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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을 감동과 함께 현장에 있게 만들었던> 피터 마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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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7042 | 추천 | 0 | 비추천 | 0 | 2015-09-15 08:44 | 작성자 : 관리자 |
피터 마샬은 1902년 스코들랜드 코트브리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네 살이었을 때 사망했고 이것이 그에게 불안전한 성향을 심어준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긴다. 열네 살에 나이를 속이고 해군에 입대한다. 그러나 나이가 밝혀지면서 해군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러한 여러 경험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특별한 뜻이 있다는 확신을 주어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글라스고대학을 다녔고 1927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1931년 조지아 아틀란타에 있는 콜럼비아신학교를 졸업하고 앨라바마 주의 커빙톤에서 목회를 시작한다. 1937년 워싱턴 시에 있는 뉴욕 애비뉴 장로교회 목사가 된다. 그의 회중 중에는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포함한 고위 정부관리와 군인들이 있었다. 1947년에는 미국 의회 채플린이 되고 1947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는 매사에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았다. 여러 가지 놀이를 즐겼는데 항상 이겼다. 젊은 시절에는 가난하였고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을 경험하면서 죄가 개인과 국가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 보았다. 유모어 감각도 뛰어났기에 사람들의 개인적인 죄나 사회적인 죄를 적절하게 공격했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발코니와 복도까지 가득 모였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직후 그의 생애를 그린 영화가 만들어졌고 많은 관객을 동원하였다. 그의 설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미국 전역 모든 사람들에게 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항상 용기와 깊은 이해와 소망으로 진리를 선포했다.   그의 설교 1944년 게티스버그 신학교에서 설교학으로 짐머만 강연을 행한다. 설교자의 시간활용을 가르치고 자기 탐닉이나 기만에 빠지지 말 것을 생활의 여러 문제점과 함께 말하였다. 여기서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한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은 상당히 윤리적인 것이었다. 다른 강연에서는 설교가 회중의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인간의 가장 깊은 요구와 필요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여 개인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것으로 말한다. 덧붙여서 그렇게 하기 위해 감동적인 자료들이 큰 유익이 되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설교에서 가장 탁월한 것은 시각적인 상상력의 사용이다. 설교자는 청각적인 것을 시각적인 것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신중하고 현명한 용어 선택을 통해 이러한 재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로서 모든 감각기관들을 자극하였고 그중에 특히 시각, 청각, 접촉적 감각에 호소하였다. 참으로 상상력은 그의 설교방법의 핵심이었다. 다른 설교에 나타나는 논증이나 증거제시가 없다. 사고의 시각화를 통해 성경 메시지에 접근해 간다. 설교내용은 벌로 탁월하지 못하다. 분명 독창적인 사상가나 창조적인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서술적, 회화적 상상력이 설교를 탁월하게 만든다. 종종 그는 성경 본문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해석학적으로도 어떤 원리가 없었다. 그의 성경 사용법이 그의 설교에 있어서 가장 큰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는 청중의 감정을 흔들어놓았다. 피터 마샬은 용기를 북돋아주는 설교로 회중의 욕구를 채워주고자 노력했다. 그는 감정적인 호소가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다. 비록 성경적인 깊이는 결여되었지만 감동은 확실하게 주었다. 그렇게 하는 데 사용한 방법은 상상력이었다. 다음의 설교는 지면상 절반 정도로 줄인 것이다. 내용을 보면 그의 설교 방법이 잘 느껴진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시각화해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 상상력을 이용해서 상황을 자세히 자신의 논지를 향해 이끌어가고 있다.   오늘날 영웅들은 어디 있나?   세계의 역사는 항상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젊은이들이 영웅숭배에 사로 잡혔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조지 워싱턴과 그 밖의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를 기록한 책들은 여러 곳에서 출판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초등학교 교실 벽에는 워싱턴이나 링컨의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날에 어린이들이 새 옷을 입고 차렷 자세로 국기를 가리키면서 워싱턴의 고별연설이나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암송했습니다. 긴긴 겨울 저녁 어린 아이들은 벽난로 불이 던져 놓은 기묘한 그림자에 둘러싸여 영웅들의 전기를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그들의 역경과 승리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아이들의 마음에 불타는 야심과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신념들이,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 기도가 실제로 응답된다는 믿음, 결혼과 가정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 위대한 조상들의 고결함과 숭고함에 대한 믿음이 불타오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위대한 인물들을 배출하는 기반이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가슴 가득 꿈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다면 나도 역시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워싱턴이나 링컨의 초상화가 우리 사고에 맞지 않는 시기가 오고 말았습니다. 오래된 가족 성경이 초현실주의적인 그림들과 칵테일 바와 부조화를 이루게 된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그러한 초상화들이나 성경은 잊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비신화화의 작업들을 소개한다: 중략)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지하실에서 거의 사용된 적이 없는 오래된 금고를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이 교회가 설립되었던 1802년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많은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오래된 헌금 장부에 에이브라함 링컨이란 이름이 있었습니다. 1861년 3월부터 4년 후에 암살을 당하기까지 계속해서 헌금을 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어 워싱턴에 온 이후에 바로 각료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자신과 아내와 세 아들을 위한 “가장 적합한 교회”를 선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한 교회를 선택하는 데 몇 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담임목사가 “정치에 대하여 초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교회를 담임했던 피니어스 걸레이 목사를 선택했습니다. 남북전쟁의 먹구름이 감돌자 링컨 대통령은 걸레이 목사와 잦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수요기도회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같은 나라 백성들끼리 싸워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는 담임목사를 모셔오게 했습니다. 걸레이 목사의 증언을 따르면 그들은 동녘 하늘이 밝아올 때까지 백악관 남쪽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매우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분열된 국가는 존립할 수 없기에 미국의 연방체제는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본래부터 전쟁을 싫어했습니다. 결국 링컨은 하나님께 자신을 내 맡기고 믿음의 길을 걷습니다. 걸레이 목사의 말입니다. “4년 동안 그와 깊은 교제를 나누었던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자비하심이 그가 확고히 의지하였던 지주였습니다. 동시에 그 하나님의 인도와 자비하심이 그가 자신과 조국을 위해 가졌던 최선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는 우주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유일한 소망이 ‘우리 자신을 낮추고 우리의 국가적 죄악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간구하는 것’ 뿐임을 깨닫고 받아들였습니다.” 링컨이 백악관에서 사망했을 때 걸레이 목사는 그의 곁에 있었습니다. 숨을 거두기 직전 링컨은 자신의 목사에게 자기 아들이 주일학교에 내 달라고 요청했던 몇 페니가 든 조그만 저금통을 넘겨주었습니다. 걸레이 박사는 숨을 거두고 있는 링컨의 침상 옆에서 미국의 지도급 인사들과 함께 밤을 새우며 기도했습니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마침내 링컨이 숨을 거둡니다. 전쟁보좌관이었던 스탠튼은 흐느끼면서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이제 그는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링컨을 잃은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기도를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링컨의 장례식을 집전하면서 걸레이 목사는 말합니다. “오늘 그는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신앙 안에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자유와 정의를 지키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며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피 흘리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굳건한 신앙을 지니십시오.’” 이 교회에 속해 있는 우리가 에이브라함 링컨과 같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확실한 이야기들 때문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기 위하여 이 세상에 소수의 위대한 인물들을 주십니다. 그들의 위대함을 깎아내리거나 부인하는 것은 곧 인류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계시를 부인하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링컨을 포함해서 신자들이 존경하는 영웅들은 결코 절반은 신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오류와 잘못들은 친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그러한 도덕적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상생활이라는 전쟁터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학교에서, 우리의 직장과 공장에서 다시 우리를 이상주의로 인도할 영웅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갈등과 투쟁에 지쳐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배반과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급증하는 이혼율로, 음란과 부도덕으로 병들고 인종적, 정치적 증오로 산산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그 어떤 나라도 아래로 내려가서 좋아진 적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규범을 낮추어서 위대해진 사람은 절대로 없습니다. 느슨한 도덕율을 통해서 잘 살게 되고 훌륭해진 사회도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전쟁들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들은 우리를 자멸로 초래하는 무정함과 물질주의와 부패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들은 이 세계를 인간의 피로 덮고 굶주림과 절망이 지배하는 거대한 도살장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러분과 나와 동료국민들뿐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가 기존의 삶의 태도를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영웅들을 필요로 합니다. 음행과 사악함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사회의 이교적인 분위기 가운데서 오염되지 않은 신앙의 규범대로 살고자하는 신앙의 영웅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악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조롱과 비웃음을 이겨내야 합니다. 선과 의를 위해 투쟁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정복해야 합니다. 평화와 조국과 우리 자신과 하나님을 위하여 시련과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오늘날 영웅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청종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영웅으로 만들어주시옵소서.   평과 적용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일 것이다. 생략한 부분은 과거 영웅들의 신화를 벗겨내고 그들의 한 위대한 행동들을 깎아내리는 작업들을 비판한다. 그래서 그런 일로 사람들의 위대한 일을 향한 의욕을 없애버리는 사람들의 시도를 반박한다. 그리고 링컨의 감동적인 일화로 청중에게 영웅 심리를 불러일으킨다. 교회의 목표를 향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방법의 설교를 많이 훈련해야 한다.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설교에 포함시켜야 한다. 특별히 감동적으로 각색해서 듣는 이들이 그 장면들을 그림으로 보도록 스스로 설교하기 전에 연습해야 한다. 피터 마샬도 그렇게 자신을 훈련했다. 그의 설교를 한 번 그대로 감정을 넣어 따라해 보라. 그리고 그가 하는 것처럼 느낌을 가져보라. 그가 청중 앞에서 했던 것처럼 스스로 상상력을 일으켜서 청중이 자신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야기의 세상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토요일 밤에 이러한 상상력으로 설교를 훈련해본다면 큰 유익이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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