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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중심적 설교자> 포스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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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31510 | 추천 | 0 | 비추천 | 0 | 2015-09-15 08:41 | 작성자 : 관리자 |
  “현대 설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해리 에머슨 포스딕 (1878-1969)은 존 D. 록펠러의 담임목사였고 신학자 에밀 브룬너의 스승이었으며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냈던 당대의 위대한 설교자였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인접한 뉴욕주 버팔로에서 태어났고 콜게이트 대학과 뉴욕 유니온 신학교와 콜럼비아 대학에서 공부했다. 대학에 다닐 때 기독교신앙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앤드류 화이트의 <과학과 신학의 투쟁사>를 읽고나서는 성경무오설을 버린다. 그러나 신앙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후에 고백한다. “자유주의 신학은 나의 기독교 신앙을 구원하였다.” 윌리엄 뉴튼 클라크에게 감동을 받고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침례교에서 안수 받고 몇 곳에서 목회를 잘 한 뒤에 1926년 맨하탄에 그 유명한 리버사이드교회의 목사가 된다. 록펠러가 새로 건축해 1931년 봉헌한 그 교회는 장로교에 속했지만 포스딕을 담임으로 초청해서 1946년 은퇴할 때까지 목회를 맡겼다. 보통 4천명 이상의 회중이 모여들었다. 영향력이 컸던 까닭에 포스딕은 집중적으로 동시에 존경과 공격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를 가장 큰 적으로 생각해 비난했고 이단시했다. 그러나 그는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유주의 기독교를 설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아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의 설교 그의 후임으로 리버사이드의 담임이 된 로버트 맥크라켄은 포스딕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교 준비로 오랜 시간을 사용한 그는 매주 평균 16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매 주일 아침마다 탁월한 설교를 아주 생생하고 활력 넘치는 대화식으로 했습니다. 매설교마다 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났고 내용은 조직적인 체계를 이루었습니다. 폭넓은 독서와 일상생활의 예리한 관찰에서 나온 인용과 예화들이 넘쳐났습니다. 수많은 동료 설교자들에게 영감을 주면서 동시에 좌절을 주었습니다.   설교자라고 하면 각각의 특징이 있다. 묘사력이 탁월하든가, 예화가 좋던가, 조직이 잘 되었던가, 사상이 깊던가, 사랑으로 뜨겁던가, 열정이 넘치던가. 반면에 다른 면에서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포스딕은 거의 모든 것들을 다 갖춘 설교자였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전문 설교자들이 그의 설교를 읽고 인용했는지 모른다. 그는 무엇보다도 회중의 실제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처음부터 논지를 분명히 하려고 했다. 그의 모든 설교가 늘 한 가지 핵심적인 진리를 중심으로 다양성 있게 움직여 나갔다. 그는 설교 작성을 대단히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했다. 단지 세 대지라든지 질문과 대답식으로만 일관하지 않았다. 가능한 모든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물론 그도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다. 주로 신학적 입장에서 나온 그의 인본주의적 합리주의나 사회참여나 인간본성에 대한 낙관론 등이다. 성경보다는 세상의 문제들에 더 집중하여 하나님보다 인간에 더 몰두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그를 설교자로 성공하게 만들었다. 포스딕은 설교의 핵심적 요소를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마음이나 양심을 혼란시키는 개인적이나 사회적인 삶의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고 그리스도 정신으로 해결해 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삶을 더 숭고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게 나의 기본적 접근방법이다.” 그렇게 할 때 그는 청중이 긴장해서 청취에 집중하는 것을 확인했다. “설교자의 할 일은 단지 회개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하는 것이다. 단지 기독교 신앙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삶에다 그 신앙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환란과 시험을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능력을 힘입어 모든 환란과 유혹을 이기게 해주는 것이다.” 설교자가 말한 것이 실제적으로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다른 표현들도 비슷한 논조이다. “설교는 집단에 대한 개인적 상담이며 그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참된 설교는 교리적 독백이 아니라 상호협력적인 대화여야 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의 설교는 사람들의 현재 당하는 문제를 놓고 상담하며 대화해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설교는 영적 은사들이--그리스도로부터 오는 말로 다할 수 없이 고귀한 보화들--개개인의 삶에 실제적으로 전달되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할 때마다 기도한다. “오 하나님, 여기 제가 말하는 내용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의 필요와 욕구를 온전히 채워주도록 도와주소서.” 다음의 글을 통해 그의 설교를 접해 보라. 여기 실린 내용은 전체의 약 40퍼센트 정도이다. 중략한 부분은 그의 논지대로 삶을 창조해 나간 예를 들었다. 결혼이 곧 행복은 아니고 행복을 창조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 자신이 세례 준 한 여대생이 풍요로운 삶 가운데 의사와 결혼한 뒤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 한 젊은이가 당시의 빈약한 수준의 비행기로 우편물을 수송하다가 죽음으로 선구자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말한다.   삶의 도전 딛 1:5   바울은 동부 지중해에 있던 그레데 섬에 디도를 남겨두었습니다. 그레데 섬은 신자들이 거하기 좋은 곳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바울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하니 이 말이 참되도다.” 이 말이 그레데 섬의 상황과 그곳 주민들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디도에게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두었으니 이는 너로 하여금 그곳의 그릇되고 부족한 것들을 바로 잡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말하는 대로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그레데인들이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게으른 탐식가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레데를 떠나야 할 이유가 아닐까요? 그러나 바울은 아주 단호하고 엄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어려운 상황이라고 피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자들도 그러한 도전 피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태도 속에 그가 가진 깊은 뜻이 나타납니다. 또한 기독교의 특이한 성격이 나타납니다. 그레데는 신자들이 거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본받을 점이 전혀 없는 사악한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디도에게 “바로 이러한 까닭에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두었다”고 선언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디도가 이 서신을 받았을 때의 디도 자신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저는 디도서가 바울이 디도로부터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디도에게 보냈던 것으로 봅니다. 디도가 바울에게 보냈던 편지의 내용을 재구성해 보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이런 내용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바울선생님. 여기는 아주 무섭고도 기분 나쁜 곳입니다. 주민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먹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여기 있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제 입장을 보시고 온 겨울동안 여기 있지 않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순종의 자세로 그러나 불행한 마음으로, 디도 올림.” 이러한 디도의 편지를 받고 디도서가 쓰여 졌을 것입니다. “디도여! 그레데 사람들에 대한 네 견해는 옳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들이며 게으른 탐식가들이다. 그들에게 대해 어떠한 말을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레데는 영적으로 절망적인 곳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나는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디도와 입장을 바꾸어놓아 봅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도 늘 그레데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처한 처지는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레데에 있었고 그레데로 가고 있으며 또한 대부분이 현재 그레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 이러한 사실에 대해 불평하면서 자신의 그레데에서 떠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두었다”고 한 바울의 편지를 읽고서 디도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첫째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바 인간의 삶에 대한 간단명료한, 그러나 매우 심오한, 상식적인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편지를 받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말씀이 옳다. 결국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 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내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한다면 이 그레데에서도 행복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디도처럼 그레데가 즐거운 곳이기를 바라면서 간다면 누구나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행복을 찾아 그레데 거리를 거닙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지 못합니다. 거기 사람들은 악합니다. 그때 자신의 내적 태도를 변화시키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제는 그레데 거리에서 이미 준비된 행복이 아니라 기회를 찾습니다. 천연자원을 가공해 훌륭한 물건을 만들듯이 디도는 이 기회를 활용하라고 그레데에 남겨졌던 것입니다. 그는 계속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행복은 찾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그레데를 엘도라도로 바꾸어지게 합니다. 낭만적인 공상일까요? 실제적인 사실입니다. 그레데는 고대 기독교가 만났던 가장 큰 도전이요 기회였습니다. 오늘날 그레데에서는 로마제국의 이교를 대항해서 복음이 세력 뻗어나가던 초대교회의 많은 지도자들과 설교자들과 선교사들을 배출했던 장엄한 교회의 초석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그 교회들이 누구를 통해 세워졌겠습니까? 바로 디도였습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하기 바랍니다. 한 때 그가 그처럼 떠나기 원했던 바로 그곳에 그리스도의 위대한 교회들이 그를 통해 세워졌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로 이러한 까닭에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두었으니 이는 너로 하여금 그곳의 그릇되고 부족한 것들을 바로 잡게 하려 함이라”는 바울의 입장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분명코 이 원칙은 우리 삶 모든 면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널린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없는 것을 창조해 가는 게 인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 행복을 찾을까 세상을 헤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이루지 못합니다. 인생은 창조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사람의 전기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주석서입니다. 약 반세기 전에 보스톤에 스코틀랜드 소년이 도착합니다. 아주 지저분한 최저요금 객실에서 선편으로 도착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아무 재능이 없다 했습니다. 그 소년은 주물공장의 공원으로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보스톤 북단에 있는 어떤 술집 다락방에서 기거했습니다. 그의 존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존재를 위대한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하바드 대학이 배출해낸 가장 위대한 학자중 하나인 조지 고든입니다. 몇 년 전 보스톤의 올드 사우드 교회에서 목회생활 40주년 기념식을 가졌던 미국 교회사에 영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끼친 뛰어난 인물입니다. 장수했고 명예와 존경 속에 영면했습니다. 고통 속에 존재했으나 그는 생애를 창조해 나갔습니다. (중략) 그레데에 있다고 할 때 누구나 건설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분노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여러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레데에 있습니다. 우리의 매우 급박한 내적 당면과제가 무엇일까요? 그레데가 영적으로 원수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친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아동심리학의 한 권위자가 한 소년을 상담했습니다. 소년은 매일 밤마다 무서운 호랑이가 나타나는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로인해 신경쇠약에 결렸습니다. 심리학자는 소년을 자기 무릎에 앉히고 말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호랑이를 만나고 있지? 그런데 그 호랑이는 매우 착한 호랑이란다. 그 호랑이는 네가 자기를 좋아하기 원한단다. 그러니 다음번에 그 호랑이를 만나거든 머리에 손을 얹고 ‘안녕 친구야’하고 말해주렴. 그러면 그 호랑이가 얼마나 착한지 알게 될거야.” 소년이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이든지 얼마 후 이불 밖으로 작은 손을 내밀고 속삭였습니다. “안녕 친구야.” 그리고 나서 그의 숨소리는 아주 평온해졌습니다. 그는 그의 삶의 중심에서 호랑이와 친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주 혐오스런 상황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기 바랍니다. “너를 나의 영적인 적으로 삼지 않으련다. 너는 나를 두렵게 하거나 마음 상하게 하거나 파멸의 길로 몰아넣지 못한다. 마법에서 풀려난 용이 왕자의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너는 나의 친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그레데를 변혁시키는 사람은 매우 복됩니다. 이처럼 자신의 호랑이를 친구로 만들기 바랍니다.   적용 철저하게 청중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우선 듣는 사람이 공감하도록 상황을 분석해준다. 성경의 내용은 듣는 사람의 상황과 동일시된다. 그리고는 신자로서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게 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힘으로 그렇게 하도록 한다. 하지만 복음적인 설교는 그리스도의 약속과 도움을 믿고 그렇게 하도록 적용시켜 준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포스딕은 완성된 원고를 완전히 파악하고 청중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 설교하는 순간까지 노력했다. 그는 항상 금요일 정오까지 설교 작성을 마쳤다. 그리고는 그 내용을 계속 읽고 또 읽었다. “설교의 목적을 잊지 않았는가, 들을 사람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초점을 제대로 맞추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가정하고 전반적으로 계속 검토했다.” 이처럼 준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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