼라도 먹지 못하면 불안하고 속이 쓰려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신자입니다.

 

사랑하는 제직/임원 여러분!

좋은 믿음이란, 적은 것을 보고도 감사하고 감격하는 깨닫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꼭 폭탄이 날아들고, 산이 무너지고, 둑이 터져야만 정신차리는 수준이라면 상처가 아물 날이 없을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 수 없었던 바리새인들의 믿음이 병이 들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신자라면 그는 분명히 고쳐야 할 병이 있는 신자입니다.

 

그러나 영력 있는 신자, 능력 있는 신자, 믿음이 살아있는 신자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와 섭리로 보고 소홀하게 넘기지 않습니다.

신자에게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신자에겐 모든 것이 필연이며 하나님의 역사일 뿐입니다.

사사로운 것이라 할 찌라도 하나님이 하신 일들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게 하고 죽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가난과 부함의 권한이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건강하고 병들게 하는 주권이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자이십니다.

신자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나의 삶 그대로가 하나님의 심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를 원망할 일도 아닙니다.

모두가 내가 뿌린 씨앗이며 내가 거두어야 할 운명입니다.

당신의 오늘 환경, 당신의 문제, 당신의 가정사, 당신의 사업, 당신의 교회의 일들 모두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당신의 일이며, 당신이 풀도록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싫어도 해야 될 것들이고, 하나님은 여러 방법을 동원하시어 당신의 계획과 목적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찾아보십시오.

당신이 꼭 해야 될 것을 발견하고자 몸부림치시고, 하나님이 그 일과 그 문제 속에서 무엇을 내게 요구하고 계시는지 밝히 보여달라고 매달려 보십시오.

 

만일 하나님이 당신에게 희생을 요구하면 그대로 희생하십시오.

고생하라고 하시면 고생하십시오. 짐을 지라 하시면 지십시오.

제멋대로 여러분의 판단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것은 후회를 만들어 낼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모르면 알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하루를 기도해도 안되면 이틀을 기도하십시오. 삼일을 했는데도 무소식이면 30일을, 그래도 아니면 3년을 그래도 아니면 30년을 기도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당신이 기도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있습니다.

 

이렇게 희생하고, 기도하고 열심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 동기가 무엇 때문인지 여러분이 잘 아시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진실한 신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아픔도 뒤로하고, 잠도 못 자며, 매 맞고, 욕먹으면서도 성경책 들고 교회로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갈라디아서 1장 10절의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의 신앙 목표는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쪽을 늘 고집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들의 평판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 것은 아닙니까?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못한 적은 없습니까?

누구라고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교회 오면 잘 믿는 신자 같은데 집에 가면 영 딴 판인 사람은 없습니까?

교회서는 괜찮은 신자 같은데 운전대만 잡으면 영 아닌 사람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편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할 때도 하나님 편입니다. 회의를 할 때도 하나님 이 기뻐하시는 편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불가능하고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든지 교회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하나님 편에 서서 기도해 보시지요. 지금은 어렵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으시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래야 좋은 신자입니다.

그런데 집어 쳐요, 죽어도 안되요. 당신이 밥상 엎고 국그릇까지 쏟았는데 뭐가 잘 되겠어!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말 한마디도 신자답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해야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편에 서서 산다면 하나님도 당신 편이 되십니다.

언젠가 당신이 답답하고 힘이 들고 지쳐 있을 때 당신이 하나님 편에 섰을 때처럼 하나님 또한 당신 곁에 오셔서 격려자로, 위로자로, 그리고 축복으로 당신 편이 되어 당신을 높이고 당신을 위해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31절-39절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제 아시겠지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목적 있는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있고, 반드시 이루어야 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높이고,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도 당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의 영광을 위하기 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십시오.

 

예수님의 산상설교 가운데 마태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1절)

 

그러면서 세 가지 예를 들어주십니다.

구제할 때 나팔을 불면서 하지 말라.

기도할 때 성전 어귀에서 하지 말라.

금식할 때 창백한 얼굴을 하지 말라 하시면서 이런 행동들을 가리켜서 외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이란 ?ποκριτη??(휘포크리테스)라는 말인데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를 의미합니다.

가면을 쓴 신자가 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연기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신자가 무엇을 할 때는 은밀히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무엇이든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믿음이 없는 행동인가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아실 뿐 아니라 당신의 속마음까지 읽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어렵습니까? 교회 봉사하는 일이 벅차십니까? 남편 때문에 살기 힘이 듭니까?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아이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습니까?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사업이 어려우신가요? 은밀히 기도하세요.

교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은밀히 하십시오.

목사님을 위해서도 은밀히 기도해 보십시오. 심방도 은밀히 하십시오. 당신의 은밀한 그 행동은 당신의 기대 이상의 열매를 맺으며 흡족한 하나님의 일 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신자란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는 살고있다는 의식이 철저해야 합니다. 신자란 조명 받으며 박수 받으며 연기하는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닙니다.

신자가 제일 많이 넘어지는 시험거리가 이것입니다.

 

신자란 이미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은 사람이요. 나는 죽었고 예수 이름만 높이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없어졌다고 선언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안는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사십시오.

제발 나 좀 알아주지 마십시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니 내 이름은 빼주십시오.

이게 우리의 싸움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봉사를 얼마나 했든, 헌금을 얼마나 드렸든, 헌신을 어떻게 했든지, 기도를 얼마나 했든, 전도를 얼마나 했든지 내 이름보다는 주의 이름을 높이는 신자를 하나님이 크게 쓰신다는 하늘의 법칙을 믿어야 합니다.

   

a. b. bruce(부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감추어야 할 때 나타내고 나타내야 할 때 감추려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될 때 우리는 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될 때 우리는 도망을 갑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목표를 이렇게 정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된 일을 위해선 언제나 앞장선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위해선 목숨걸고 뛴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일은 발 벗고 뛰어 가는 사람이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신자입니다.

 

또한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하심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 하나님을 의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수평적인 삶도 중요하지만 창조자이시며 심판주이신 유일한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우선으로 하는 삶이 더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행동해야 합니다.

 

당신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임을 모두가 알도록 사십시오.

가정에서든, 교회에서든 예수 잘 믿는 것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것을 나타내 주십시오.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당신의 가정을 축복하시며, 당신의 교회를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제직/임원이 되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전처럼 당신 자신을 앞세우는 제직/임원이 되시겠습니까?

당신이 결심을 하셨다면 이제 기도하십시오.

오늘의 결심이 결코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를 고치도록 무릎을 꿇어보십시오.

당신을 제직/임원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동기는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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