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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조회 136 추천 0 비추천 0 2020-01-22 06:32 작성자 : 김목사

산자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출애굽기 3:4-6

 

서론: 본문 말씀을 가지고 산자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인류 조상인 아담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은 3:1 말씀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겉은 살았으나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는(8:9, 고후13:5, 요일5:12)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요일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송장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라 불리기를 싫어하십니다.

20:38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타락 이후 시대 시대마다 산자를 찾아다녔고 그 결과 2046년 만에 아브라함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타락한 아담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산 자라고 칭할 수 있었던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바로 아브라함의 살아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의 조상이 아담이라면 산 자의 조상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모세를 지명하여 부르시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의도를 두 가지 상황 가운데서 파악해봐야 하겠습니다.

 

1) 모세에게 불이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여 주셨습니다.

3:2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는 원어로 () 세네흐 가시덤불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아담 타락 이후 저주받은 땅이 내놓은 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바로 타락한 인간 자신을 가리킵니다. 3:18을 보면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따라서 불이 붙어도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는 바로 타락한 인생이 회복해야 할 영원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불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죽은 상태에서 산 자로 부활할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0:34-37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이처럼 20장은 부활을 설명하고 있으면서 그 부활을 계시하는 사건이 바로 모세가 바라본 가시나무 떨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37을 다시 보면 즉 부활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먼 미래의 죽은 자들은 산자의 부활 사건을 예표 하고 있습니다.

 

2)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소개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 우매, 그리고 신약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20:37-38을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두 가지 상황 즉

(1)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 보여 주는 상황과

(2)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즉 산자의 하나님 부르심

그 두 가지 공통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 자신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닌 산자의 하나님을 인식케 하여 이러한 사실을 믿는 모세를 산자로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자의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산자의 반열로 탈출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모세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습니다.

3:11모세가 가로되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 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4:1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4: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마지막으로 쇄기를 박습니다. 4:13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러 번의 거부 반응 가운데 하나님은 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산 모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모세의 여러 번 항변 속에서

3:15-16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4:5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세 번에 걸쳐서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일관되게 거듭 반복하여 소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산자의 프로젝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꺼지지 않는 계시를 묵도하고 산자의, 하나님의 음성을 묵도하고 깨닫지 못했을까요?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대지: 하나님의 존재를 100%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4장을 보면 모세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계획에 반기를 들고 있는데 그 내면에는

자신의 불신과 이러한 자신을 택한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불신은 내가 누구 관대 3:11, 4:1, 10, 13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신은 3:13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물을 때 내가 무엇이라 말하리이까?

내가 하나님께 대해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세는 아브라함과 같은 살아있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빈틈 헛점 투 성이 따라서 모세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살아있는

믿음을 빈틈없는 믿음을 요구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세처럼 신앙 중책을 맡기기 전에 반드시 그 믿음이 살아 있는지 점검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죽은 채로 맡기면 하나님의 일은 죽은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죽은 믿음으로 맡으면 교회에서 죽은 봉사가 됩니다. 헌금,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기 전에 죽은 믿음을 버려야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

1) 나의 믿음에 예수님을 개입시켜야 합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믿게 해주는 이것이 100% 믿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완전하기 때문에 그 믿음이 100% 완전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틈이 없을 때 살아있는 믿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 생활에 주 개입 시킬 수 있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아브라함과 같이 예배의 단을 쌓으면 계시의 말씀을 내 마음에 담아 두는 것입니다(12:7).

이 구절 외에도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많은 단을 쌓았습니다.

10:17에 믿음은 말씀을 들으므로 생겨납니다. 우리는 날마다 드리는 예배와 선포된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의 믿음에 개입 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내 의지로

믿어 보겠다는 당돌한 것을 버리고(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2) , 구약 모든 말씀이 나의 당대에 이루어진다는 철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당대에 이루어지는 믿음을 소유한 자가 바로 시므온 입니다(2:25-30).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처럼 시므온은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계시의 말씀을 빈틈없이 100% 믿었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구원을 보았습니다.

반면에 11:23-24 마르다가 나옵니다. 마르다는 주의 말씀대로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을 믿었지만 부활에 살 것을 알고 있었으나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요구하는 믿음은 당대에 나사로가 살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11:25-26).

주님은 당대에 이루어질 믿음을 요구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믿음은 시므온처럼 당대에 이루어지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마르다처럼 언젠가 이루어지겠죠. 하는 믿음입니까?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지만, 영생, 변화의 역사를 믿기는 하지만 이것이 나의 당대에 과연 이루어질까? 의문을, 갖게 된다면 나의 믿음이 틈이 생기는 것이요 결국에는 죽은 믿음입니다. 시므온 같이 믿어야 주님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네가 나를 믿으면 영생, 변화의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5: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리고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말씀 중에 죽지 않고 변화 받으리라 을 받으시기 바랍니다(고전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말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대지: 하나님의 신성한 예식에 순종하여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24 이하를 보면 어렵게 모세를 설득시켜 사명을 행하라고 보냈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세가 자신의, 아들들을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24-26보면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내라는 중요한 사명을 맡기시면서 갑자기 자식의 할례 문제로 모세를 죽이려 하는 모습은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모세와 같이 산자로 부름받은 우리 각자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17:10-14에 보면 아브라함과 맺은 할례 언약입니다.

이처럼 할례는 인간의 죄악 된 피를 뽑아냄으로써 세상과 구별시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의, 언약의 표징입니다(구약). 다시 말해 이 할례 예식은 아담 타락 이후 흘러온 죽은 자의 족보를 끊고 다시 산자의 족보를 시작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최초로 산자로 인정받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처음 시작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중요한 예식을 자기 아들들에게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난지 8일 만에 바로 행하는 산자의 정표인 할례를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 언약에 대한 불순종과 불이행은 산자의 또 다른 대표인 이삭의 산 순종과 야곱의 산, 행함을 이루지 못하는 죽은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모세를 죽음 앞까지 이르게 하였습니다.

모세가 만들어낸 이런 절망적 상황을 오늘날 우리도 그대로 답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산자로써 하나님의 일을 수용하기 전에 행해야 할 신령한 할례의식을 잊어버리고 무턱대고 하나님의 일에 뛰어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령한 할례 예식인 마음의 할례를 반드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죽은 피를 다 뽑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살아가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할례는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그 해답은 딤전 4:5에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내 자신의 모든 죽은 피를 뽑아내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말씀을 받을수록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를 죽이는 사망의 피는 주님의 보혈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앞에 산 피와, 죽은 피가 있다면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산 피를 수혈받아야 합니다.

 

마음의 할례는 4가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1) 마음의 할례는 교만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10:16

2) 마음의 할례는 마음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줍니다. 30:6

3)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피하게 해줍니다. 4:4

4) 마음의 할례는 오직 하나님께만 칭찬을 받게 해줍니다. 2:28-29

이처럼 말씀과 기도로 신령한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위의 4가지).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기 위한 모세의 자격 조건은 바로 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말세지 말에 변화와 영생을 통해 천국으로 향하는 우리 성도들의 자격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빈틈없는 믿음, 이삭의 무조건적인 순종, 야곱의 부지런한 행함이 살아있을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각자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영원히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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