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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두려워 하지 아니하며 ...
조회 122 추천 0 비추천 0 2019-07-07 21:46 작성자 : 김근수
여러분, 지금 세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순교하는 신앙이 아니고는 할 수 없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복음을 듣고 영접하고 구원에 감사하는 영혼들을 볼 때 저는 선교사로 부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교하는 신앙으로 세계곳곳에 나아가 복음 전할 사람들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학교를 찾아 온 선교사의 말을 듣던 토마스의 마음은 선교의 열정에 사로잡혔다.
 
"주님, 지금까지는 제가 웨일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제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제 길을 열어주세요."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리고 그는 곧 바로 런던선교회를 찾아가 중국선교사로 파송해 줄 것을 신청하였다.
 
1863년 5월 "토마스씨, 런던선교회는 당신을 중국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연락을 받았을 때, 토마스는 중국선교사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격하며 찬양을 드렸다.
"캐롤라인 드디어 내가 중국선교사로 파송받게 되었소! 우리가 함께 가는 것이오."
 
그는 약혼자인 캐롤라인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선교사로 떠나야 하는 토마스는 캐롤라인과 결혼한 후 곧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의 나이 24살이었다. 드디어 토마스 부부는 1863년 7월 21일 그래이부센드 부두에서 출발하는 폴메이스호를 타고 중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중국에 도착한 토마스부부의 선교활동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여보, 맛이 없더라도 건강을 생각해서 좀 먹어봐요"
남편인 토마스의 염려하는 말에 임신하여 입덧에 시달리던 캐롤라인은
"입맛이 없어서 음식이 먹히지가 않네요."라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설상가상으로 토마스는 런던선교회의 선임선교사인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사역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토마스 부부는
 
"주님, 저희들에게 이곳 중국에서 새로운 생명을 선물로 주심으로 위로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중국에서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새 힘을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며 서로를 위로하였다.
 
그렇게 중국사역을 진행하던 토마스는 1864년 3월에 임신한 아내를 홀로 남겨두고 한구라는 곳으로 출장을 떠났다. 그런데 토마스의 이웃에 살며 친하게 지내던 미국선교사 부인이 갑자기 풍토병으로 죽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것을 곁에서 본 캐롤라인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런 연유로 캐롤라인은 남편이 없는 가운데 혼자서 태중의 아기가 유산되는 고통을 겪었다. 출장을 떠났던 토마스는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태중에 있을 아기를 생각하며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내가 돌아왔소. 떠나 있는 동안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소."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순간 토마스는 섬짓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면서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다급한 마음으로 "캐롤라인! 캐롤라인!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당신 자고 있는거요?" 이렇게 말을 하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토마스는 "아-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캐롤라인이 누워있는 곳에는 핏자국이 여기저기에 뒤엉켜 있었다. 그의 아내는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캐롤라인 내가 왔소! 눈을 떠 봐요 내가 왔단 말이오."
그러나 싸늘한 몸으로 누워있는 그의 아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캐롤라인은 아기가 유산된 후에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는 가운데 이미 일주일 전에 혼자 죽어간 것이었다.
 
아내의 죽음으로 토마스가 받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 고통으로 인하여 그는 선교에 대한 회의에 빠져갔다. 마치 미친 사람의 모습과도 흡사했다.
 
"캐롤라인! 나를 두고 당신 혼자서 가면 어떻게 하오. 하나님 캐롤라인은 우리의 사랑스런 아기를 유산시키고 혼자서 죽어갔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까? 내가 여기에 왜 왔는데요.
 
중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고향과 부모를 떠나 이곳까지 왔는데. 당신이 내게 한다는 것이 고작 이것입니까? 내 아내와 자식을 데려가는 것이 당신의 뜻이냐구요. 저와 캐롤라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선교사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차라리 저도 데려가지 왜 저 혼자만 이렇게 남겨두셨습니까? 아무 말도 없이 그렇게 계시지만 말고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하나님 당신은 사랑이시라고 했잖아요. 정말 당신이 사랑이신 분이 맞아요? 그런 분이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거예요.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것인지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토마스는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많은 날을 헤매어 보았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분노와 원망은 가라앉지 않았다. 토마스는 런던선교회에 편지를 썼다.
"처음 편지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이 지난달 24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그는 런던선교회에 선교사 사직서를 제출하고 중국 해상세관에 통역으로 취직하였다. 세관에 취직한 그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일하는 것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에 토마스는 우연한 기회에 조선인 동지사 즉, 조선시대에 동지를 전후하여 중국에 공물을 갖고 보내던 사신 일행을 만나서 조선 내에서의 카톨릭교도들에 관한 수난을 듣게 되었다.
 
동지사로부터 카톨릭교도들이 참수당하는 소식을 듣게 된 토마스의 마음에는 또 다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조선에서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며, 순교의 피를 흘리고 있다는 동지사의 말이 그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 이제부터 나의 선교지는 조선이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어! "
토마스의 마음은 조선에 대한 선교열정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으로 마음을 불태우고 있을 때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윌리암슨 선교사가 그를 찾아왔다.
 
"토마스, 계속하여 세관에서 통역하는 일만 할 생각이오?
당신이 아내를 잃은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를 잃은 아픔을 떨쳐버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토마스, 당신은 중국어와 러시아어, 몽골어 등의 언어에 능통한데 하나님께서 왜 당신에게 이러한 언어의 재능을 주셨을 것 같소. 복음전하는 것에 사용하도록 함이 아니겠소."
"그렇지 않아도 세관에 사표를 내려던 참입니다.
 
저는 그동안 제 믿음이 좋아서 이곳 중국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게 된 줄 알았는데, 캐롤라인의 죽음앞에서 사정없이 흔들리는 제 약한 모습을 보면서 제가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자식을 무덤에 묻는 아픔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이제 실감이 납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잠시도 제 스스로 설 수 없는 자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토마스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복음전하기 위해 준비된 결연한 모습이 보였다.
 
"윌리암슨, 사실은 얼마 전에 조선의 동지사를 만나 그곳 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조선에는 많은 카톨릭신자들이 예수를 믿는 것으로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오작통이라고 하여 한 가족이 예수를 믿으면 다섯가족이 죽음을 당하는 등의 핍박을 당하고 있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제 마음은 어떻게 하면 제가 조선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답니다. 저는 중국에 복음전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제가 조선에 복음전하길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럼 내 당장 조선에서 나를 찾아온 두 사람을 만나게 해 드리지요."
 
윌리암슨의 말에 토마스의 마음은 설레이기 시작했다. 윌리암슨의 안내를 받으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자 두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이 분은 토마스목사입니다. 인사하시지요."
 
윌리암슨의 말을 들은 두 젊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저는 김좌평입니다.저는 최선일입니다." 하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토마스목사입니다. 저는 조선에 가서 야소(예수)교를 전하려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 조선에 가서 야소교를 전하겠다는 토마스의 말에 놀란 두 젊은이는
"예-예-- 안됩니다. 조선은 지금 박해가 심해서 야소를 믿던 우리도 목숨을 걸고 피해 왔습니다. 조선에 있다간 칼날에 맞아 죽습니다."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젊은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토마스목사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칼날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순교당하는 겁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다시 조선으로 갑시다."하는 말에
"글쎄 돌아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라니까요." 두 젊은이는 손을 내저으며 만류하였다.
 
"그건 다시 사는 겁니다. 거듭나는 거지요."
젊은이들은 토마스목사의 말을 알아듣기 어렵다는 듯 어안이 벙벙하였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하고 토마스목사가 말을 꺼내자
"마태복음--?"하면서 젊은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성경을 안가지고 계십니까?"
 
"없습니다.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은 성경책과 교리문답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성경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두 젊은이가 합창하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성경책을요? 저를 조선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제가 그들에게 성경책을 갖다 주겠습니다."
 
결국 두 젊은이는 토마스목사의 말에 감동을 받아 조선으로 떠날 것을 결심하였고 윌리암슨목사는 토마스목사에게 다량의 한문성경을 공급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1865년 9월 4일에 토마스목사는 두 젊은이와 함께 다량의 한문성경을 실은 목선을 타고 제1차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중국의 지포를 출발한
 
그들은 10일 만에 황해도 창린도 자자리 군포에 도착하였다.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사람을 본 토마스는
 
"안녕하세요. 저는 야소교 목사입니다. 이 책은 야소교 책입니다. 받으세요" 외치면서 그들에게 성경을 내밀었다.
"에그머니나, 이상하게 생긴 코쟁이가 어떻게 우리말을 하지?"
 
주민들은 토마스목사가 건네주는 성경책을 받아들었다. 토마스 목사는 백령도 부근의 섬을 2개월 반 동안 돌면서 섬주민들에게 성경책을 주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가르쳤다. 토마스목사는 동시에 섬주민들에게 많은 조선말을 배웠다.
 
토마스목사가 돌아간 후 관가에서는 성경책이 법으로 금하는 천주학쟁이들의 책이라고 하여 백령도 참사로 하여금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회수하도록 하였는데 그때 거두어 들인 책이 99권이나 되었다.
 
토마스목사 일행은 서울로 가서 전도할 생각으로 범선을 타고 한강을 향하였으나 난데없는 폭풍으로 접근치 못하고 표류하다가 북경으로 되돌아왔다. 이 일로 1866년 4월까지 북경에 체재하던 토마스목사는 조선의 동지사 일행을 만나 친숙한 교제를 나누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동지사인 평양감사 박규수대감을 만나
 
"저는 야소교목사 토마스입니다."
"오-오 어떻게 조선말을 잘 하시오? 놀랍소이다."
"작년에 조선에 가서 배웠습니다."
"난 박규수라 하오."
"지난 번에 조선에 가서 천주교 박해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들었습니까? 지금은 그렇게 심하지는 않소이다."
"저는 또 조선에 갈 생각입니다."
"조선이 그렇게 좋더이까?"
"저는 조선에 가서 야소를 전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마구 뜁니다. 대감에게 제가 이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소이다."
 
토마스목사가 박규수대감에게 선물한 책은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이었다. 그가 조선동지사인 박규수대감을 만나고 나올 때 누군가 따라나와 작은 종이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토마스목사가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고 주춤거리던 그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달아나듯이 뛰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받은 종이쪽지를 읽던 토마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종이쪽지를 들고 있던 토마스목사의 두 손이 가슴에 모아졌다. 그곳에는 "백령도에서 뿌렸던 야소교 책을 꼭 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후로 조선선교에 대한 그의 가슴은 더욱 뜨거워졌고 어떻게든지 조선에 갈 방법을 찾아 나셨다. 그때 조선에는 천주교인들이 핍박을 당하여 강산이 피로 얼룩지고 있었다.
그 사건의 발단은 러시아 군함이 원산에 들어와 통상압력을 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이러한 압력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 때 천주교도였던 승지 남종상 이 대원군을 찾아가 한가지 방도를 제안하였다. 러시아를 격퇴시키려면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그것은 프랑스 신부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신부의 도움을 받으려면 천주교를 인정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원군은 러시아 함대만 격퇴시키면 천주교의 포교를 인정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유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것으로 대원군은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그러던 차에 러시아 함대가 스스로 물러갔다.
 
그때서야 나라의 위기를 이용하여 포교의 자유를 얻으려 했던 남승상의 속셈을 알게 된 대원군은 분노하여 천주교를 사교로 간주하고 책을 불태우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섯 가구 중 한 가구만 천주교를 믿어도 다섯 가구 모두 처형되는 오작통을 실시하였다. 그뿐 아니라 누구든지 서양인과 만나는 사람을 엄하게 다스렸고, 천주교도를 고발하거나 체포하는 사람들에겐 포상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8,000명의 천주교도들이 처형되고 9명의 프랑스 신부가 처형된 병인년 박해의 발단이었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자국인의 신부를 학살한 것을 항의하고 압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프랑스 함대를 조선에 원정을 가도록 하였다.
 
이 때 마침 토마스는 통역으로 동행할 것을 제의받았다. 통역으로 동행할 것을 수락한 토마스는 조선에 가져갈 성경과 전도지를 준비하여 소식이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토마스목사 뭘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소."
"윌리암슨목사님, 왜 프랑스에서 연락이 오지 않는 거죠?"
"프랑스 배는 오지 않는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인 반도지나에 변란이 일어나서 그곳으로 뱃머리를 돌렸다고 합니다. 대신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무역을 위해 조선으로 간답니다. 그 배에 통역관으로 승선하여 합류하는 것이 어떻소?"
 
"오! 그것 잘되었습니다. 지금 그 선장을 만나보면 안될까요?"
"성미도 급하십니다. 마침 지금 그곳으로 가는 길이랍니다. 같이 가봅시다."
"선장님 이 분은 조선말을 잘하시는 토마스목사입니다."
"안녕하시오. 우리는 한양으로 가서 무역을 할 계획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평양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평양감사가 저와 친분이 있어서 도와준다고 약속했는데요. 아직까지 조선과 무역을 시작한 나라가 없는데 누군가 도와준다면 통상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될겁니다."
"글쎄, 그럼 평양으로 가도록 합시다."
 
1866년 8월 9일 토마스목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목적지인 평양에 가기 위하여 대동강을 출발하였고 제2차 조선선교여행에 오른 토마스목사는 이번 조선여행에서 선교를 잘 감당하기 위하여 뱃머리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셔어먼호가 조선국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8월 21일에 포리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배는 미국배로 조선과 무역을 하려고 왔습니다."
"프랑스 배가 아닌가요?"
주민들은 프랑스배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한 듯 하였다.
 
"하나님께서 조선을 사랑하십니다. 자 이걸 받으세요. 성경책입니다."
"이걸 그냥 받아도 됩니까?"
"여러분들에게 선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 소문이 사람들에게 퍼지자 수 많은 사람들이 배 위에 올라와서 배는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이 때 나누어 준 성경이 500여 권이나 되었다.그리고 셔먼호가 북상하여 석호정까지 올라왔을 때 토마스목사는 배의 갑판으로 나와
"야소 (예수)를 믿으세요! 야소를 믿으세요!"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던져 주었다.
 
이때 4일간 머물면서 100여 권의 성경을 주민들에게 주었다. 셔먼호가 석호정에서 만경대까지 다다르자 팽팽한 긴장이 고조되었다. 조선에서는 그 배가 닿는 곳마다 문정관을 파견하여 목적지와 항해의 목적을 물었다. 통역으로 승선한 토마스는 목적지가 평양이며 통상을 원한다는 것을 밝혔다.
 
셔어먼호에서는 양식과 땔감을 요구하였고 조선에서는 그것을 공급해 주었다. 그러나 셔먼호의 미국인 선장은 조선인 이익현을 협상을 하는 것처럼 속여 배로 유인한 다음 그를 억류하였다. 이것을 알게 된 토마스목사는 선장에게
 
"이러면 안됩니다. 어서 저 사람을 보내주시오."
"당신은 상관마시오. 내가 선장이요."
"정말 조선과 교역을 원하신다면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두고 보시오 저들은 곧 내 말을 듣고 통상을 요구해 올 것이오."
"이건 비겁한 짓입니다. 빨리 저 사람을 보내고 저들에게 잘못을 사과하시오"
그러나 선장은 토마스목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익현의 억류로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은 소극적이던 자세를 버리고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틈에 박춘권이라는 부교가 이익현을 셔먼호에서 구출하였다. 대포로 공격을 하던 셔어먼호 선장은 조선군사들의 공격이 거세지자 퇴각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홍수로 불어났던 물이 줄어들어 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배는 모래에 좌초되었다. 이 순간을 놓칠리 없던 조선의 군사들은 일제히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이 순간에 토마스 목사는
"야소" "야소 믿으시오!" "야소!" 소리치며 배 안에 있던 성경을 군사들에게 던졌다.
"잠깐, 항복하겠으니 우리를 돌려 보내주시오." 배 안에 있던 선장이 외쳤다.
"항복하면 돌려보내주겠오. 잠깐만 기다리시오." 하는 소리와 함께 대포는 조선의 군사들을 향해 발사되었다. 선장의 비열한 처사에 화가 난 조선의 군사들이 일제히 횃불을 싣고 셔먼호에 접근하여 불화살을 쏘아대었다. 배에 떨어진 불화살로 셔어먼호는 불타기 시작했다.
 
배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서 강으로 뛰어내렸고 목숨을 건져 뭍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성난 조선의 군사들에 의하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대동강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배가 활활 타오르고 있는 와중에서도 누군가 한손에 백기를 들고는 "야소, 야소" 외치면서 성경책을 던졌다.
"야 저러다가 저 사람 불타 죽겠다. 야소교 목사라고 했던 사람이지 않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의 옷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순간 두 팔을 높이 든 토마스는 "야소!" 큰 소리로 외치더니 강물에 뛰어내렸다.
 
헤엄을 쳐서 뭍으로 나온 그를 목베이려고 누군가 칼을 쳐들었을 때, 부교인 박춘권은 그를 생포하도록 명령하였다.
"당신은 총 한번 쏘지 않고 책만 던지던데."
"저희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오."
토마스목사 외에도 3명의 사람이 생포되었다.
 
평양감사는 이들에게 국법을 어기고 사교를 전하고 백성들을 살해하였으므로 모두 부교인 박춘권으로 하여금 참수토록 명하였다. 죄수로 묶여 있는 그들은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만을 찾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대동강변에서 국법에 따라 한 사람씩 목을 베는 형벌이 실시되었다. 선장과 중국서기인 조능봉, 이팔행이 먼저 목베임을 당하였다.
 
"다음 영국 야소교목사 토마스"하자 북소리가 둥-둥-둥 울리기 시작했다. 칼을 잡은 박부교의 손이 높이 올려진 순간이었다.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물건입니다."
 
이 말에 멈칫하고 놀란 박부교는 토마스목사가 내미는 작은 보따리를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그러자 토마스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일로 조선땅에 뿌린 복음이 열매로 맺게 하여 주옵소서."
 
1866년 9월 3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목사는 대동강의 한사정 백사장에서 순교의 피를 뿌렸다.
토마스가 죽고난 다음 33년이 지난 1899년의 일이다.
"목사님!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못살겠습니다.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인 박춘권입니다. 그 때 그가 죽어가면서 제게 주었던 작은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경책이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제 마음이 찔려서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마펫선교사의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영감님, 영감님이 토마스목사를 직접 보셨단 말입니까?"
"보다마다요. 제가 토마스목사를 죽였다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토마스목사의 죽음을 통하여 영감님과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영감님도 예수를 믿고 전하면 됩니다."
 
"목사님, 정말 그럴까요? 그때 셔어먼호가 불타는 가운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을 던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여관에 갔을 때 방안이 온통 성경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을 불러서 연유를 알아보니 토마스목사가 포리에서 500여 권의 성경을 배포할 때 박영식이라는 평양감청 경비가 사람들이 버리는 책을 주워다가 도배를 했답니다.
 
그것을 여관주인인 최치량이 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관에 묵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제게 들려주면서 자신도 예수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알기로도 토마스목사에게 성경을 받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많습니다.
 
홍신길은 후에 대동문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동생도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고, 김영섭은 원래 천도교였으나 동생 종권과 함께 교인이 되어 장로가 되고, 황명대는 셔먼호가 불탈 때 "야소, 야소"하는 소리를 듣고 평양 초대교회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습니다."
 
이렇게 토마스목사가 죽음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뿌렸던 성경은 살아서 조선의 교회가 세워지는 초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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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아이콘 게시판 이미지 삽입 방법 관리자 2015.09.07 0 4455
3054 당신은 내형제 입니다 강릉최 2019.07.18 0 31
3053 모리아 걷기회 산정호수 둘레길을 걷다 (2) 개혁이 2019.07.16 0 143
3052 77번까지도 용서하라 신일섭 2019.07.16 0 56
3051 한국 기독교 이단의 원조 지피지기 2019.07.16 0 40
3050 __ 기업들을 망하게하는 문정권을 보시라___ 전도꾼 조무웅목사 2019.07.14 0 101
3049 노방전도자 평창 수양관 초청잔치 (2) 개혁이 2019.07.13 0 141
3048 자사고 뭐가 문제? 김용택 2019.07.12 0 80
3047 영혼 에 대해 신일수 2019.07.12 0 101
3046 ~~ 좌파 종북 목사, 장로,교인들은100%가짜... 전도꾼 조무웅목사 2019.07.10 0 141
3045 제5차 모리아 걷기회 가 15일 산정호수 둘레... 개혁이 2019.07.09 0 203
3044 노방전도자 초청잔치가 평창 수양관 에서 8-10일... 개혁이 2019.07.09 0 181
3043   re : 노방전도자 초청잔치가 평창 수양관 에서... 전도꾼 조무웅목사 2019.07.10 0 31
3042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아니하며 ... 김근수 2019.07.07 0 122
3041 카토릭의 오해 이승만 2019.07.05 0 81
3040 캄보디아 에서 노동현 선교사 노동현 2019.07.05 0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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