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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사
조회 66 추천 0 비추천 0 2018-12-02 10:06 작성자 : 서교수
1. 교리와 교리사

1.1. 교리와 교리사

“교리란?”
교리는 “기독교의 기본진리”다. 기독교는 특별계시에 근거한 구원종교이기 때문에 근본진리를 갖게 되는데, 이 근본진리를 인정하면 기독교가 되고 부정하면 기독교가 되지 못한다. 기독교의 교리는 계시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권위를 갖는다. 교리는 교회의 근본 신앙 조목(articuli fidei)이며 하나님의 구원진리를 신적 권위에 근거하여 신앙고백 형식으로 표현한 명제가 교리가 된다. 교리 중에서 교회 존립에 필수적인 것을 교회가 신앙고백 형식으로 채택한 신앙 조항들이 교리로 공식화되었다. 교리는 성경 계시에서 유래하므로 교리는 반드시 믿고 순종해야 할 문장들이다. (sententiae quibus credi aut obtemperari necesse est propter mandatum dei)
교리는 교회가 구원 진리를 이해한 것을 신앙 조항으로 표현하고 고백하며 그 진리를 지키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진리가 된다. 교리는 성경에 계시된 구원진리를 교회가 신앙고백으로 표현, 즉 공교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공교회의 승인은 교회가 근본진리를 공적으로 신앙고백 했음을 말해 준다. 교리는 교회의 신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성경의 진리를 믿는 교회의 신앙이 교리를 결정했으므로, 모든 교리는 구원과 구속과 관계가 있다. 따라서 교리들은 이론적 성격이 아니고 구원 진리의 표현이다.
교리가 형성될 때 교회의 자의적 이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교리는 성경이 교회로 하여금 구원 진리를 이해하도록 인도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교리에 대해서 하르낙 (adolf harnack)은 교리가 성경에서 나온 진리를 공식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희랍화”로 보았으나 성령께서 교회의 구원 진리의 이해를 도우므로 지금의 교리들이 공식화되었다.
교리의 공식화는 성경에 계시된 구원 진리를 성령의 인도에 의해 이해된 대로 이루어진다. 신학자의 작업 보다 성경 진리와의 합치가 더 중요하다. 성경 진리와 합치하지 않으면 그 교리는 교회에 의해서 배척되고 수납이 거부되었다. 그러므로 교리 형성에 성령의 인도가 결정적이라고 해야 한다.

“교리 발생: 이단의 위협으로 정통신앙 확정의 필요성”
교리는 교회 존립이 위협받고 있을 때 발생했다. 교회의 첫 신앙고백(credo, credimus)은 주 예수(kurioj ihsouj, kyrios iesous)였다. 그들은 모든 사도의 가르침(tota doctrina)를 믿었다. 그러다 교회의 진행과 함께 이단의 발생으로 우리의 믿음(fides)을 분명히 하고 그 한계를 설정할 필요를 느끼고 바른 믿음의 조항들(articuli fideithoxae)을 정했다.
바른 믿음 곧 정통신앙(fidesthodoxa)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도들의 가르침을 명제화한 것이 2세기 중엽에 나타난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이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작성한 것이 아니라 사도의 가르침을 요약한 것이다. 사도신경과 거의 동시에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이 나타났다. “신앙규범”은 사도신경보다 더 자세하여 동방교회가 사용했다. 동방교회는 신앙규범을, 서방교회는 사도신경을 사용하고 있다. 교리 작성을 위해서는 신학자들이 주로 교리를 공식화하였고 공교회가 승인하여 교리가 탄생되었다. 둘째로, 교회의 자체 필요성 곧 교회가 가진 믿음 내용을 분명히 하고 신자들을 올바로 교육하기 위해 교리를 확실하게 했다.

“교리의 시대적 전개”
삼위일체 교리: 교리는 기독교의 근본진리들이지만 단번에 이해되고 공식화되지 않았다. 교회의 진리 이해와 함께 개진되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사 구원을 이루었으면 기독교만이 참 종교요 유일한 구원종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으로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이 신앙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신성 교리인 삼위일체 교리가 공식화되었다. 기독교는 유일신론에 근거해서 발전하였으므로 예수가 하나님 아버지처럼 하나님으로 이해되고 신앙 고백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레안(areios)주의가 일어나 325ad 니카야 공회의부터 4-5세기경까지 오랜 논쟁을 통하여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 삼위일체 교리도 동서 교회 간에 완전한 일치를 보지는 못했다.
기독론 논쟁: 삼위일체 논쟁이 끝날 무렵 기독론 논쟁이 대두되었다. 기독교의 근본 진리인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면 어떻게 하나의 인격이면서 하나님이며 사람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되었다. 기독론의 논쟁은 오랜 논쟁을 거쳐 5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어 431ad 에베소 공회의에서 시작되어 451ad 칼케돈 공회의에서 공식화되었지만 논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칼케돈 공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vere deus)과 “참 사람”(vere homo)으로서 한 인격에 두 본성을 가지신 것을 정통 교리로 확정했다.
“은혜와 죄의 관계가 서방교회에서 대두”: 기독론 교리가 확정되므로 은혜와 죄의 관계가 서방 교회에서 크게 대두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와 펠라기우스(pelagius) 간에 전개된 논쟁에 동방교회는 참여하지 않았다. 동방교회는 “타락”을 다루는 펠라기우스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동방교회는 “신화”(deificatio)를 신앙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동방교회는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로 만족했다.
“이신칭의 교리 확정”: 종교개혁은 구원방식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에 믿음과 선생이 아니라 단지 믿음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만으로(sola gratia)를 취했다.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종교개혁의 근본 교리가 되었다.

“교리의 필요성”
① 교리는 교회이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constitutivus ecclesiae)이다. 교리를 아는 것은 바른 신앙이 무엇인 줄을 아는 것이므로 바른 신앙에 서게 되고 이단적인 사상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② 교리가 교회 존립의 기초이므로 교리의 이해는 성경의 진리들을 바로 이해하게 해주는 길잡이가 된다. 성경의 해석이 교회의 교리와 일치하면 바른 주석이고 그렇지 않으면 바른 해석이 아니다. 주석 자체만으로는 바른 주석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다. ③ 교리는 교회의 근본 진리이므로 모든 신학의 기초가 된다. 교리는 신학적 작업에 의해서 발생했지만 모든 신학함에 있어서 그 출발점이 되고 그 표준이 된다. 그래서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지키고 보호하여 기독교가 기독교로 남게 하는 일을 한다. ④ 신학은 교리를 설명하고 표현하여 기독교의 불변의 진리로 남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 교리는 신학의 표준과 규범으로 역사한다.

“교리사의 직임”
교리사 (historia dogmatum, dogmengeschichte)는 교회의 교리들을 그 탐구의 대상으로 갖는다. 교리사는 교리의 성경적 확장을 재생산한다. 교리사는 교리들의 공식화 과정을 기술한다. 교리사는 원본들을 직접 탐구하므로 교리 발생의 원천들과 그 귀결에 이르도록 하는 세력들을 제시한다. 교리사는 교리의 공식화에 이르도록 하는 필연적인 과정과 기원을 밝혀, 그 교리를 교회가 필연적으로 수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그 직임으로 삼는다. 교리사는 교리들이 서로 떨어진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것임임을 밝힌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교리에서 도출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성교리와 삼위일체 교리는 별개가 아니다.

“교리사의 전개방식”
교리사는 교리의 발생과정과 그 결정을 다루는 학문이므로 교리가 처음 어떤 상황에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살피며 교리 공식화에 이르도록 한 신학자들의 저술들을 직접 살펴서 교리가 그렇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교리 공식화에 철학적 용어들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희랍화의 결과가 아니라 성경적인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개진하기 위함인 것을 밝힌다. 교리사는 “신학사가 아니므로” 교리 공식화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교부들의 사상만을 다룬다. 그리하여 삼위일체 교리의 공식화 과정에서는 삼위일체 논의들만 다루고 기독론 교리의 공식화 과정에서는 기독론 논의만 다룬다.

“교리사의 구분”
1) 교리사는 처음 교리(dogma)인 니카야 신경(symbolum nicaenum, nicene creed)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nicaenum 뿐 아니라 후기 교리 구성이 모두 고대 카톨릭 교회의 신앙과 진리 이해에 의거하므로 교리사는 속사도 교부 시대부터 시작한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종교개혁으로 발생한 개신교회의 신앙 고백서들은 고대교회의 교리와 같은 보편적 타당성 을 갖지 못하나 교리의 성격을 가진다.
2) 교리사는 세 시대로 구분되는데, 본 교리사는 고대의 두 기본 교리인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만 다룬다.
① 고대교회에서 교리가 형성되었다: 속사도 교부들의 견해와 고대교회 시대의 신학적 교리 발전을 제시하므로 교리 성립의 근거를 제시한다. 여기서는 신앙의 규범 (regula fidei, 120-150ad)과 사도신경도 제시한다. 그 다음 희랍 교회 지반에서 이루어진 교리들 곧 삼위일체, 기독론 교리, 성화숭배를 주로 제시하면서 서방 교회 지반에서 이루어진 교리 전개도 제시한다.
② 중세 교회에서 교리가 유지되었지만 고대교회의 교리들이 변형되었기 때문에 중세 교리사는 고대 교리들이 희랍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조화 시도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그 과정을 제시해야 한다.
③ 종교 개혁에 의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신학이 어떻게 루터교회의 교리가 되었는지를 살핀다.
④ 칼빈(johannes calvin, 1509-1564)에 의한 바른 기독교 이해가 개혁교회의 교리로 확정된 과정을 살펴야 한다. 돌트레히트 총회에서 칼빈주의 교리들의 확정도 다루어야 한다.
⑤ 반동종교개혁 (counter-reformation)에 의해 고대교회의 교리들에 반대해서 이루어진 로마교회의 교리 확정인 “트렌트” (tridentum, trent, 1545) 공회의의 교리 결정을 다루어야 한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론을 거부한 것과 위계질서의 확립 (vaticanum,  1870)을 다루게 된다. 종교다원주의를 교리로 정한 바티칸 제2공회의 (vaticanum Ⅱ, 1962-65)도 다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교회는 근세의 결정들도 고대교회의 교리와 같은 권위를 갖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⑥ 본 교리사에서는 삼위일체와 기독론 교리를 취급하기 때문에, 속사도 교부들의 사상에 서 출발하여 787년 제7차 에큐메닉 공회의에서 성상숭배 결정까지를 다루는 것에 국한한다.




제1편 교리발생의 전제들


2. 구약성경의 교리적 근거

2.1. 유일신 교리 (dogma of monotheism)

구약 백성들은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이 여호와로서 창조주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천지 창조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주로 일하신다는 확신에서 살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 삼은 여호와임을 확신하고 섬겼다.
유대교는 유일신 교리를 유일한 교리로 삼았기 때문에 유일신을 강조하는 신명기 6:4을 암송했다. 모세의 글과 모든 선지자들의 글의 가장 기본이 되고 핵심이 되는 것이 “쉐마”이다. 쉐마는 기도가 아니라 신앙고백으로서 유일신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 쉐마를 암송하여 자기들의 거룩한 사명 곧 유일신 신앙을 고수할 것을 다짐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접근할 수 없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단지 일년에 두 번만 대제사장이 이 여호와 이름을 부르게 하였다. 화해절과 지성절에만 이 이름을 부르고 그 외는 “아도나이”(????, adonai), 주님으로 대치하여 불렀다. 여호와 하나님은 “숨겨진 하나님”(deus absconditus)으로 이해되었다. 이런 견해는 예루살렘 성전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은 지성소에 계시는데 그곳은 성전 내면에 축조되었으므로 모든 빛이 차단되었고 창이 전혀 없었으며 또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만 들어갈 수 있게 허락되었다. 그러므로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은 접근불가하고 숨어 계시는 하나님으로 표상되었다.
“숨겨진 하나님 사상”: 하나님은 처음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부터서 어두운데서 창조를 시작하시고 밝은 빛을 내셨음이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숨겨지신 하나님을 가장 많이 말하고 강조한 선지자는 이사야였다(사 45:15). 어두운 곳에 계신 하나님의 표상은 하나님의 주권성을 포함하고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임의로 어찌 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유일신 신앙을 신약교회가 그대로 받았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창조주와 구속주로 믿는 유일신 사상이 신약 교회의 기본 신앙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도 유일신 사상을 그대로 받았다(막 12:29-30). 여호와를 후기 구약 교회는 아도나이, 주님으로 호칭하였다. 그런데 칠십인경(lxx)의 번역을 따라 주님(kurioj)의 호칭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적용되므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여호와와 동등하고 동일자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렇게 유일신 사상에서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가 형성되는 기반을 이루었다.

2.2. 언약 관계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출애굽한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소유가 되었다(출 19:5-6 19:1-24:11). 언약은 하나님이 한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여 자기의 백성으로 삼고 그들의 하나님으로 섬김과 경배를 받으시려고 하셨다(출 19:16-23:19).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 되는 길은 언제든지 언약 체결을 통해서 된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기 위하여 성막을 짓게 하시고 성막에 거처를 정하시므로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 백성들 각자 안에 거하셔야 하지만 아직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히 속량되지 못하였으므로 전체 위에 거처하셨다. 따라서 성전이 하나님의 거소요 임재의 표가 되었다.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면 그들은 거룩해야 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존재이므로 죄 가운데는 거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출 19:6 레 19:2 신 23:14). 하나님은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고 또 거룩한 백성을 가지기 위해서 그들에게 율법을 베푸셨다. 율법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로 주어졌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남고 존속된 것은 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 가나안에서 이방신들을 섬길 때도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갈 명분은 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출 20-24장)이 항상 이스라엘을 여호와 하나님에게 매이게 하였고 여호와 종교를 버렸다가도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명분을 갖게 하였다. 왜냐하면 이 언약 체결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깊은 선민의식을 가졌다. 하나님의 선택되고 소유된 백성이라는 의식이 늘 그들을 지배하였다. 하나님은 창조 후에도 첫 인류와 언약을 체결하셨고 이스라엘을 백성 삼고자 하실 때에도 언약을 체결하셨다.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세워질 새언약을 위해 존재하였다. 그 새언약은 모든 인류를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 일을 위해서 준비되었다. 이스라엘과의 언약은 교회를 목표하고 이루어졌다.

2.3. 율법 제도

율법은 “언약백성의 생활규범”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체결하사 자기의 백성을 삼으셨다. 그리고 언약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계명을 베푸셨다. 언약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으로 주신 것이 율법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므로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했다. 율법은 언약 백성이 의존해서 살 거룩한 하나님의 계명이므로 율법을 지킴으로만 언약 백성으로 존속할 수 있었다.
율법은 언약 백성들의 생의 질서를 표현하였다. 언약은 약속된 거룩이고 율법은 이 거룩을 지키는 울타리로 그 훼손을 막는 일을 한다. 율법을 지키면 언약의 거룩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소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거룩해야 했다. 이 거룩에의 길은 언약의 법을 지킴으로 되었다. 그러므로 거룩의 요구가 계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유일신 교리가 구약 종교의 유일한 근거이고 “토라”(율법, 가르침, 교훈)는 언약 백성의 생의 법칙이었다.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백성 되었으니 그 백성으로 남 는 길은 율법에 매이고 그 율법을 신실하게 지킴으로 되었다. 이스라엘은 언약 체결을 통해 여호와만 하나님으로 섬기도록 작정되었고 이 하나님 섬김의 법으로 율법이 수여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여호와를 섬김은 그의 법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들어야 했다. 과거 하나님의 큰 구원 사역을 선포 받을 뿐 아니라 구원의 성취를 약속으로 받았다. 이방인들이 신앙 대상을 보고 섬기는 것과 달리, 이스라엘은 하나님은 볼 수 없고 단지 말씀의 선포만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상을 표현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람이나 짐승의 상도 그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계시의 말씀으로만 삶으로 신 6:4은 그 중에서 최고 계명으로 평가되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불순종하자, 율법은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지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했다. 율법은 그 임무를 다하였다. 율법은 지킬 수 없고 지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지킬 수 없어서 멸망밖에 다른 길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율법의 완성자가 와야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고 구원이 가능하여 율법이 목표한 것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므로 그 기능을 다하였다. 구원은 구속 주를 믿음으로 되고 율법을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므로 율법은 그 사명을 다하였다.

2.3. 제사제도

제사제도는 율법을 어긴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길이요, 백성들이 살 길이다. 백성의 임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제사를 하여 이루어졌다. 율법은 제사제도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한 법도를 제시하였다. 계시 종교이므로 경배 받으실 분이 예배의식을 정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도 하나님이 정한 예배의식에 합당하게 드려질 때만 하나님이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셨다. 이 성전제사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기능을 하였다. 제사는 범죄한 자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서 그들의 죄를 사해주기 때문이다.
제사를 통해서 백성들은 자기들의 범죄와 계명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용서되어 하나님 의 백성으로 남을 수 있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아 하나님을 섬기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죄가 용서되는 길은 피 흘림으로만이 가능하게 정해졌다(레 17:11). 따라서 속죄를 위해 짐승으로 제사하므로 범한 계명과 범죄를 용서받고 다시 백성으로 살 수 있었다. 제사가 하나님의 호의를 입고 삶을 계속하는 길이었다. 그러므로 제사제도는 속죄를 위해서 세워졌지만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업는 길이었다. 제사제도는 인간의 공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의에 의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수행되었다. 예루살렘을 하나님이 제사를 받으시는 곳으로 택정 하셨기 때문이다(신 12:5,11,14 대하 7:12). 그러므로 성전이 이스라엘의 생활의 중심점이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고 거기에로 귀결되었다. 성전이 이스라엘의 생활의 중심이 된 것은 단지 성전이 제사의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전은 하나님의 암재의 자리였다(신 12:5,11 왕상 9:3 대하 6:2). 따라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러서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엄재하심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자연히 이스라엘의 삶과 모든 활동은 예루살렘 성전에로 집중되고 그곳을 목표하고 이루어졌다.
성전제사는 반복되고 계속 수행되었지만 나라는 멸망하고 백성들은 범죄를 쉴 수가 없었다.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가 완전한 제사가 되지 못하여 속죄가 이루어지지 않음이 이스라엘의 의식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스 9:6 렘 5:25 30:14). 포로기간을 빼고 성전제사가 중단된 적이 없었다. 제사는 계속되어도 속죄는 완전히 이루어지지 못하여 범죄로 인한 멸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예루살렘 성전제사는 속죄와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해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 인식된 것이다(사 66:3). 이것은 바로 성전제사는 완전한 속죄제사를 가리키기 위해 세워졌음을 밝히는 것이다. 레위 제사제도는 완전한 제사로 구원을 완전히 성취하는 참 제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를 바라보게 하는 임무를 했다. 그래서 레위 제사제도는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하였다.

2.5. 유월절 경축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으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며 한 민족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근거들을 마련하셨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이 출애굽을 축하하고 기념하였다. 출애굽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유윌절 행사는 속죄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제사만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큰 구원을 감사하고 기념하는 것이었다.성전제사는 유월절 경축이 그 절정을 이룬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구원 사역으로 축하되었다. 출애굽이 민족적 단위로 존재하기 시작한 시점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출애굽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그리하여 언약의 회복과 새 은혜 시대의 시작은 그 유월절 제사의 반복에서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므로 나타날 평화의 때를 바라보는 소망이 계속되게 되었다. 출애굽의 큰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이 더 크고 완 전한 구원을 이루실 것으로 기대하므로 완전한 구속은 하나님의 미래 약속으로 남았다. 이 구원은 미래의 구속주가 이루신다.
유월절 식사에서 문이 열려져 있어서 구속주가 언제든지 들어오실 수 있다는 기대가 유월절 경축의 말씀에서 자라났다. 즉 처음 구속에 근거해서 미래의 완전한 구속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월절을 경축할 때마다 구원을 완성할 구원자 곧 메시아를 하나님이 보내실 것을 믿었고 메시아의 도래를 대망하게 되었다. 과거에 큰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이 장래에 완전한 구원을 이루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불완전한 삶의 체계가 해소되고 완전한 평화의 세상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살게 되었다. 미래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바라며 살게 되어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 구원에 소망을 두게 되었다. 이 일이 메시아 약속의 실현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메시아 시대를 앞당기는 길은 율법을 잘 지키는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율법을 잘 지키면 메시아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다고 믿고 바른 율법의 준수를 위해 전력하는 무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메시아 대망이 팽배해 있는 이스라엘에게 그리스도는 자기를 메시아로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백성들도 예수의 행적에서 메시아 약속의 성취가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였다. 유월절 경축의 절정은 유월절의 속죄 제사에 있었다(출 12:1-36). 이 제사가 모든 이스라엘의 제사 중에 가장 중요한 제사였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출할 때 애굽의 장자를 대속물로 하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장자로 구출하셨다. 그러므로 이 구출을 기념하여 감사 제사를 하였고 또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사유하시기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렸다. 이 구속을 위한 제사 개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백성들의 모든 죄를 담당한 제물로 제시될 수 있었다.

2.6. 선지자 제도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부단히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에서 이탈하는 것을 경고하고 다시 하나님 섬김에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셨다. 하나님의 법에 서 이탈할 때 첫 번째 계명은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는 계명이었다. 백성들이 언약 파기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징계를 보내셔서 압제를 받고 또 국가적 존립이 위협되는 경우들을 만나게 하셨다. 이 국가적인 존립의 위험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벌하시기 위해 섭리적인 조치로 해석하게 하셨다. 돌이켜서 여호와만 섬기면 모든 국가적인 재앙을 돌이켜 없이하겠다고 약속하셨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만을 의뢰하면 선한 해결을 주시겠다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다. 선지자들은 이처럼 역사의 진행을 해석하여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드러내었다
멸망의 위기에 선지자들은 민족의 회복과 회복 후의 큰 구원섭리를 선포하였다. 이스라엘이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로에서 돌아와서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이 될 것임을 강조하여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게 하였다. 선지자들은 위기의 경우에 책망과 위로와 깨우침을 베풀고 이적들을 행하여 하나님이 아직도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지키시는 것을 알게 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들의 근본 사명은 백성들을 다시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바로 섬기게 하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어떻게 섬기는 것이 바른 섬김인지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였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을 설명하고 제시하였다. 한 민족이 바로 서는 것도 중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전 세계의 구원의 전령으로 일함을 선포하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모든 땅위의 종족들이 구원에 이를 것이다. 선지자들로 훈련받은 백성들이 예수의 출현을 그 선지자로 이해하였고 기대하였다(요 1:21-25). 예수도 이 선지자의 반열에 섰고 그 선지자로 이해되었다(마 21:11).

2.7. 메시아 대망

이스라엘은 노예로 출발하였고 포로와 노예생활로 끝났다. 주전 15세기 출애굽 후 8세기 말엽까지 이스라엘은 민족적, 독립적인 왕국을 이루며 살았으나 주전 722 북방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여 포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586에 남방 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하였다. 소수의 무리들이 바벨론 제국에서 게토를 이루어 살며 해방과 귀환의 날을 기다렸다. 그후 파사의 고레스에 의해 귀환령이 내려 4만 여명이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건축하고 살았지만 파사의 속국이었고 독립된 나라가 되지 못한 것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가 되어 살지 못하고 속국이 되어 사는 것은 파사 제국의 시대를 지나 헬라제국에 매여 살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의 독립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버렸다. 헬라제국에 매여 살다가 마카비 가문에 의해 나라가 처음으로 bc 165년경에 독립하여 백 여 년간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으나 왕실의 내분과 사두개파의 반발로 bc 63에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이런 여러 세대에 걸친 노예와 속국으로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만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예레미야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이 약속한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파사와 헬라제국에서의 독립은 사람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길 외에는 인간의 방식으로는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 옛날 애굽에서의 구출은 모세를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파사와 헬라제국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람의 손으로는 안 되고 여호와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는 길뿐임을 절감하였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는 길은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시는 길뿐이라고 모든 백성이 확신하였다. 그러다가 헬라제국 곧 시리아의 헬라제국에서의 해방과 독립은 마카비 가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고대 역대 제국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인 로마에 속박된 후에는 자유와 독립은 사람의 손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야 이스라엘이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영화로운 다윗 왕국을 세워 세계를 지배하게 하는 길도 하나님이 직접 구원하시는 길뿐이라고 믿고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를 열망하게 되었다. 더 이상 사람에 의한 구원은 불가능하고 불필요하게 여겨졌다. 모든 백성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므로 나타날 메시아 곧 하나님 자신의 구원을 기다렸다.
이런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구원을 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메시아 대망이 온 백성들의 신앙이 된 영적 지반이 아니고서는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등장과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는 자기를 구약 백성들의 지도자들 곧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보기 바란 그런 메시아로 자신을 제시하였다. 이런 메시아 대망의 상황에서만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드릴 수 있었다. 바로 구약 백성들이 메시아의 출현을 열망하고 있을 때 예수가 메시아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 구속을 위한 그의 죽음을 말할 수 있었다. 메시아 대망의 열렬한 신앙에서만 이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을 이해하고 그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인정하고 믿을 수 있는 지반이 조성되었다.

2.8. 고난의 종의 사상

이스라엘은 다윗 같은 영웅적인 메시아를 기대하였다. 이스라엘을 외부의 압제에서 구출하고 모든 민족들 위에 지배하게 해 줄 그런 메시아를 기대했다. 하나님의 통치는 메시아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질 것이다. 메시아의 오심 없이 이스라엘이 강대국들의 압제를 벗어날 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와야만 강대국들의 압제에서 벗어나 다윗 왕국의 영광을 회복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유다도 망하게 되었을 때에 선지자들이 민족적인 수난에 동참 하며 민족의 구원을 간구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허물과 죄과가 아닌데도 고난을 받았다. 민족이 크게 범죄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대신 고난을 받는 과정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의로운 선지자여서 고난과 고통을 당할 이유가 없었음에도 민족을 대신하여 고난받는 고난의 종들이 되었다.
이사야는 육체적인 고통과 고문은 당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과 유대의 멸망을 예견하며 영적으로 큰 고통을 경험하였다. 그러면서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대신 고통을 당하며 민족의 죄 뿐만 아니라 모든 종족들의 죄를 해결하는 고난의 종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고난의 종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해 공의를 행할 뿐만 아니라 이방에게까지 공의를 베푸는 자로 제시되었다(사 42:1-4). 고난의 종은 고난의 종이므로 메시아로 왔어도 풍채와 외모가 별로 흠모하고 사랑할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위하여 일하려는 백성들에게 버림과 모욕을 받고 간고를 겪었으며 질고를 체휼하는 종이었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고난당하였고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해서 찔림을 당하고 몸을 상하여 속죄 제사를 하므로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출할 자이다. 고난의 종은 이스라엘의 죄를 담당할 뿐, 여호와의 신으로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이다. 이 메시아가 고난받음으로 백성들을 회복하고 그들을 구원한다(사 61:1-3).
이사야의 이 예언과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지 않고 고난의 종으로 와서 고난을 받게 되었다(막 10:45). 그 고난은 구약 선지자들이 당했던 고난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는 처참한 고통이었다.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한 이스라엘에게 고난의 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해될 수 없었고 수납될 수가 없었다(요 3:14 8:28 12:32-34). 그러나 고난의 종이 예언되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의 종으로 이스라엘과 세상을 구원하는 대속적인 죽음을 감당할 수 있었다 (요 11:51-52).
메시아가 절대적 권세를 가지고 와서 다윗 왕국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고난의 종으로 와서 죄과를 인해 죽음으로 백성을 구원해낸다는 사상이 준비되었다(사 53:2-12 61:1-3).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고난의 종으로 와서 인류의 죄악을 위해 어린 양으로 죽으므로 세상을 구원하는 새로운 메시아 사상이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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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약 성경의 교리적 근거

3.1. 예수의 메시아 주장과 수행

3.1.1. 예수의 자기 증거
예수는 “자기를 메시아로 선포하고 증거”했다. 예수는 자기가 이스라엘이 바란 메시아임을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사 61:1-2)을 읽어 그것이 자기에게 성취되었다고 하므로 자기의 메시아 직임을 선포하였다(눅 4:16-21 사 61:1-2).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보는 눈과 가르치는 것을 듣는 귀가 복이 있다고 하므로 구약 백성들과 선지자들이 그렇게도 보고 듣기 바랐던 메시아임을 확실하게 하였다(마 13:16-17).
예수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했다. 하나님을 계시하고 알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육신인 아들만이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이스라엘의 메시아임을 알고 의식하였기 때문에 구약 여호와에게 적용되었던 주님(adonai, kurioj) 호칭을 자기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자기를 “주님”이라고 하였다: “주가 쓰시겠다”(마 21:3, o` ku,rioj auvtw/n crei,an ecei) “나를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마 7:21, ouv pa/j o` le,gwn moi ku,rie ku,rie( eivseleu,setai eivj th.n basilei,an tw/n ouvranw/n)
예수는 자신이 구약의 여호와라고 egw eimi로 했다. 요 8:28에 의하면 예수는 자기를 지칭할 때 구약의 야웨 ????의 희랍어형인 egw eimi를 사용하므로 자신 이 구약의 여호와임을 간접적으로 지시하였다. 따라서 이 구약의 여호와 하 나님의 성육신이 자신임을 지시하기 위하여 인자란 호칭을 자기에게 전유적으로 적용하였다(막 2:10,28 10:33,45 1326,29 14:21,62과 공관복음의 평행절들). 예수는 자기가 성육신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성전보다 더 큰이”라고 자신을 지목하였다 (마 12:6). 성전보다 자신이 더 크다고 하므로 바로 자신이 그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간접 화법으로 증거하였다.
예수는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라고 말하므로 죽음에 이르렀다(막 14:61ff). 예수는 자기의 지상 생의 마지막 시간에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로 지시하였다. 이 자기의 호칭이 그의 십자가 처형과 정죄의 근거이다. 이 말씀은 예수 자신의 말(verba ipsissima)이다.

3.1.2. 예수의 전권 주장
예수는 자기를 메시아로서 의식하고 일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자기의 메시아 주장을 산상 수훈의 전권주장을 통하여 숨김없이 나타냈다. 그는 자신을 새 율법의 선포자가 아니고 옛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밝히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 나타내었다. 옛 율법이 아니라 예수의 새 말씀들을 지켜야 하나님 나라에 속하고 그의 백성으로 사는 것임을 분명히 하여 자기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따라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이기 때문에 병자에게 사죄를 선언하였다(마 9:2-6)· 유대교에는 메시아가 사죄의 권세를 갖지 않는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면 충분하여 나라를 회복하여 그 직임을 다 수행한다.
예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편히 쉬게 한다고 하여 죄와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을 가져다주는 메시아임을 강조하였다(마 11:28-30). 이스라엘이 바란 메시아는 정치적인 해방은 가져올 수 있었어도 죄와 율법의 질곡에서 해방은 할 수가 없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며 예수는 자기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였다(마 12:8). 자기가 창조주이고 안식일을 제정한 자임을 제시하고 주장하였다
예수는 공생애 시작을 새 백성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가르침으로 시작하였다. 산상수훈에서 새 백성들이 지켜야할 법도들을 선포하였다. 예수는 메시아로서 새 백성을 세워야 했다. 제자들을 세워 기존 이스라엘을 대치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산상수훈을 통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마 10:2-7).
예수는 메시아로서 죽어 백성들을 구원해야 할 자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성전 경내에서 성전을 헐라 그리하면 삼일에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다고 하였다.
예수는 인자 칭호를 사용했다. “인자”란 자기 칭호를 하나님으로서 사람됨의 신비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인자 곧 사람으로서는 그는 전적으로 인간 세대에 속하고 따라서 고난과 죽음에로(요 12:34) 들어간다.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하나님과 독생하신 아들 간에 독특하고 또 기술하기 어려운 일치가 성립한다. 즉 유일신에 자기를 포함시켰다. “유일하신 아들”(o monogenhj)이 하나님으로 하나님 편에 속함을 강조하였다. 예수는 유일신 신앙에 자기를 포함시켜 유일신 신앙 고백에 새 내용을 담았다.

3.1.3. 메시야직 수행
예수는 자기가 온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고 함이라고 명시하여 메시아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는 고난의 종으로 왔음을 밝혔다(막 10:45 요 10:11-15). 예수는 부활로 자기가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의 죽음, 속죄제사임을 밝혔다. 메시아로서 백성들을 고치고 먹이는 사역을 맡았음을 밝혔다.  

3.2. 초대교회의 신앙고백

3.2.1. 주 예수: 교회의 최초의 신앙고백
베드로의 설교의 중심은 하나님의 구원으로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었다. 이 방식으로 교리 형성의 시초가 되는 신학적 작업을 이루었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행적과 구원 사역을 직접 목도하였으므로 그의 사역 이 하나님의 구원이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살았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그냥 랍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육신인 줄 알았으므로 그에게 구약 여호와에게 적용되었던 주님(kurioj) 칭호를 적용하였다. 예수가 주로서 천지의 대권은 부활로 받았으므로 부활 후부터 “주 예수”라는 고백과 호칭이 주저 없이 이루어졌다.

3.2.2. 예수 부활자를 신앙함
사도들의 선포의 핵심은 주 예수가 우리 죄를 위하여 죽고 부활하였다는 데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선포하였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사역으로서 그의 죽음에 구속을 결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로 주님이요 생명의 주로 고백되고 신앙되었다(행 23:6).

3.2.3.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예수는 구주로서 자원적인 죽음을 당하므로 세상을 구원하였다.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주 만물의 화해자가 되었다. 교회는 예수에 대한 신앙을 찬송시로 공식화하였다(빌 2:5-11 골 1:15-20 딤전 3:16). 이 찬송은 구속의 영역에서 주님의 권능과 주권을 표현한다. 이 공식들은 후에 삼위일체 교리의 공식들의 근거가 되었다.

3.2.4.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인류를 위해 이루어졌으므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간에 누구든지 주 예수의 희생 제사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의에 이르러 구원에 이른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율법 행함이 아니라 주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구원에 이른다(롬 8:8-10).

3.2.5. 예수 하나님의 아들
“구속을 이루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가 된다. 복음서와 초대교회의 전통에서 예수의 인격이 더욱 강조된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다윗의 자손 등과 관련된 모든 것이 더욱 상세히 설명된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사상의 중심에 깊이 서게 되어 교리 형성의 제일 단계가 이루어졌다.

3.3. 바울의 신학

바울은 유대교도로서 가졌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다 버리고 즉 하나님은 성육신하실 수 없다는 생각을 고쳤다. 천상의 창조주이시고 창조 중보자이신 하나님이 성육신 하여 사람이 되시되 종의 형상으로 나타나시어 십자가에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었음을 확실하게 알았다.
바울은 초대교회의 증거들을 더욱 발전시켜 신앙이 논리적인 귀결에 이르도록 했다. 주요 신앙의 요점들 즉 그리스도의 사건을 하나님의 구속 사역으로서 구약에 의해 이해하고 정리하여 교리(dogma) 형성의 길을 제시하였다.

3.3.1. 그리스도의 인격
바울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는 신적 대권자요 창조주로서 성육신하신 분이시다. 하늘에서 하강한 구속주이지 하늘로 높이 올리워져서 경배받는 이방 종교들의 설립자들이나 이방 종교인들이 섬기는 신적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다. 바울은 만물 위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 구주가 되셨음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한다(딛 2:13).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으로서 창조주요 창조 중보자임을 명백히 한다. 그리하여 창조주의 공식을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적용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선재자로서 창조를 직접 이루신 분임을 분명히 한다.
율법 세계에서는 하나님이 성육신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바울은 부활자를 직접 만나므로 선재하신 하나님의 성육신을 이해하는 것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고 공식화한 것을 바울이 취택하였다. 바울은 희랍 세계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혼을 입은 신적 존재자의 의미로 하나님의 아들로 말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할 때 그 호칭은 하나님 아버지와 질적으로 열등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와 본질적인 일치를 전제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에게 사용되었던 어법이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하나님이 권세를 가진 것을 그가 가진 것으로 말하였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간의 본질적인 일치 때문에 바울은 전권 공식을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에게 교차 사용하였다.
하나님 아버지가 자기만의 아버지인 것을 지시하는 호칭인 아빠 아버지라고 불러 예수 자신이 본래 신적인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명백하게 하였다. 바울이 예수를 주라고 부름에 있어서 예루살렘 교회의 전통을 따른 것은 바로 그가 아람어로 된 호칭 “마라나다”(maranatha, 주여 오시옵소서)에서 잘 드러난다.
바울은 이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기원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공식화한 주(kurioj) 칭호를 그리스도에게 아무 주저 없이 사용하였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할 때 그의 하늘의 영광을 지시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바울은 빌 3:29 4:5에서 주께서 심판주로 하늘로부터 오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 주는 예배 의식에 임재해 있는 영적 주가 아니라 심판주로 오실 주님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호칭인 인자를 받아드려 둘째 아담으로 제시하였다. 바울은 참 아담은 그리스도이며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을 명시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말하여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의 근거를 놓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희랍철학을 받지 않고 성경에 근거하여 세웠다.

3.3.2. 그리스도의 사역
바울은 그리스도가 선재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창조사역에 동참하시고 창조를 이루신 중보자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하나님과 세상의 화해로 말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의롭다함으로 말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전우주적이어서 모든 영적 세계를 정복하고 그것들을 무력화하였다고 선언한다. 이 모든 일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것이다.
바울의 기독론은 무엇인가?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사 구속을 이루시고 창조를 완성하셨다고 밝힌다.

3.3.3. 이신 칭의와 복음과 율법의 관계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한다. 아브라함이 할 수 없는 중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어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조상이 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의에 이름은 율법을 지킴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율법과 상관없이 믿음으로 되게 작정되었다. 율법은 구원사적 섭리에서 도입되었다. 그리스도 믿음을 재촉하고 예비하기 위해서 율법이 도입되었을 뿐이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율법으로는 전혀 불가능하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바울은 아브라함에서 출발하고 하박국에서 의인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를 확립함으로 신약의 기독교의 교리를 확립하였다. 각 개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예수를 믿는 것은 이미 구약 선언의 성취가 된다. 바울은 구원의 구원사적 섭리를 강조하였다.

3.3.4. 세례와 성령 받음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다(롬 6:3-11).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에게 연합함은 구속주 자신의 길과 연합함이어서 죽음과 영광의 길에 동참한다.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aparch)가 되고 성령의 내주가 그 보증(arrabwn)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부활과 영생은 확실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죄의 용서에 근거한 칭의를 받았다. 죄에서 해방되었다. 이는 성령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성령으로 사는 것은 율법과 죄의 매임에서 해방이다(롬 6:10-11). 그것은 바로 새창조에 접붙임이어서 새창조물이 된 것이다.
신형상 회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가능하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인데 그와 연합하여 그의 형상을 닮으므로 신형상으로 회복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새창조이고 그리스도는 몸이며 그 지체들은 개별 그리스도인들이다.

3.4. 요한의 신학

3.4.1.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의 동일성
요한은 영원한 아들의 성육신을 말할 때, 아버지와 아들의 본질적 일치를 강조한다(=호모우시오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성육신을 말할 때에 하나님 내에 위격적인 구분이 있음을 알았다. 성육신하신 이는 로고스 하나님이고(요 1:1-14) 독생하신 하나님으로 말한다(요 1:18). 이 하나님이 성육신하사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요한은 이에서 나아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사야가 환상 중에 본 그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강조하므로 성육신하신 이가 바로 구약의 하나님으로 일치시킨다. 이사야가 여호와의 영광을 본 것을 (사 6:1-10)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 것으로 설명하므로(요 12:38-41) 삼위일체 신학에로의 길을 열었다. 요한복음은 도마의 신앙고백으로 마친다: “나의 주 나 의 하나님”(o kurioj mou kai o qeoj mou). 이것은 삼위일체 교리의 근거가 된다.
성육신자와 로고스 곧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 간에 등치가 이루어진다. 여기서 아들과 아버지의 "동일실체"(omoousion)가 귀결된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선재하였음이 증거된다. 영원하신 아들이 바로 지금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증한 것이다.
요한은 성육신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여 가현설을 배척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인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요한은 자기들과 함께 살 때의 경험을 그 증거로 들었다(요일 1:1-2). 그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사 육이 되셨음을 강조하여 영지주의의 가현설을 강력하게 배척하였다.

3.3.2. 성육신하여 인자가 됨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가현이 아니고 완전한 성육신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므로 그 안에 인성과 신성의 두 본성의 연합이 통일성과 변증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할 때 육이라고 하므로 참으로 사람이 되셨음을 강조한다(요 13:4).
예수는 성육신하사 강림하였으므로 이전의 하늘에로 돌아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자로 제시되었고 하나님의 아들로 반복적으로 고백되었다(요 14:9).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였으므로 본래의 영광을 갖지만(요 1:14) 성육신자는 본래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는 영광을 가지므로 자기를 비우셨음을 강조한다(요 12:41 17:5,1). 예수 자신이 한 말들은 자기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하신 것이다(요 12:49-50 14:30). 아버지와 아들이 일치하므로 아들이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가 그 안에서 하는 것이다.
케노시스의 논리는 무엇인가? 지상 예수는 케노시스(kenosis)론의 전제들로부터 묘사되어 있다. 예수는 그의 인간적 형태에서도 세상을 능가하면서도 선재자의 영광보다는 못하나 비밀한 영광을 소유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면 하나님 자신의 계시가 불가능함을 말한다. 요한이 대항해서 싸운 대상은 그노시스주의이다. 이 주의는 하나님의 사람에게의 계시 현현은 단지 가상적으로만 인간의 형체를 입었고 실제로는 순수 영적 존재일 뿐이라는 가현설이었다. 이에 대해 요한은 말씀이 실재로 육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요 1:14 요일 1:1-2).

3.3.3.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
성육신의 목적은 세상 구속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을 세상을 구원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고(요 3:16)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함이라고 선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로 왔으므로 십자가에 달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을 그가 영광을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죽는 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로서의 직임을 다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은 자기 스스로 하는 일이다.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이시므로 이런 십자가에 죽는 일을 하여 사람을 구원하였다(요일 3:16).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은 세상을 구원하여 믿는 자로 다 영생에 이르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요 3:15-16). 그러므로 선한 목자로서 자기의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룩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믿음이 구원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제거되므로 영생에 이른다. 죄가 용서되고 제거되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평안을 주셨다. 예수의 살이 영생에 이르게 하는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그의 살과 피를 받으면 영생에 이른다.

3.3.4. 그리스도와 성령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세례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세례 주는 자로 제시되었다(요 1:33). 그는 성령으로 세례받아 메시아로 임직되었고 성령을 한량없이 받았기 때문이다(요 3:34).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주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 죄를 제거해야 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받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받게 되었다.
요한복음에서 성령은 보혜사로 제시되고 약속되었다.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하므로 자기 자신이 원보혜사임을 전제한다. 성령의 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영이 예수의 메시지를 완성한다는 진술은 신앙의 교리사적 전개의 주초가 되었다(요 16:12-15).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구주로 죽으시고 세상을 구원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령의 본질은 아버지와 아들의 오심이다. 성령의 오심은 성령만의 오심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심이다. 성령의 내주는 하나님의 내주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처음부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구분되는 인격으로 제시되므로 성령을 하나님으로 공식화하는 삼위일체 교리가 요한복음에 굳게 뿌리박고 있다. 성령은 예수의 신인 위격을 통해서 오므로 예수의 얼굴을 나타낸다(요 16:14).
요한은 그노시스주의에 대항하여 영을 소유하면 현세에서도 죄가 없다는 영지주의의 사상에 반대한다.
신약에 있는 믿음의 내용이 교리화 되었지만 교회의 독자적 작성이 아니다. 요한의 신학으로 형성된 교회가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을 확립할 수 있게 준비하였다.

제2편 삼위일체 교리



4. 제2세기 삼위일체론 논의 시작

4.1. 교회의 신앙: “한 하나님 창조주와 주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기본신앙은 “한 하나님 창조주”였다. “유일신 신앙”은 구약에 근거하고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와 사도들에게서 가장 근본적인 신앙이었다. 유일신 신앙은 교회의 근본 신앙이 되었으므로 모든 신경들도 이 “유일신 신앙”으로 출발한다. 이 유일신 교리에서, “삼위일체”로 넘어가는 데 교회의 깊은 반성과 많은 신학적 노력이 있어야 했다. 삼위일체의 신학적 논의와 반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때문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성육신이고 자신의 주장 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교회는 주 예수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된 대로 고백하고 믿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 예수로 구원을 이루었고 그를 통하여 성령을 교회에 부어주셨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제1조 “한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었다. 제2조 “한 주 예 수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을 믿었다. 제3조 선지자들을 통하여 구원을 예언한 “성령”을 믿었다 .
“신적 위격들의 복수성”에 대해서 니카야 공회의 (concilium nicaenum, 325) 이전에 “신적 위격들의 복수성”을 교회가 강하게 인식했다. 사도 시대의 교회의 신앙의 주제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 메시아 예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성령의 활동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니카야 공회의까지 성령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이 신앙과 이해가 2세기 중엽에 사도신경(symbolum apostolicum)과 신앙의 규범(regula fidei)으로 공식화되어 후기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 공식화의 기본과 시작점이 되었다.
2세기의 변증가들은 유일신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하나님 내의 구분을 시도한 사람들이다: 유스티노즈, 유스티노스, 타치아노스, 떼오필로스, 아떼나고라스, 교회의 최초의 신학자인 에레나이오스 등이 당시 변증가들이다.  

4.2. 사도적 교부들

4.2.1. 로마의 클레멘트 (clement of rome, 30-100)
클레멘트는 이방인으로서 바울의 동역자였다(빌 4:3). 그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아서 그리스도인이 된 후 바울을 도와 빌립보 교회를 목회하였고 복음을 바울에게서 배웠기 때문에 그의 편지에(97ad) 복음의 정신이 강하게 표현되어 있다.
클레멘트는 “하나님 창조주”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나란히 반복한다(epistula clementis ad corinthios Ⅰ, 1 14 19 20 21 42 5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엄위의 홀이시다(ep. Ⅰ, 16).
그는 죽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부활시키셨다고 한다(ep. Ⅰ, 24).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다(ep. Ⅰ, 36). 창조주 하나님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자비와 선을 베푸신다고 강조한다(ep. Ⅰ, 2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확증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세워지고 성령의 확신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다(ep. Ⅰ, 42).
클레멘트에게 있어서 “주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클레멘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을찌어다 라고 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암시하고 있다.

4.2.2. 제2클레멘트 (2 clement)
제2클레멘트는 로마의 주교인 클레멘트가 쓴 편지가 아니라 무명의 인사가 쓴 설교라고 본다. 이 글에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주제가 담겨 있다. 제2 클레멘트는 독자들을 권고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산자와 죽은자의 심판 주로 생각하라고 하였다(2 qement 1:1).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고 그를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를 알았다. 클레멘트는 그리스도를 영으로 보는 견해를 반복하여 영이 그리스도라고 한다. 클레멘트에게서 영 기독론이 나오게 된다.

4.2.3. 바나바스(bananbas, 100ad): 바나바스 서신의 저자
바나바스 서신의 저자는 트라얀과 하드리안 황제 통치시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으로서 평신도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인 바나바스의 저작으로 여기지만 클레멘트 때까지 고대교회에서 아무도 바울의 동역자에게 저작권을 부여 하지 않았다.
바나바스는 그의 서신에서 주 예수의 구속에 주의를 집중한다. 구약을 거의 그리스도의 구속의 예표로 취급한다. 이삭의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의 예표로, 구약의 제물로 쓰인 염소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예표라고 제시한다. 그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냥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육체로 와서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바나바스는 영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영을 삼위의 한 위격으로 보고 있다. 영과 그리스도를 분명히 구분하고 혼동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부르러 오신 이를 하나님이라고 하므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일치시킨다. 바나바스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을 구분해서 말하므로 하나님 내의 삼중 구분을 알고 제시하고 있었다.

4.2.4. 이그나치오스 (ignatios, 30-107 ad)
사도 요한의 제자인 이그나치오스는 주님이 사도들 가운데 세우고 축복해주신 그 어린아이로 알려져 있다. 사도 요한의 사상을 따라 그의 사상 중심은 “그리스도”이며, 최초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교부이다.
이그나치오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육체 안에 오신 하나님”으로 보고, 하나님과 일치시킨다. 주 예수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에 넘겨졌음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고스 하나님”이시며 교회의 설립자가 되신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 안에 살았다는 것을 믿지 않고 그의 고난과 피 흘림을 고백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그나치오스는 하나님의 삼중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 그의 아들, 성령 곧 보혜사를 한 문장에 자주 넣는다. 그는 위격적 구분을 분명히 하여 어떤 사람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동일한 인격이라고 말한 것을 강력하게 반박한다. 그는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지만 각각 다른 위격을 갖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비출생과 출생과 보혜사로서의 직분을 말하므로 후기 삼위 일체 교리 공식화의 기초가 놓이게 되었다.
이그나치오스는 하나님의 성육신을 말할 때에 “성령에 의해서”라고 말하고 “보혜사의 인도 아래서”라고 말한다. 이는 그가 성령을 하나님의 성육신의 원리로 삼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2.5. 헤르마스 (hermas, 160 ad)
<헤르마스의 목자>는 편지가 아니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에레나이오스, 알랙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영감된 책으로 보았다. 반면 텔툴리아누스는 이 작품을 위경으로 배척하였다. <헤르마스의 목자>는 환상과 계명들과 유비들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른 사도적 교부들의 글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헤르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성령을 하나님의 아들 로 말한다. 헤르마스는 한 창조주 하나님만을 강조한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완성하시며 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신 한 하나님이 계신다. 그는 교회가 가장 먼저 창조되었다고 제시한다.
헤르마스는 포도원의 주인과 그의 아들과 종의 예를 들어 삼위 관계를 전개한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아들은 성령이고 종은 예수로 지목한다. 종이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었다. 여기 밭의 주인은 만물을 창조하고 완전하게 한 분이고 성령은 아들이다. 이처럼 헤르마스는 셋으로 구분된 위격들을 보았다. “아버지 하나님”, 그의 “사랑하는 아들 성령”, “그의 종 신자 예수 그리스도이다. 헤르마스의 신학은 2위 일체론과 양자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4.3. 변증가들

변증가들은 희랍철학으로 기독교의 합리성을 변증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하나님 내의 구분을 인식하고 “로고스”(logos)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하나님 내의 구분을 확실하게 해서 다음 세대의 삼위일체 교리의 확정의 길을 열었다. 이러한 인식은 에레나이오스에게 전승되어 발전되어 교회는 삼위일체의 이해를 바로 하는 길을 얻었다. 변증가들은 “하나님의 유일성” 곧 “유일신 교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 내의 구분을 지성으로 설명했다.
변증가들은 “유일신론자들”로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선재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사상이나 마음이라고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와 구속에서 나타났고 하나님의 사상을 표현한 존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신적 로고스 (logos) 또는 말씀이란 상(imagery)을 사용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 있는 말씀은 “내재 말씀”으로, 나타난 말씀은 “현현 말씀”으로 구분하기 위해 스토익(stoic)의 구분을 사용했다. 그들은 사도 요한의 “로고스 개념”을 따르지 못했다.

4.3.1. 유스티노스 (ioutinoj, ioustinos, justinus, justine, 110-165)
유스티노스는 이방인으로 희랍철학에 깊이 심취하므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철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희랍철학으로 기독교를 변증하는 최초의 변증가가 되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통치 기간에 순교자까지 되었다. 유스티노스는 “변증서”들과 “트리포와의 대화”를 저술하여 희랍철학에 대하여 기독교를 변호하고 유대교가 기독교에 대하여 갖는 그릇된 견해들을 교정하여 그리스도가 구약의 메시아임을 해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희랍철학과 기독교의 근본 차이와 대립을 알지 못하고 희랍철학과 기독교를 같은 선상에 놓았다.
유스티노스는 유일하신 만물의 창조주를 모든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는 플라톤의 사상을 따라 비형성된 물질에서 만물을 창조하였다고 제시한다. 이 하나님은 우주의 아버지요 주님이시다. 이 하나님이 그의 로고스(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유스티노스는 창조의 목적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을 창조하셔서 하나님 본받도록 하셨고 하나님을 따르도록 재능을 부여하셨다. 이 목적에 맞지 않으면 재앙을 받게 된다.
이 로고스를 통해서 하나님이 만물을 통치하시기 때문에 로고스는 “그리스도”로 불린다. 유스티노스의 신학 핵심은 “로고스”로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다. 그는 이성 자체 혹은 말씀인 로고스가 형체를 취하여 사람이 되셨고 예수 그리스도로 불리웠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로고스의 출생은 “지성으로서 방출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성으로 살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의 구원과 가르침을 이성적인 산물로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그리스도는 전체 이성, 로고스이기 때문에 희랍철학과 기독교와 차이가 없고 지식이 바로 구원이 되게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유스티노스는 로고스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시고 몸과 영혼을 가져 우리의 고난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확신했고 순교에 이를 수 있었다.

4.3.2. 타치아노스 (tatianos, tatian, 110-172)
타치아노스는 앗시리아 지역에서 출생하여 철학을 공부하고 많은 여행을 한 후에 로마에 와서 유스티노스의 제자가 되었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희랍인들에게 말함”과 “디아텟사론”(diatessaron)을 작성했다.
타치아노스도 유스티노스와 마찬가지로 로고스에 의해 신학을 한다. 타치아노스는 하나님이 아무 사물도 없었을 때 태초에 계셨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태초는 로고스의 힘이라고 특이한 표현을 한다. 로고스는 하나님 안에 있었는데 주님의 단순한 의지에 의해서 로고스가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로고스는 자기를 낳은 아버지를 모방하여 로고스 능력으로부터 한 로고스가 나왔다고 본다. 타치아노스는 사람의 창조도 로고스의 일로 본다. 자기를 낳은 아버지를 본받아 로고스가 사람을 만들되 불사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타치아노스는 사람과 천사들을 창조하되 자유의지를 갖게 창조하므로 그 자유선택에 의해서 사람은 완전에 이르도록 하셨다고 진술한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그러므로 성령과 연합해야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에 성령으로 거주하신다고 제시한다. 그는 “성령과의 연합”을 강조했다.

4.3.3. 안디옥의 떼오필로스 (theophios of antioch, 115-181/186)
떼오필로스는 유프라테스 지역에서 출생한 이방인으로 성경을 연구하다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안디옥의 4대 감독 이그나치오스에 이어 6대 감독이 되었다. 그는 희랍철학으로 기독교를 변증했다.
떼오필로스는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요구에 대하여 영혼의 눈들이 열려진 자들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응답한다. 이 하나님은 영광에 있어서 파악이 불가하고 그 위대함을 측량할 수 없다고 본다. 하나님은 시작이 없다고 비출생자라고 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속성을 “편재”라고 강조한다. “천지 창조”는 하나님이 그 자신의 말씀과 지혜로 만드신 것으로 본다.
떼오필로스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삼위일체”를 말한다. “하나님”, “그의 말씀”, “그의 지혜”라는 표현으로 삼위일체를 말한다. 로고스가 하나님 자신의 지성이고 사상이다. 떼오필로스는 성령을 분명히 언급한다. 성령의 사역에 있어서는 로고스의 사역과 중복시킨다.

4.3.4. 아떼나고라스 (athenagoras, fluorit 177-180)
아떼나고라스는 아데네 출신으로 철학자였는데 그리스도인이 되어 2세기 가장 탁월한 변증가가 되었다. 그는 177-180경에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와 아우렐리우스 꼬모두스(aurelius commodus)에게 편지를 보내어 기독교를 변증하였다. 그는 신존재 증명에서 “삼위일체와 기독론”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기독교의 도덕적인 탁월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은 합리적이시기 때문에 처음부터 “영원한 지성”인 로고스를 자신 안에 두었다고 말한다. 로고스가 하나님에게서 나오시지만 그에게서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고 둘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성령은 하나님의 유출로서 하나님에게서 흘러 나와서 태양의 빛처럼 다시 되돌아간다고 단언하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들”, “성령”을 말한다. 이 셋은 권능이 하나이고 순서에 있어서 구분된다고 주장하여 삼위일체 개념을 갖고 있었다.

4.4. 에레나이오스 (이레네이우스, eirenaios, irenaeus of jyons, 120-202)

에레나이오스는 소아시아 서머나 출생으로 폴리카르포스의 제자였다. 그는 폴리카르포스를 통하여 사도들의 전통과 사도 요한을 배웠다. 리용의 주교로서 그노시스주의에 대항하여 “이단들에 대항하여”(adversus haereses)를 저술하여 바울 이후 기독교의 최초의 신학자가 되었다. 그는 정통 기독교를 주도한 신학자로 바른 삼위일체론의 교리를 제시하여 텔툴리아누스를 거쳐 정통 삼위일체의 교리가 확정되는 데 기초를 놓았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신학의 근거와 출발점 에레나이오스는 신학을 전개하고 이단을 논박함에 있어서 신앙의 규범을 출발점과 근본으로 삼고 이단들 특히 영지주의의 그릇된 견해를 논박한다. 그에 의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만물들을 만드셨다. 이 하나님 위에 플레로마가 있으면 그 신은 부족한 신이 되고 그런 플레로마는 무한히 계속될 것이어서 완전한 신이 있을 수 없다며 이단들을 논박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물질을 창조한 신이므로 최고신이 못된다는 그노시스주의에 대해 반박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면 곧 배교가 된다고 주장했다. 에레나이오스는 이단들이 플라톤의 가르침인 데미우르고스가 기존의 물질을 가지고 현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을 논박한다.
“독생자”: 그는 사도 요한의 진술을 따라 로고스가 생명이요 빛이며 구주이시며, 이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것을 주장했다. 로고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인자가 되셨다. 에레나이오스는 하나님의 로고스를 그의 계시자로 제시한다. 왜냐하면 로고스가 하나님의 지성이며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의 현시가 바로 아버지의 지식이며, 아들로 현시된 하나님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신지식의 원리” 곧 “유한은 무한을 파악할 수 없다”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확립하였다.
“하나님의 지혜이신 성령”: 에레나이오스는 로고스만큼 성령을 언급하지 않지만 로고스와 함께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아버지의 손들로 말한다. 성령은 아버지의 손들의 하나로서 세계를 장식하는 일을 하였다고 본다. 성령의 사역은 주로 신자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하나님과 함께 항상 말씀과 지혜 곧 아들과 영이 있었고 하나님이 만물을 만들고 정비하였다고 하여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사역의 방식은 삼위일체임을 분명히 제시한다.
“삼위일체의 관계”: “한 하나님 아버지”, “한 아들 로고스”, “하나님의 지혜 성령”을 거의 함께 말하기 때문에 그는 삼위일체를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하나님의 지성으로서 아버지와 영원부터 함께 있었고 옛날부터 함께 계셨다고 말하므로 섭리적 삼위일체론이 아니라 “존재론적 삼위일체”임을 분명히 한다. 아들 로고스는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조성자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라고 하므로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성과 동일성을 밝혔다.

5. 제3세기 삼위일체론 논의

2세기의 교부들과 변증가들은 유일신 신앙을 지키면서 하나님 내의 구분을 말했다. 그러나 3세기에 와서는 삼위일체가 본래적이고 영원한 것임을 밝히게 되었다. 분리불가한 한 신격 내에 있는 삼중의 개념으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섭리적 삼위일체론의 논의를 펴 하나님의 하나 되심에 강조를 두어 유일신 사상을 흔들지 않았다. 동방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복수성의 개념을 발전시켜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내에 있는 구분들을 그들의 “존재방식”(subsistentia) 혹은 “위격”(persona)으로 표시하였다 이 새로운 접근 방식에 의해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이 기독교의 기본 신앙이 되었다

5.2. 텔툴리아누스 (tertullianus, 145-220)

라틴 기독교를 세우는 데 크게 기여한 텔툴리아누스는 “삼위일체”(trinitas)란 용어를 처음으로 썼을 뿐 아니라 “실체”(substentia)와 “인격 혹은 위격”(substantia)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삼위일체”
텔툴리아누스는 당시 로마교회에 성했던 “전제군주론”(monarcia)에 대항하여 교회의 전통 신앙인 유일신 교리를 삼위일체로 확정하였다. “전제군주론”은 유일한 창조주만을 믿는다. 하나님 아버지가 동정녀에게로 들어가시고 그녀에게서 출생하시고 수난받으셨는데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us)가 된다. 이런 이단을 프락세아스가 아시아에서 로부 로마로 유입했다. 이 대해서 텔툴리아누스는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 내에 둘째, 셋째의 자리를 갖는다고 군주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확립된다고 주장하였다. 삼위일체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삼위일체가 오히려 군주제를 확립한다고 보았다.
텔툴리아누스는 에레나이오스로부터 섭리를 받아들여, 섭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방식으로 즉 하나 안에 셋으로 이해하고 사용했다. “오이코노미아”는 한 하나님이 아들 혹은 그의 말씀을 출생시킨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받고 죽고 장사되었다가 성경대로 아버지에 의해 다시 살림을 받고 하늘로 올리우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가 하늘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성령 곧 보혜사를 보내셨다. 이것이 신앙의 규범이고 정통 신앙이라고 텔툴리아누스는 확인하면서 한 하나님이 삼위일체 되심을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복수” 개념에 대해서 인격으로 복수이지 “실체”가 복수라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텔툴리아누스는 “세 인격”이 “한 하나님”이 되는 것을 “한 본질”에 “세 위격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연결되고 아들은 보혜사 안에 연결되므로 세 응집된 위격들을 이룬다. 이 세 위격들은 한 본질이고 한 위격이 아니다.

“로고스”
텔툴리아누스는 말씀과 지혜를 일치시키고 말씀이 지성 안에 있고 지성으로 생각하고 고 안한 것을 발설할 때 말씀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나왔으므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deus ex deo)이시다. 그가 하나님인 한에서는 하나님과 동일실체에 속한다. 텔툴리아누스는 세 독립적인 위격들을 나누므로 삼위일체 중에서 성육신하신 이가 말씀인 것을 분명히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는데 육으로 변환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육신으로 옷 입음으로 성육신하셨다. 하나님은 불변하고 형태가 될 수 없으며 영원하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시므로 그는 두 실체를 각각의 특성에 따라 가지셨다. 한 인격 예수 안에 하나님과 사람이 결합하였다. 한 인격 안에 하나님과 사람이 공재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것을 설명하여 성육신 교리의 기초를 놓았다. “칼케돈 공회의”에서 두 본성이 변화없이/ 혼합없이 라고 정한 것이 처음으로 텔툴리아누스에게 나타났다. 그리스도안에 두 실체인 신성과 인성이 존재하는데 신성은 불멸이고 육신은 가사적이다. 그리스도는 인성을 따라서 죽으셨고 육신을 따라 기름부음 받았으므로 신성으로는 수난받을 수 없었다.

“성령”
텔툴리아누스는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해서로” 확정하여 동방교회 의 기본 신학이 되게 하였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오되 아들을 통해서 나와서 아들 다음으로 세 번째를 이룬다. 그는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해서 나오는 것을 확정하였다.

“텔툴리아누스의 삼위일체론의 진보”
텔툴리아누스는 하나님을 실체라고 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실체이고 그 실체는 분할 불가하므로 한 하나님이라고 제시하였다. 에레나이오스에게서 “섭리” 개념을 받아서 하나님 내의 존재방식에 활용하였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전 실재요 전 우주였는데 그가 신성의 원천이시고 신성의 원리이시다. 이 위격들은 서로 분리불가하고 상호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수적으로 구분된다고 하여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하는 기초를 완벽하게 놓았다. 세 위격은 실체의 동일성 때문에 분할불가하고 위격은 상호 결합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 하나님이 삼위로 계심이 기독교의 바른 신앙이 되었다.

5.3. 힙폴리토스 (hippolytos of rome, 170-236 ad)

합폴리토스는 텔툴리아누스만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으나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복수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텔툴리아누스처럼 군주론에 대항하여 신학을 전개하였다. 특히 노에토스 등 군주론을 주장하는 로마교회의 신학에 대항하여 그의 신학을 전개하였다. 군주론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시므로 아버지이시다. 아버지가 출생하고 수난받고 죽으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므로 아버지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수난받으셨다. 이는 “성부수난설”이 되기 때문에 이런 노에토스의 주장에 대항하여 협폴리토스도 아버지는 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홀로 계시지만 복수로 존재하셨다고 주장한다. 그의 능력에 관하여 그는 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섭리에 있어서 삼중 현시가 있다고 제시한다.
그는 로고스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성육신하셨음을 강조한다. 로고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오사 동정녀 마리아에게로 들어가셨다. 그녀에게서 육신을 취하시고 한 인간 을 주 합리적인 영혼을 취하사 사람이 되셨다. 그가 세상에 와서 “몸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으나 완전한 사람으로 나타나셨다.

5.4. 양자론 (養子論, adoptionism, 동력적 군주론 dynamic monarchianism)

2세기말부터서 교회에 유일신 교리를 지키기 위해 신앙의 규범과는 다른 이론을 제시하였다. 삼위일체 교리로 교회가 가고 있을 때 전통적인 유일신 교리를 지키기 위해 예수를 한낱 사람으로 보는 견해와 세 위격 대신 한 위격이신 아버지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그 존재 양식을 변화하여 나타나셨다는 양태론이 나타났다. 양태론은 교회에 추종자가 많았다. 그러나 예수를 한낱 사람으로 보는 양자론은 이단으로 즉각적인 정죄를 가져왔지만 그 이단은 계속되었다. 떼오도토스 때에서 시작하여 사모사타의 파울로스에게까지 오랜 논란이 계속되었다.

5.4.1. 떼오도토스 (theodotos of byzantium)
힙폴리토스에 의하면 떼오도토스는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였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과 케린토스와 에비온파로부터 그리스도에 관한 자기의 견해들을 충용하여 예수는 그냥 사람이었는데 아버지의 경륜에 따라 동정녀에게서 낳았다고 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과 섞여 살았고 종교적으로 탁월했는데 후에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에 그는 그리스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성령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수세 시에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입장이다.

5.4.2. 사모사타의 파울로스 (paulos of samosata)
사모사타의 파울로스는 떼오도토스가 시작한 이단 프실안드로피즘(psilanthropism)의 가장 큰 대변자이었다. 파울로스는 그리스도는 사람에서 하나님으로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니카야의 교부들은 사모사타파의 계획을 깨기 위해 “아들은 만물 전에 있었고 사람에서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데 종의 형상을 입었고 말씀 (verbum)이 육신이 되셨다”고 확정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실체” (omoousioj, coessentialis)를 바른 교리로 확정했다.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실체가 아니고 자기의 존재방식 곧 위격이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는 한낱 사람인데 부활 후에 하나님으로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양자론”이 된다.

5.5. 양태론

삼위일체론이 전개되자 전통적인 유일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양태론이 나타났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을 가졌으므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는 주장이 바로 양태론이다. 양태론 대로 한다면, 그리스도가 수난받을 때 실제로 수난받으신 이는 아버지가 되어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이 된다. 그가 또 자신을 성령으로 교회에 부어지셨다고 주장하므로 한 위격이 세 양태로 나타나셨다고 하는 주장인데 이로써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하게 되었다. 이 주장은 노에토스(noetos)와 프락세아스(praxeas)와 사벨리오스(sabellios)가 주장했다. 사벨리오스가 체계화했기 때문에 “사벨리오스주의”로 불리우기도 하였었다

5.5.1. 노에토스 (noetos of smyrna)
노에토스파는 출애굽기 3:6, 20:3에 나오는 “나는 네 조상들의 하나님이니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지니라”와 이사야 44:6 “나는 처음이고 나중이니 나 외 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 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면 또 그가 참으로 하나님이시면 그는 아버지 자신이 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 자신이시므로 그 귀결로 아버지가 수난받으셨다. 왜냐하면 그가 아버지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자신이 그리스도이고 그 자신이 아들이면 그 자신이 출생하고 그 자신이 수난받고 자신이 자신을 부활시켰다.”

5.5.1. 프락세아스 (praxeas)
프락세아스는 노에토스처럼 한 창조주 하나님만 계심을 인정했다. 프락세아스는 아버지 자신이 동정녀에게로 들어가시고 그 자신이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그 자신이 수난받으셨다고 주장했다.
이 대해서 텔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반박한다: “한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그러나 섭리를 인정해야 한다. 섭리에 의하면 이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들을 곧 그의 말씀(verbum)을 가지신다. 그는 하나님 자신에서 나오시고(procedit) 그에 의해 만물들이 만들어졌다. 그가 아버지에 의해서 동정녀에게로 보내지시고 그녀에게서 나셔서 사람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이시며 사람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으로 불리워지셨다. 그가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다시 아버지에 의해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리우셨다.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산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약속을 따라 하늘로부터 성령을 보내셨다.”

5.5.3. 사벨리오스 (sabeiiios)
사벨리오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이고 “한 위격인데 세 이름으로 불리워진다”고 주장한다. 사벨리오스주의자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관계를 태양의 유비로 표현한다. 태양에는 한 실체가 있지만 삼중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사벨리오스도 한 하나님을 강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한낱 사람으로 만들어 양자론을 만들게 되었다.

5.6. 노바치안의 삼위일체론 (210-280)

“노바치안의 로고스론”: 노바치안의 삼위일체론은 섭리적 삼위일체론에 머물러 있고 성령에 대해서는 아직 위격적인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한 위격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두 위격으로 아버지 다음의 위격임을 증명하고 받아들여 로마교회가 양태론을 버리고 삼위일체론을 채택하도록 공헌했다.
“성령론”: 성경에 제시된 대로 성령을 파라클레토스 혹은 진리의 영으로 말하여도 성령의 위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5.7.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동방교회의 삼위일체 교리의 공식화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신학적 작업이 전개되었다. 이는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는 희랍철학을 대거 교회로 유입하여 신학 작업을 하므로 문제점들을 많이 일으켰다. 그 결과로 후에 오리게네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하나님의 위격적인 존재를 확립하는 일을 하여 정통교리를 확정하는 일에 기초를 놓았다

5.7.1. “클레멘트” (klement, clement of alexandria, 153-217/220)
클레멘트는 동방교회에서 처음으로 희랍철학 특히 플라톤주의로 삼위일체론을 사고하여 한 하나님의 세 위격을 확정하였다. 오리게네스가 이 사상을 더 발전시켰다. 클레벤트는 하나님의 존재를 정의하여 파괴불가능하고 비출생이다 라고 한다. 클레멘트는 희랍철학의 일자와 단자 개념을 기독교의 하나님에게 적용한다. 클레멘트는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여 아버지의 형상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동등함을 제시한다. 그러나 성령의 나오심과는 어떻게 다른지는 전혀 말하지 못하였다.
“성령관”: 클레멘트는 아들 로고스를 하나님으로 강조하고 아버지와 동등으로 말하여도 성령은 하나님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신약이 말하고 있는 진술들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삼위일체”: 클레멘트는 로마교회에 성한 양태론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나 양해 없이 세 위격을 말한다. 보편적인 아버지가 하나이고 한 보편적인 말씀과 성령이 모든 곳에서 하나이고 동일하다고 제시한다. 클레멘트의 신학 작업으로, 이후에는 양태론적인 시비없이 세 위격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어 오리레네스 이후 삼위일체가 기독교의 기본 교리가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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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

6.1.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
오리게네스는 철학을 열심히 공부하여 플라톤 철학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많이 설명하였다. 하나님은 처음부터서 아들을 가지신다는 것이 오리게네스의 반복된 주장이다. 그러나 유일한 하나님이 왜 아들을 필요로 했는지를 오리게네스는 피조물들과 하나님간의 중보자를 필요로 한 것으로 설명한다.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완전한 본질이라고 정의한다. 로고스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으면 아버지의 모든 뜻을 순종한다. 그러나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로고스는 선 자체는 아니다. “선의 형상”이다. 영광 자체가 아니라 영광의 광채가 된다. 그는 선에 동참을 게을리하면 타락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성령에 대해서, 오리게네스는 성령에 관해서는 적은 양을 언급한다. 성령은 출생되었는지 내재인지가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하여 성령의 삼위일체내의 위치와 위격에 관하여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
오리게네스의 삼위일체론은 분할불가한 한 실체에 세 위격을 뜻하지 않는다. 삼위 한 하나님이 아니라 완전히 등급 지워진 세 존재가 삼위일체이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첫 형상이므로 로고스 앞에 정관사를 붙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은 신의 영광의 광채이고 그의 인격의 형상이므로 아버지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한다.

6.2. 오리게네스의 영향

오리게네스는 과도한 종속주의를 도입하여, 아레오스가 오리게네스의 입장을 따르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의 신학적 작업에 의해서 삼위일체에서 종속주의를 제거하였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종속주의가 떠나지 않게 되었다. 이 종속주의가 근세에 이르러 삼위일체를 부인하게 되어 유대교적인 유일신 곧 한 인격적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서 기독교를 자연주의화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드로스와 니카야 공회의를 주도하여 정통 기독교를 창출한 아다나시오스는 성경적인 이해를 하였기 때문에 오리게네스의 종속주의에도 불구하고 정통 기독교를 이룰 수 있었다. 한편, 호모우시온(omoousion)을 취하여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실체임을 주장하는 정통주의가 오리게네스에게서 비롯되었다.

6.3. 메또디오스의 삼위 일체론

메또디오스는 오리게네스의 대적자로 그의 신령 화 주의를 반대하여 육적 부활을 성경대로 믿고 주장하였다. 또 삼위일체론에 있어서는 정통 신앙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실체뿐 아니라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실체임도 잘 알고 주창하였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의 정절한 삶에 더 집중하였다. 메또디오스는 성육신하신 이는 삼 위격 중 아들 로고스, 독생하신 하나님이심을 성경의 가르침 대로 알고 있었다. 메또디오스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사 사람이 되심은 죄와 멸망의 장본인인 사탄 곧 유혹 자를 멸하여 사람으로 본래 불멸에로 돌이키시기 위함이었음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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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레오스 논쟁과 니카야 공회의
concilium (oecum Ⅰ) nicaenum Ⅰ 325

초대교회부터 3세기에 걸쳐서 삼위일체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러한 논의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교리를 결정할 수 있는 신학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히 에레나이오스와 텔툴리아누스와 그 후계자들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의 신비에 대해 여러 주장을 하여 “삼위일체의 기독교”가 되게 하는 기틀을 놓았다.

7.1. 아레오스(areios, arius)의 과격한 종속주의
아레오스는 오리게네스의 종속주의를 과격화한 형태로 배웠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 모든 존재는 창조로만 존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만일 아들이 아버지의 실체에서 출생하였으면 아버지의 동일실체의 일부이거나 아버지에게서 발출이어서 결국 아버지는 복합되었고 분열가능하고 변이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아레오스는 아들이 아버지의 실체에서 출생하였다는 주장을 결코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아레오스는 아들의 피조됨을 출생으로 표현한다. 하나님이 영원 시간 전에 한 독생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들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인가? 은혜에 동참으로 된 것이어서 이름으로만 아들이고 참 하나님이 아니다고 본다. 삼중이 있지만 셋은 전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세 존재들의 집합으로 말할 뿐이다.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과 창조된 아들과 성령 이 세 실체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광에 있어서 동등하지 않다.
비판: 아들이 무에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창조되어 존재하기 시작한 때가 있으면 아들은 영원한 아들이 아니고 참 하나님도 아니고 피조물일 뿐이다. 그리스도 아들이 이룩한 구원은 어떤 피조물이 이룬 것이므로 구원은 하늘에서 오는 게 아니게 된다.

7.2. 가이사랴의 유세비오스
      (eusebios of kaiareia, eusebius of caesareia, 265-340)
유세비오스는 오리게네스의 제자로서 그의 종속주의를 그대로 대변하였다. 아레오스의 과격한 종속주의,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보는 견해를 표현하였다. 유세비오스가 니카야 신경에 서명을 했지만 아레안파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아들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 유세비오스는 오리게네스의 방식으로 설명한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니카야 공회의 때에 니카야 신경에 서명하였다가 후에는 다시 아레안파로 돌아선다.

7.3.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드로스 (alexandros, alexander of alexandria)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드로스는 아레오스 신학이 퍼지기 시작하자 주교로 ad 320경에 알렉산드리아에 공회의를 소집하여 아레오스의 신학이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고 정죄하고 그를 추방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교회의 정치가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오리게네스의 종속주의적 경향을 완전히 벗지는 못하였지만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영원한 존재이고  동일실체를 가졌음을 확실하게 제시하였다. 이렇게 하여 알렉산드로스는 니카야 정통주의가 결정되도록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고 아다나시오스와 함께 니카야 정통 교리를 확정할 수 있었다.

7.4. 아다나시오스 (athanasions, athanasius, 296/298-373)

아다나시오스의 확고한 신앙과 바른 신학은 니카야 공회의가 정통 교리를 결정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아다나시오스는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이 하나의 유일한 참 하나님이라고 제시하고 이 하나님이 창조의 주님이고 모든 존재의 조물주인데 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제시한다.
아들에 대해서, 그는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으며 만물을 소생케 하였다고 한다. 즉 예수는 조물주로서 우주와 모든 만 물을 다스리고 옴에 있으므로 제약받음 없이 하나님으로서 자기의 우주 통치를 계속하였다고 주장한다.

7.5. 니카야 공회의의 소집

7.5.1.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화해 노력”
콘스탄티누스는 313년에 막센치우스를 이기고 기독교를 공인했다. 그런데 알렉산드 리아에서 일어난 아레오스 논쟁이 애굽과 리비아 유역으로 퍼져나가 교회가 평화롭지 못하고 제국이 어렵게 되자 중재에 나섰다. 자신의 교회 담당 조언자 코르도바(cordova)의 주교인 “호시우스”를 알렉산드리아에 보내 화해를 추구했다. 콘스탄티누스는 사소한 문제니까 해결이 잘 될 줄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기독교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였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에큐메닉 공회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하였고, 318명의 주교들이 참석했다.
아다나이수우스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통해서 일하시고, 이 말씀 역시참 신이며 아버지와 동일 실체라고 확정했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실체”(omoousion)로 출생하였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정통 신앙이 승리하게 되었다. 황제는 “호모우시온”(omoousion)을 넣도록 권고하여 호모우시온이 니카야 신경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니카야 공회의는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에큐메닉 공회의로 소집되었고, “정통 기독교를 확립”하였다.

7.5.2. “니카야 신경” (symbolum nicaenum)
우리는 한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는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조 물주를 믿는다.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데 그는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신 독생자이다. 이는 아버지의 실체에서 나셨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시다. 빛에서 나온 빛이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시다. 그는 출생하셨고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동일실체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만들어졌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내려 오셨고 육신이 되사 사람이 되셨다. 고난받으시고 제 삼일에 살아나시고 하늘들에 오르셨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그가 오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그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고 말하고 그가 나시기 전에는 있지 않았다거나 존재하지 않은 것에서 만들어졌다거나 혹은 다른 실체나 다른 본질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가변적이거나 변이될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카돌릭 교회는 정죄한다.

7.6. 삼위일체 교리의 확정과 니카야 신경의 의의

7.6.1. “삼위 일체 교리의 확정”
기독교 최초의 에큐메닉 공회의인 니카야 공회의는 기독교를 “삼위일체의 종교”로 규정했다. 유일신을 강조한 기독교가 삼위일체 가 바른 하나님의 존재 방식임을 확정하였다. 삼위일체론의 논쟁은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성육신 하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은 아닌데 성육신 하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중요했다. 니카야 정통파와 아다나시오스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동일신성, 동일실체”라고 하므로 하나님이 하나임을 확정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신성, 동일실체이므로, 다시 말해 신격은 본래 분할불가하므로 둘 간에 아무런 분열이나 분할이 있을 수 없다고 확정하였다. 이로써 오리게네스에게서 완전히 정착된 종속주의를 배격하였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이심이 확립되었다. 이후로는 기독교는 삼위일체 교리로만 기독교요 구원종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7.6.2. 니카야 신경의 의의
니카야 공회의 이후 기독교 신앙은 삼위일체 신앙으로만 성립하게 되었다. 공회의 이후 이 정통신앙을 번복하기 위해 수세기간의 투쟁이 진행되었지만 결국 니카야 신경이 정통주의로 승리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를 인정하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단으로 정죄하는 기준이 바로 “니카야 신경”이 되었다. 이 신경에 맞으면 기독교요 그렇지 않으면 이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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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다나시오스의 신학
(aqanasioj, athanasios, athanasius, 296/98-373)

아다나시오스는 “니카야 신경”을 세우는 데 최대 대변자요 변호자였다.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결정한 제2조의 내용과 제3조 성령조도 그의 신학에 의해 확정되었다. 아레안파는 “아들과 성령이 모두 피조물이다”라고 주장했으니, 아다나시우스는 “성령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동일실체다”라고 선언했다.
그의 신학의 핵심은 구원에 있었다. 그리스도론이 그의 신학의 핵심인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그의 하나님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은 다 그리스도의 사역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철학적 사변을 다 제거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랐다. 아들이 동일실체이므로 그가 만군의 여호와이고 전능하고 참된 하나님이시라고 보았다.

“로고스 하나님: 창조주, 로고서의 성육신”
아다나시오스는 창조주인 로고스가 섭리주라고 제시한다. 그는 만물을 조성했기 때문에 세상을 통치한다. 아다나시오스의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이 이룩한 구원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야 확실한 구원이 되어 실제로 인류가 구원된다. 그러므로 구원자는 피조물일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이어야 한다. 인간이 신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로고스가 성육신해야 한다. 처음에 창조를 만드신 이는 로고스이므로 그가 성육신하여 다시 창조를 회복하고 갱신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창조주이고 만물의 조성자이신 로고스 하나님이 성육신 하신 것이다. 아다나시오스는 로고스 하나님이 마리아에게서 한 몸을 취하여 그것을 자기의 성전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신격이 육체로 변화된 것이 결코 아니어서 성육신했지만 하나님이고 주님으로 계심을 강조하여 인격의 동일성을 주장하였다.

“성령과 삼위일체”
아다나시오스의 모든 신학은 하나님의 아들 로고스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로고스와 성령을 함께 결합하여 성령이 한 신성이고 삼위일체임을 증명하였다. 아다나시오스의 신학의 특징은 아들과 성령을 함께 결합하는 점이다. 아버지와 아들을 함께 결합하여 한 신성이고 동일실체임을 밝혔다. 로고스와 성령을 함께 결합하여 성령이 한 신성이고 삼위일체임을 증명하였다. 아다나시오스는 삼위일체는 분할불가할 뿐만 아니라 한 신성이므로 위격 간에 등급이 없음을 강조하였다. 거룩송을 세 번 부른 것도 세 위격들이 완전함을 증명해주는 것이며 삼위는 한 신성으로 항상 완전하므로 추가나 감소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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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호모우시온의 확립을 위한 투쟁

9.1. 아레안파의 반격과 호모우시온 제거를 위한 시도들

“아다나시오스 제거 음모들”
니카야 공회의가 아들은 아버지의 실체에서 나오셨고 아버지와 “동일실체(omoousion)라는 ”신앙 공식“(fidei regula)을 작성하여 만장일치로 채택하였을 때 다섯 명의 주교들이 이에 반대했다: 니코메디아의 주교 유세비오스, 니카야의 떼오그니스, 칼케돈의 마리스, 마르마리케의 떼오나스, 프톨레마이스의 세문도스였다. 유세비오스 와 떼오그니스는 유배지에서 회개의 고백문을 주요 주교들에 보내어 자기의 신앙고백을 취소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거짓말을 해서, 황제의 칙령으로 유배지에서 소환되어 자기들의 교회에 회복되었다. 이 호의를 이용하여 유세비오스는 아레오스를 데려오기로 계획하고 음모를 진행하였다. 니카야 공회의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얼마 되지 않아서 죽고 아다나시오스가 326년에 알렉산드레아의 주교로 선출되어 알렉산드레아와 애굽의 교회들을 지도했다. 유세비오스는 황제의 호의를 이용하여 아다나시오스를 제거하여 니카야 신경을 완전히 무효화하려고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황제를 설득하여 아레오스와 그의 일파들을 교회에로 다시 받도록 요구하였다. 아레오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단을 다시 퍼뜨리고 소요를 일으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아레오스와 그의 일파를 교회에 받도록 부탁하였으나 아다나시오스는 반대했다. 유세비오스는 여러번 아다나시오스를 음해하는 시도를 했다.
유세비오스파들은 니카야 신경에 반대하는 새로운 신앙공식을 작성하였다. 그들은 “동일실체”를 공식에서 의도적으로 삭제하였다. 포테노스는 실미온의 주교로서 그리스도는 한낱 사람으로서 “마리아에게서 출생할 때부터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모사타의 파울로스의 견해를 취하였다. 이 일로 소요가 심해지자 황제는 실미온에 공회의를 소집하여 포테노스를 퇴위시켰으나 이 회의에서도 실체를 삭제하여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실체 또는 유사실체라는 것을 넣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와 등치가 될 수 없다고 하여 아버지에게 종속시켰다.
이 해석에서 공회의 참석자들은 주장하기를 라틴어 실체 substantia와 희랍어 ousia는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일으켰고 정확하게는 “호모우시온”(omoousion)과 “호모이우시온”(omoiousion)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정하여 교회에서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아들은 만물을 그에게 종속하게 한 아버지에게 만물과 함께 종속한다고 확정하여 아들이 피조물임을 명시하였다.
이런 회의를 통해서 신앙의 수호자들이 다 제거되자, 아레안파들은 “실체”(ousia)와 “동일실체”(omoousion)를 신경에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 동서방 주교들로 아리미눔에 모이도록 황제 콘스탄치우스를 설득하였다. 그러나 서방 주교들은 처음부터 받은 것은 불가침으로 지켜야한다고 주장하여 이에 반대했다. 이들은 황제에게 펀지를 써서 “니카야 공회의”의 교부들의 아들들이므로 이미 확정된 것에서 더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고 천명하였다.
이렇게 아레안파들이 니카야 신경을 폐지하여 “호모우시온”을 없이하려고 여러 차례 공회의를 열어 신앙해설들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한번도 공회의의 전적인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콘스탄티누스가 죽자 아레안주의는 무너지게 되었다. 아레안파가 “호모우시온”의 제거를 위해 가한 박해, 퇴위, 유배 등은 무산되었다. 정통 진리를 지키기 위해 교회는 너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였던 것이다.

9.2. “호모우시온” 확립을 위한 조치들

안디옥 공회의(341)에서 “호모우시온”이 확립되었다. 이 공회의는 힐라리우스의 설명대로 동방의 어떤 주교들의 정통성이 의심되어 열린 공회의이다. “알렉산드리아 공회의”(362)는 “니카야 교리”를 확증하고 “동일실체”를 확인했다.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 공회의는 제2차 에큐메닉 공회으로서 주교들은 니카야 신경에 기초한 신앙만이 정통 기독교가 되게 했고, “호모우시온”을 확정하였다.

9.3. 마르켈로스 (markelloj, markellos, marcellus of ancyra)의 신학

마르켈로스는 니카야 공회의에서 아레안파들에 대항해서 싸워 그들을 논박하였다. 그는 “그의 나라는 끝이 없다”는 사상을 강조했다. 그는 로고스는 보편 왕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고, 만물을 창조하고 육을 입어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주라고 했다. 그는 로고스는 하나님이시고 분열이 없고 아버지 안에서 영광을 가지며, 삼위일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9.4. 예루살렘의 퀴릴로스 (kurilloj,kyrillos,cyril of jerusalem, 315-386)

예루살렘의 대주교인 퀴릴로스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아레안주의를 정죄할 때 동참하였다. 예루살렘의 주교로 일하는 동안 그는 아레안주의와 대항하여 강력하게 싸웠으나 다소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다시 주교 자리에 회복되어 그라치아누스 치세 기간 동방교회 전체가 아레안주의가 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구만이 정통 신앙에 남은 교회가 되었다. 퀴릴로스는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동일실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본질이 하나”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처음부터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 로서 참 하나님이시라고 강조했다.

9.5. 새 아레안파들

아스테리오스는 아레안파로서 “비유래자”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아버지만이 비유래자이고 아들은 유래자라고 하여 피조물에다 넣었다. 유래된 자는 무에서 만들어졌다고 하여 아들을 피 조물에 넣었다.
에치오스는 아들은 아버지와 같지 않다고 하였다. 에치오스는 호모우시온과 호모이우시온을 완전히 버리고 아노모이온을 주창하여 아노모이안파의 두목이 되었다.
유노미오스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피조된 것으로 주장하였다. 유노미오스는 에치오스를 선생으로 두었고 아들이 피조되었다는 아레안 이단을 그대로 수용했다.
유조이오스도 모든 면에서 아들은 아버지와 다르다고 주장하여 아노모이온 사상을 대변하였다.

9.6. 호모이우시온파의 호모우시온 접근

니카야 신경에서 “우시아”와 “호모우시온”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노모아온, 즉 아레안파의 입장이 승리할 것 같았다. 이때, “호모우시온”을 반대하지만 ① 그리스도를 피조물로 보는 것을 반대하고 ② 아버지와 유사하다고 주장한 호모이우시온파가 호모우시온파에 접근하게 되었다.
세미 아레안파는 358년 “앙퀴라 공회”의 후에 아레안파에서 분리하여 세미 아레안파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아레안파의 “아노모이온”을 버리고 아들은 “유사본질”(omoiousion)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세례 명령에 근거하여 아들은 아버지의 실체와 유사하여 아들은 아버지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아들이 아버지와 다르다고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여 정통적인 입장에 서게 되었다.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호모이우시온”이 세워지자 이 공식이 신앙의 통일을 이룰 좋은 수단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도 우리 구주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아버지와 “유사실체”라는 것을 고백하였다. 아레안파들은 호모우시온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고 아들은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유사하다고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주교들은 결코 니카야 신경에서 떠나지 않을 것임을 황제에게 명백하게 하였다. 이때 정통 교리에 반대한 주교들은 한 단어 실체 때문에 교회에 분열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고서 아들은 아버지와 유사하다는 말로 논쟁을 종식하기를 원하였다.
“호모이우시온파”는 아레안파와는 달리 아들이 로고스이지만 실체를 갖고, 아버지와 동일한 것이 아니지만 아버지에 유사하고, 자기 위격을 가짐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들은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유사하다면서 의지와 활동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실체에 있어서도 그러하다고 하여 “호모우시온파”의 견해에 거의 접근하였다.

9.8. 힐라리우스 (hilarius, hilary of poitiers, c. 315-367)의 삼위일체론

힐라리우스는 호모우시온과 호모이우시온이 같은 것으로 해석하고 이해한다. 호모이우시온을 승인하면 호모우시온을 거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동일실체”나 “유사실체”의 존재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정하자고 제안하여 “호모이우시온파”를 적극 끌어들였다. 그러나 힐라리우스의 삼위일체론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국한하고 성령은 언급하는 수준이었다. 성령의 위격적 존재에 대해서는 규명하지 못했다.
힐라리우스는 “호모우시온”과 “호모이우시온”을 구분할 필요가 없고 같은 뜻으로 이해하여 호모이우시온파를 정통 니카야 신앙에 끌여들여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호모우시온을 정통으로 확립할 길을 열었다.

9.9. 아다나시오스와 362 알렉산드리아 공회의

콘스탄티누스의 조카이자 배도자인 율리아누스가 황제에 등극하자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니카야 신경을 확정하는 길은 “호모이우시온파”를 영입하는 길뿐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동일 신격과 로고스의 성육신을 고백하는 신자들이 “어구의 차이” 때문에 서로 정죄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아다나시오스는 유세비오스와 함께 알렉산드리아로 공회의를 소집하여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실체임을 확립하였다. 성령의 신성을 주장하여 동일실체적 삼위일체에 성령을 포함시켰다. 삼위일체의 각 위격은 그 자신들의 인격에 있어서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였다. 이 알렉산드리아 공회의의 결정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다시 확정될 것이지만 호모우시온에 대한 오랜 투쟁을 끝내고 호모우시온을 교회의 바른 신앙으로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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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성령의 인격성과 38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희외
conc. constantinopolitanum Ⅰ 381 oecuminicum Ⅱ

“니카야 공회”의 이후 반세기에 걸쳐 진행된 “호모우시온”에 대한 투쟁은 362년 “알렉산드리아 공회의”에서 호모우시온을 교회의 신앙으로 확정하였다. 그러나 “지방 공회의”의 결정이 되어, 에큐메닉 공회의의 결정이 있어야 했다. 이 호모우시온에 대한 최종 결정을 위해 제2차 에큐메닉 공회의가 소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령에 대한 논의였다. 성령이 피조물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므로 아들에게 적용된 호모우시온이 성령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 성령이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확증이 요청되었다. 3조의 확립에 있어서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이 크게 기여했다.

10.1. 바실레오스

바실레오스는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서 한 하나님이신 것을 강조한다. 수에 있어서 한 하나님이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 한 하나님이시므로 삼 위격이 다 참 하나 님이심을 밝힌다. 바실레오스는 처음부터 성령의 신성을 전제하고 출발하였다. 바실레오스는 아레안파가 아들과 성령의 존엄을 낮추어서 세 위격들이 전혀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항하여 성령의 위격이 동일실체로서 삼위의 한 위격임을 증명 한다.
실체와 위격에 대해서, 바실레오스는 “하나님은 실체에 적용되는 이름”이고 “위격은 실체의 개별 존재방식에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보았다.
성령은 바실레오스 신학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적용된 호모우시온을 성령에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삼위의 활동이 동일하므로 성령도 동일실체이며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며 하나님이심을 증명한다.

10.2.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는 바실레오스의 작업을 이어서 성령의 신성을 강조하여 동일 실체임을 강조한다.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이심은 한 실체, 동일본성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는 삼위일체와 세 위격들이 한 하나님이심은 동일실체, 동일본성이라는 데 두었다. 그레고리오스가 하나님의 본성의 특성을 강조한 이유는 아레안파가 성령을 피조물로 보는 것에 대항하여 성령이 하나님이고 피조물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삼위일체는 “실체는 하나”이고 통일하기 때문에 “본성에 의해” 위격들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특성에 의해서 구분”된다고 보았다. 그는 380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신학적 연설을 하여 38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를 준비하였다.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이 다른 위격들과 동등하고 동일실체이며 한 실체가 세 위격에 공동이고 동등이라고 확정하였다. 바실레오스도 성령을 하나님으로 표기하는 일에 그렇게 정열적이지 못였지만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을 당당하게 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38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성령이 주시요 살리는 자시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동등한 영광과 경배를 받으신다는 공식을 확정할 기초를 마련하였다.

10.3. 닛사의 그레고리오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바실레오스의 동생으로서 세 위격이 한 하나님인 것은 본질이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레고리오스의 기본 신학이었다. 그는 창조 전 만세 전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서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로 계신다고 보았다. 세 위격들이 삼위일체인 것은 각각 개별 존재이지만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레고리오스는 성령신학자라고 불린다. 그는 성령이 피조물이 아니라 동일한 신적 본성을 가져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성령조의 공식화에 직접 참여하고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악의 기원”을 설명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져서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자기에게 좋게 여겨진 악을 선택하므로 악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악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악의 기원은 덕의 부재인 것이다.

10.4. 38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제 2 차 에큐메닉 공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는 성령의 동일실체 혹은 성령의 신성을 확립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동일신성”이라는 교리를 확정하였다.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동일실체”임이 확증되었다. 이 공회의에서는 이단들을 정죄하고 니카야 정통 신앙을 가진 자들의 손에 교회가 맡겨지는 일을 황제의 뜻을 따라 결정하였다
그러나 동방 주교들만 모였기 때문에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로부터로만” 확정하여동서 교회간에 오랜 논쟁이 되었다. 이로써 두 교회가 분열하는 씨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갑바도기아 교부들에 의해서 세 위격들의 특성이 아버지는 비출생성, 비유래성, 아들은 출생과 로고스, 또 성령은 출래와 성화로 확정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symbolum constantinopolitanum)

우리는 한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만 드신 이를 믿사오며,
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한 아들을 믿는데,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하 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이요, 빛에서 나온 빛이요, 참 하나님에게서 나온 참 하나님이요, 출생하셨고 만들어지지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통일실체이시다.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 오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셨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수난 받으시고 장사되셨다. 성경대로 부활하사 하늘들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으니, 영광으로 다시 오사 산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라 그의 나라는 끝이 없느니라.
그리고 성령을 믿사오니, 주시요 살리는 자시요 아버지에게서 나오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 받으시고 함께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느니라.
그리고 한 거룩한 보편적이며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 죄들의 용서에 이르는 한 세례를 믿사오며,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오는 세대의 생을 믿사옵니다. 아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의 결정”

① 제2조에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다”가 추가되었다: 이 추가 조항은 아레안파의 주장을 부정하고 아들 하나님의 영원 존재를 확정한 것이다.
② “성령은 주시요 살리시는 자”로 공식화되었다: 성령이 주시라고 공식화한 것은 성령이 피조물이 아니고 천지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이시오 창조를 완성했다고 하므로 창조주이심을 밝힌 것이다. 이 조항은 특히 바실레오스의 신학적 성찰의 결과이다. 두 그레고리오스의 신학적 작업의 결실이기도 하다. 3조를 확정하여 성령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동일실체임을 확정하여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교리로 공식화하였다.
③ “아버지에게서 출래”: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공통된 가르침은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출래하심이다. 서방교회와 달리 성령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에게서 출래한다고 굳게 믿었다. 처음으로 텔툴리아누스가 제시한 것인데 동방교회는 이 가르침을 따랐다.
④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함께 경배 받고 함께 영광을 받으심”: 성령은 하나님이시고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한 신성에 동참하므로 열등한 위치에 서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확정하였다. 아들에게 적용된 “동일실체”(omoousion)가 성령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⑤ “성령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심”: 구약이 신약교회의 성경으로서 자리를 확고하게 잡게 되었다.
⑥ “제3조에 교회를 신앙의 대상으로 확정”: 하나의 거룩한 보편 사도적 교회(eij mian agian kaqolikhn kai apostolikhn ekklhsian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siam)를 믿는다고 추가하여 교회를 성령의 영역 안에 속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넣었다. 교회가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eij를 넣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의의: “모든 신학 활동의 규범”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는 삼위격 간의 종속주의 시비를 없게 했다. 아버지만 아니라 아들과 성령도 아버지와 동일실체에 동참하기 때문에 세 위격들이 동등하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아들과 성령이 피조물이라는 시비가 완전히 가시고 아버지와 동등하여 아버지와 함께 아들과 성령이 동등한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으로 확정되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종교로 확립되었다. 삼위일체 교리를 받지 않으면 바로 이단이 되고 기독교일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정통교리가 확정되었으므로 이제 이후로는 이 “니케노-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따라 신학 하게 되었다. 이 울타리 안에서만 신학 작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다 동일 신적 본성을 가졌다고 확정하였으므로 더 이상 삼위일체에 대한 시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신학함의 표준이 정해진 것이다. 공회의 이후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이었을 뿐 아니라 만대 교회의 신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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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삼위일체 교리의 결말

개요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를 통해서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앙이 고백되었고 신학의 정통 표준이 정해졌지만 서방교회는 몇 사람들의 대표를 보낸 것 외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서방교회는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에게서로만” 국한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지만 실패했다. 따라서 382년 로마에서 공회의를 열어 에큐메닉 공회의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이단들을 정죄하는 일을 하였다. 예배 모범으로 이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근본적인 결말 작업은 “다메섹의 요한네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작업으로 요한네스는 희랍 정통 교회의 신학자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이후 삼위일체론의 논의와 바른 이해를 위해 아우구스티누스가 작업을 하였다. 그는 “삼위일체에 관하여”(de trinitate)라는 저술에서 이제까지의 논의를 총괄하면서도 성경 주석의 방식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바르게 결말지었다. 그는 세 위격들의 완전 동등성과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와 아들로 확정하여” 서방 교회의 교리와 신학활동의 표준이 되게 하였다. 성령의 출래를 동방교회와 달리 “아버지와 아들로부터로 확정”하여 동방교회와의 논쟁에서 filioque를 양보할 수 없게 만들었다.

11.1. 서방교회의 결말

서방교회는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 공식화 작업에 독창적인 사고로 적극적인 기여는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큰 저작을 통하여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ex patre filioque)로 확정하여 삼위일체를 교회의 근본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이 작업에 있어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의 결정을 승인하고 수납한 것이다.
“로마공회의”(concilium romanum, 382)의 결정: 서방교회는 38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 공식 대표가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성령의 출래를 바로 교정하기 위하여 보편 공회의를 소집해 줄 것을 로마 황제 떼오도시오스에게 청원하였지만 다시 동방교회들만을 소집하여 381 공회의의 결정을 재확인 하는데 그쳤다. 그래서 서방교회는 382 로마 교황 다마수스의 주재 아래 로마에서 공회의를 소집하여 성령이 아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자는 신성모독이라고 정죄하였고 다른 이단들을 정죄하고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의 교리 결정을 수납하였다
“암브로시우스”: “암브로시우스”는 삼위일체론을 세움에 있어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같은 신학적 견지에서 전개한다. 암브로시우스는 성령의 위격적 존재를 출래로 말하나 갑바도기아 교부들과는 달리 영이 아버지에게서만 출래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서 출래를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성령의 출래를 아버지와 아들에게로 확정하는 길을 예비하였다.

11.2. 다메섹의 요한네스

다메섹의 요한네스는 전통의 신실하고 경성한 수호자로 일하였다. 교리를 순수하게 보존하고 변호하려고 하였다. 성령의 출래에 관하여 로마교회와 결코 타협하지 않으려고 하므로 동서방 교회간의 성령의 출래의 논쟁과 시비를 계속하게 하였다.

11.3.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 354-430)의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에서 일어난 최대의 신학자였다. 그는 그의 여러 저작을 통하여 기독교 신학을 바르게 정립하였다. 그는 “삼위일체에 관하여”에서 기독교의 기본 교리인 삼위일체 교리를 바르게 정립하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고 제3차 에큐메닉 공회의인 에베소 공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삼위일체 교리를 최종적인 결말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론 교리 형성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신학에서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가 결합하게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을 논리적인 전개가 아니라 성경에 의한 증명을 하고 성경의 주석에 의해 전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고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가 한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전제한 후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들과 성령의 관계를 다룬다. 그 다음 창조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므로 삼위일체의 상을 인간의 구조에서 찾았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를 전개할 때 하나님의 “실체”(substantia)를 “본질”(essentia)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변하고 비가시적이시기 때문이다. “실체”를 사용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하나님 자신과 구분되고 실체에 종속된 어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교회사에서 실체보다는 본질이 사용되어 삼 위격에 강조가 놓이는 사고가 본격화하게 되었다. 위격과 실체와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성령의 출래”에 대해서, 그는 동방신학과 달리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라고 주장하여 서방신학의 기초가 되게 하였다. 이 신학이 아다나시우스 신경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위격”(persona)의 사용 이유에 대해서: 세 위격이란 용어를 하나님 에 대해 사용하면 세 개별자로 이해된다. 이것은 삼위일체에서 의도한 바가 아니다. 이것을 안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래도 위격이란 용어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위격은 사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하며 세 위격이라고 대답한다. 세 위격들이란 완전하게 언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언급하지 않고 남겨둘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삼위일체가 위격과 일치: 각 위격은 다른 위격보다 크심 아니고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세 위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연합이기 때문에 셋은 함께 한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을 개진하여 그의 신학이 공회의의 결정에 이르지는 못하였지만 아다나시우스 신경에 표현되어 서방교회의 신학의 기본이 되었다.

11.4. 아다나시우스 신경

아다나시우스 신경은 정통 신앙의 수호자이고 대변인인 아다나시오스의 이름으로 작성되었지만 그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재생산한 것이다. 개신교회는 이 신경을 정당한 신경으로 받고 루터교회는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서에 이 신경을 표준신경으로 지목하였다. 이 신경으로 삼위일체 교리는 마지막 결정에 이르게 되었다. 성령의 출래에 대해서,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는 것으로 확정하였다. 삼위일체 교리가 결말 되었으므로 이 삼위일체 교리를 믿어야 구원에 이름과 이 신앙을 거부하면 멸망에 이름을 명기하였다. 이로써 삼위일체 교리가 구원 얻음과 교회에 필수적임을 명기하여 이 교리가 영구한 교리임을 천명하였다.

제3편 기독론 교리


12. 기독론 논의의 시작

개요
기독론 교리의 공식화는 삼위일체 교리의 공식화에 이어서 일어났다. 기독론 교리의 공식화 이전에 삼위일체론의 논의에 기독론 교리가 이미 내포되어 있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서 성육신하셨다는 것이 니카야 신경의 기본이 되었다. 이 신경이 기독론 논의의 시작점을 이루었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육신이라는 성경과 사도들의 증거에 근거하고 공식화되었으므로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는 서로 별개가 아니고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동방교회는 자기 교회 지반에서 이루진 두 교리 곧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로 만족하였다. 시리아 교회와 콥틱어를 사용하는 애굽 교회는 기독론의 문제에 개입하기를 거부하여 공교회에서의 분리되었다.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또 우리 구원을 위해서 그는 강림하사 성육신 하시어 사람이 되시고 수난받으셨다”는 니카야 공회의 신앙 공식에서 시작해서 “에베소”와 “칼케돈 공회의”를 거지며 마침내 “칼케돈 신경”으로 정통교리가 확정되었다.

12.1. 오리게네스 (origenes, c. 185-254)의 기독론 논의

오리게네스는 신앙의 규범을 따라서 성육신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육체의 결합이 중간 매체인 영혼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성육신의 방식을 말하였다. 이 견해는 희랍 사상으로 혼이 영과 육체의 중간 존재이므로 물을 결합하도록 하는데 혼이 매개했다고 하는 것을 로고스와 육의 결합을 위해 영혼이 매개 역할을 하였다는 것으로 제시하였다. 오리게네스는 희랍 사상을 따라 인간 구성을 삼분설로 보았기 때문이다.
오리게네스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가르쳤다. 그의 기독론은 “두 본성론”이었다. 그는 신적 로고스와 인간의 육체가 합치는 “로고스-육”(logos-sarx)의 기독론을 제시하여 인간 영혼을 부인하게 되었다.

12.2. 아레안파들과 유스타띠오스

오리게네스의 추종자들인 가이사랴의 유세비오스 등은 성육신자에게 로고스가 합리적 영혼없이 인간 육체만을 취하여 영혼의 기능을 로고스가 행했다는 견해를 가졌다. 아레안파는 그리스도의 피조물을 증명하기 위해 육이 됨만 강조했다.
아레안파의 로고스-육 기독론에 대항하여 로고스-사람 기독론이 제시되었다. 유스타띠오스는 로고스의 성육신에 있어서 취해진 인성은 인간적인 합리적인 영혼으로서 주도적 원리와 생명과 운동의 중심이며 또 육체를 포함하지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네스토리오스주의를 예시하였다.

12.3. 아다나시오스의 기독론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인 아다나시오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바로 변호하기 위해서 니카야 신경을 산출하였다. 그의 출발점은 요 1:14이었다. 로고스가 인간이 되시되 한 인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보았다. 아다나시오스는 기독론을 제시하기 전에 성육신의 동기를 말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타락하여 멸망에 이르게 되어 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셨다는 것이다. 로고스가 육체 안에 나타나심은 부패된 것을 죽지 않은 것에로 돌이키려고 함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돌리는 것은 다른 어떤 이의 권세 안에 있지 않고 태초에 만물을 무에서 만든 구주밖에는 없다. 성육신의 방식은 로고스가 한 몸을 지어 자기의 성전으로 삼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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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폴리나라스주의와 두 그레고리오스의 기독론

개요
기독론의 논의와 교리 공식화에 있어서 핵심은 로고스 하나님이 성육신 하였으면 “성육신자의 인격/주체가 하나님이냐 사람이냐”이다. 그리고 “한 인격이려면 인성과 신성이 어떻게 결합했느냐”하는 것이다.

13.1. 아폴리나리스주의

앞에서 제기한 그리스도의 인성에 있어서 활동의 주체에 있어서, 조화 문제는 아다나시오스의 친구인 아폴리나리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여기서 생긴 기독론 논쟁이 칼케돈 공회의에서 종결되었다. 아폴리나리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해 성육신에서 지성을 배제하였다. 그는 로고스가 육체와 영혼을 취하되 지성 곧 누스의 자리를 대신하므로 한 인격을 이룬 것으로 생각했다. 아폴리나리스에게는 신적 로고스가 인간의 이성을 대치하였다. 그의 기독론에 의하면 로고스는 의지와 지성의 기능을 행사한다.
그는 381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교부들은 삼위일체론에 집중하였지만 아폴리나리스의 주장에 대한 반박에 있어서는 일치하였으므로 그를 정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니카야 공회의는 그리스도의 부분적인 인성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였다. “그리스도는 성육신에 있어서 몸과 영혼 뿐만 아니라 영 혹은 지성을 취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3.2.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의 기독론

그레고리오스는 아폴라리우스에 대해서, 반쪽 아담이 타락하였으면 그리스도가 취한 것과 구원한 것도 반쪽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본성 전체가 타락하였으면 그 본성은 출생하신 이의 전 본성에 연합되어야만 하고 그로써 전체로 구원되어져야만 한다고 했다. 아폴리나리스는 신성이 인간 지성을 차지했다고 말하지만 그레고리우스는 지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므로 영혼은 있어도 지성이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인간이겠는가 라고 했다. 물론 그는 성령론에 관심을 가졌으므로 기독론에 대해서 자기의 견해를 체계화시키지는 못했다.


13.3. 닛사의 그레고리오스(gregorios of nyssa)의 기독론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하나님이 성육신하므로 하나님으로서의 인격에 두 본성을 가지셨음을 표현하였다. 로고스 하나님 곧 창조주가 사람의 낮은 본성에로 들어오심은 그가 창조한 인간본성을 고쳐 불멸에로 돌이키기 위함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성육신으로 육체로 수난받으나 그 행동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희랍교회의 이해와 성육신의 진리를 바로 제시하였다.

13.4. 4세기 교부들의 기독론에 있어서 일치점

그들 대부분은 그리스도가 두 본성을 가졌고 그의 인성은 완전하여 절단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성을 소유했으므로 그의 신체적인 제약과 연약성들과 수난들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지성을 소유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두 본성이 성육신으로 다른 본성으로 변화되지 않았다는데 일치하였다. 성육신자는 한 인격이었음을 공히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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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4. 안디옥의 네스토리오스와
알렉산드리아의 퀴릴로스의 기독론


동방교회에서 안디옥파는 두 본성에 두 인격이 은혜로 연합한 것으로 주장하였다. 알렉산드리아파는 한 인격이려면 한 본성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독론 교리 결정에 있어서 서방교회의 개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한 인격에 두 본성”이 그 특성을 다 유지하는 것으로 확정하였다.

14.1. 안디옥파의 기독론

디오도로스는 378년 다소의 주교가 되었는데, 사후 백년이 지난 499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에서 네스토리오스주의의 창시자로서 정죄되었다. 그는 신인 안에서 로고스와 육을 정규적으로 대조하였다. 로고스와 육이 인간의 경우에서처럼 영혼과 육체가 이룬 실체적 통일을 이룬다면 신성이 축소되는 것으로 보고 둘을 분리하려고 하여 하나님의 아들과 다윗의 아들을 구분하게 되었다. “성경은 두 아들들의 활동들 간에 예리한 분계선을 긋는다”고 주장했다.
떼오도로스는 디오도로스의 제자로서 완전하고 독립적인 하나의 인간 본성을 전제하였다. 인간 본성은 신체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선악의 식별과 지식의 발전을 경험하였고 유혹과 투쟁해야만 했다고 하였다. 때로는 로고스가 이미 실재한 한 인간 존재를 취했다고 기술하였다. 그는 “그 사람”과 “로고스”의 “완전성”과 “독립성”에 과도히 집중하여 인격의 통일성을 잃게 되었다.

14.2. 네스토리오스 (nestorios of antiocheia, 381-451)의 기독론

네스토리오스는 안디옥 출생으로 떼오도로스의 제자로서 안디옥 학파를 대변하였다. 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대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떼오토코스가 아니라 크리스토토코스이여야 한다는 주장했다. 마리아는 단지 그리스도의 인성만 낳았으므로 그리스도를 낳은자(cristotokoj)가 적합한 표기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란 표기가 두 본성들의 결합에 합당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어머니(qeotokoj)를 가질 수 없으며 인간은 신성을 낳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떼오토코스란 칭호는 아다나시오스 때부터 교회의 공용 호칭이 되었고 또 마리아가 교회 신앙에서 존경을 받게 되었는데 이 칭호를 거부한 것은 사모사타의 파울로스의 견해가 살아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것은 두 아들이 도덕적인 연합에 의해 연합되었다는 4세기의 학설을 따른 것과 같다.
네스토리오스는 안디옥의 기독론 전통을 따라 성육신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각자는 그 고유한 특성을 유지한다고 보았다. 본성들의 병존은 결코 혼합에 이르지 않아서 혼합 없는 결합을 주장했다. 두 본성의 표현은 통일적인 인격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나는 두 본성은 나누나 경배는 연합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인간 인격과 하나님의 인격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아 인격의 통일성을 알지 못하였다. 동정녀에게서 출생한 이는 인간 예수 혹은 엄마누엘이므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없다고 하였다.

14.3. 알렉산드리아의 퀴릴로스

퀴릴로스는 로고스가 성육신 하였으면 그 본성이 취해진 인성 내로 들어와야 한 인격이 될 수 있고 성육신이 될 수 있다고 믿어 두 본성을 분리한 네스토리오스를 정죄하였다. 떼오토코스를 거부하고 크리스토토코스라고 주장한 네스토리우스를 공격하여 에베소 공회의를 자기 신학의 승리로 이끌도록 하였다. 그는 니카야 신경대로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강림하사 성육신 하셨다는 것을 그대로 받았다. 신성과 인성이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성한다고 믿었다. 그의 몸으로 수난 받아 로고스가 몸으로 죽음에 이르렀고 몸의 부활로 부활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퀴릴로스는 교회의 신앙을 보전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퀴릴로스는 로고스가 성육신함에 있어서 한 인간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됨으로 그의 인격은 하나님으로서 인격이고, 취해진 육은 로고스의 육이므로 육의 일도 로고스의 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4.4. 431 에베소 공회의: 제3차 에큐메닉 공회의

떼오도시오스 황제에 의해 소집된 에베소 공회의는 퀴릴로스와 네스토리오스가 서로 정죄하고 둘 사이에 주교들의 의견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교리적 결정을 이루지는 못했다.
퀴릴로스의 견해는 아폴리나리스의 색채를 띤 것으로 여겨졌고 네스토리오스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둘로 나눈 것으로 제시되었으므로 공회의가 합의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로마교황 첼레스티누스가 퀴릴로스의 편에 서고 또 그에게 공회의의 집행을 위임했으므로 퀴릴로스가 우세하였다. 이 공회의에서 합의된 사항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인격으로 마리아의 태에서 한 인성을 취하사 사람이 되시되 그 인격은 하나님으로서 하나이고 본성은 변화 없이 둘이지만 한 인격에 결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정녀는 하나님의 어머니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성육신자는 한 인격이고 두 본성을 가졌다는 데 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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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5. 칼케돈 공회의의 기독론 교리 확정
conc. (oecum. Ⅳ) chalcedonense 451

개요
에베소 공회의는 기독론 교리에 있어서 동서방 혹은 알렉산드리와 안디옥 대교구 간에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므로 기독론의 논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퀴릴로스의 신학의 영향아래 있는 알렉산드리아와 애굽의 수도승들은 계속해서 인성과 신성이 성육신으로 한 본성이 되었다는 한 본성론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자기들이 수도를 통하여 목표한 “신인합일”이 가능함을 발견하고 한 본성론 주장을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유티케스가 이 퀴릴로스의 가르침을 과격화하여 그리스도는 성육신 전에는 두 본성이었으나, 성육신 후에는 한 본성이 되었다고 주장하므로 기독론 교리의 결정을 이루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칼케돈 공회의에서 기독교의 근본진리인 기독론 교리가 확정되었고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15.1. 유티케스의 “단일본성론”(monophysitismus)

유티케스의 근본주장은 그리스도의 몸은 성육신 후에 우리와 동일실체가 아니고 오히려 성육신 후에는 그의 본성은 신적인 한 본성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아폴리나리스주 의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던 이단이었다.
15.2. 레오 감독의 가르침

서방교회는 교리를 공식화하는 일에 큰 공헌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레오 감독은 탁월한 정치적인 능력으로 칼케돈 신경의 공식화를 이루도록 도왔고 칼케돈 공회의를 주도하였다. 레오는 그리스도의 한 인격과 두 본성이 한 인격에 결합하였음을 강조하여 칼케돈의 공식화가 바로 이루어지게 일하였다. 이 성육신의 신비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루어졌음을 잘 밝혔다. 참 하나님이신 이가 참 사람이 되셨음을 바로 밝혔다. 하나님으로서의 영광과 엄위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종의 형상을 취하셨다고 하여 각 본성이 그 특성을 그대로 유지함을 강조하였다.

15.3. 칼케돈 공회의

떼오도시오스의 승인아래 에베소 강도 총회가 진행되었으나 떼오도시오스가 죽자 그의 누이 풀케리아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공회의의 소집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레오가 원하는 대로 이탈리아가 아니고 칼케돈을 공회의의 소집지로 정하고 451년 공회의를 소집하였다. 6백명의 주교들이 참석하였고 공회의의 전체적인 목표는 제국의 안목에서는 전제국 내에 단일 신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니카야 신경을 정통신앙의 표준으로 재확인하고 또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이단 반박용으로 재확인하였다. 그리고 퀴릴로스의 교리 서신들을 인정하고 또 레오의 교리 서신을 유 티케스 주의의 반박으로 합당한 것으로 수납하였다.

“칼케돈 신경”
(신성에서 아버지와 동일실체 인성에서 우리와 동일실체) 그러므로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우리 모두는 이구동성으로 한 동일한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해야 할 것으로 가르친다. 신성에 있어서 동일한 완전한 자이시며 인성에 있어서 동일한 완전한 자이시며,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시며, 합리적인 영혼과 육체로 된 동일자이시며,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실체이시며, 인성을 따라서 우리와 동일실제이시고 죄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시다. 신성을 따라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해서 또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인성을 따라서는 그 동일자가 동정녀 마리아, 하나님의 출생자로부터 나셨다. 하나의 동일한 그리스도, 아들, 주님, 독생하신 자이시다.

(두 본성: 혼합, 변화, 분열, 분리 없이 한 아들: 독생하신 하나님, 주 예수)
두 본성에 있어서 혼합 없이 변화 없이 분열 없이 분리 없이 인식되어야 하며, 결코 연합 때문에 본성들의 차이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양 본성들의 특성들이 손상되지 않는 다. 그리고 한 인격에로 또 한 존재 방식에로 함께 들어갔고 두 인격에로 나뉘거나 분열되지 않으며 한 동일한 아들, 독생하신 하나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선지자들 이전에 그에 대해 또 그 자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가르치신 것처럼 교부들의 신경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셨다.

“칼케돈 신경의 핵심”
1) 칼케돈 신경의 핵심은 성육신자의 인격은 영원한 로고스의 인격으로 “한 인격이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 본성은 각기 그 특성을 유지한다”는 고백이다.
2) 칼세돈 신경은 “성육신한 로고스는 한 인격이지만 두 본성으로 성립한다.”고 확증한다. 두 본성의 연합이 서로 혼합 없이, 변화 없이, 분열 없이, 분리 없이, 한 인격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네스토리오스주의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안에 한 인격만이 있음을 확정했다. 유티케스와 디오스코로스에 대항하여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있어서 각기 자기의 특성을 유지한다고 하였다. 두 본성이 하나의 제삼의 본성으로 바뀌므로 한 인격을 이루는 것이 아님을 밝혔다. 이로써 성육신의 신비로 인하여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 있음을 확정하였다.

칼케돈 신경은 성육신의 신비를 해명한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선포하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칼케돈 신경은 논리적인 사고의 형식이 아니다. 신앙 고백의 방식이다. 양극단을 절단하고 그 중도를 택하여 신비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칼케돈 신경은 기독론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다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신앙에서 사변을 제거하고 신앙의 신비가 지속되게 하였다. 칼케돈 신경 이후, 하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면 이단이 되고 기독교가 되지 않음을 확립하였다. 성육신으로 한 인격이 해소되지 않음 을 강조하고 두 본성을 보존하였다.

16. 단일본성론 논쟁과 제5차 에큐메닉 공회의:
553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단일본성론 주장

칼케돈 공회의(451)의 기독론 교리 결정 후 칼케돈 신경에 대한 반대가 격렬하게 일어났다. 레오 감독의 편지와 칼케돈 공회의의 교리 결정은 “두 얼굴을 가진 우상”으로 여겨졌다.
“알렉산드리아 기독론의 추종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들의 통일성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백여 년에 걸친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이슬람이 와서 자기들의 존립을 휩쓸어버림으로 그 논쟁이 끝나게 되었다. 애굽과 시리아 일부와 아르메니아 지방에서는 단일 본성론자들이 우세하여 독립적인 민족교회를 형성하였다.

553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칼케돈파와 단일 본성론파로 나뉘어진 제국교회의 통일을 위해 553년 5월에 제5차 에큐메닉 공회의를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소집하였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새칼케돈 주의라는 해석을 받아들여 칼케돈 신경을 네스토리오스 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퀴릴로스의 신학을 기본으로 해서 451 칼케돈 신경의 새로운 해석을 하도록 하였다. 칼케돈 신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전통적인 해석을 금하고 단일 본성론적인 해석을 정통으로 확립하였다. 두 본성으로 구성되었지만 한 본성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며 네스토리오스적인 해석은 완전히 배제하도록 했다.
553 제5차 에큐메닉 공회의는 150명의 주교들로 소집되어 서방주교들은 별로 참석하지 않았다. 서방은 이에 반대한다.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의 결정을 오히려 교회 존립의 위협으로 본 시리아의 단일본성론주의자인 야코보스 부르데아나는 유스티니아노스의 조치들이 자기 교회의 존립과 독립에 위협적인 것으로 보고 반대했다. 야코보스 이후에 이 서방 시리아의 교회는 야코보스교회라고 불리웠다. 이 교회도 새 칼케돈 주의를 반대하였다. 아르메니아 교회, 롭틱 교회, 에디오피아 교회도 칼케돈 신경을 반대했고 지금까지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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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7. 단일의지론 논쟁과 제6차 에큐메닉 공회의
: 680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

17.1. 단일의지론자들
칼케돈 신경은 단일본성론자들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정되지 않았다. 553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의 결정은 칼케돈 신경을 변경하고 수정한 것이 아니라 그 이해를 퀴릴로스의 신학으로 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이제 그리스도의 의지는 하나이냐 둘이냐 하는 것이 논쟁이 시작되었다. 칼케돈 신경대로 두 본성이면 의지도 두 의지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단일 의지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인간본성을 비인격적으로, 비활동적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의지나 인간적인 활동을 소유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단일 본성론자들은 두 본성을 인정하였으므로 능력까지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능력은 자체 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은 형식적인 것이고 내용적으로는 로고스의 원함이고 활동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정통파는 이 두 가지를 본성의 관점에서 고찰하여 이중 실체를 강조했다.
막시모스는 “단일의지론”을 반대했는데, 그는 두 본성들은 필연적으로 의지와 에너지의 두 본성적인 능력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적인 의지없이 그리스도는 사람일 수 없다고 보았다. 인간이 되신 로고스에는 두 본성적인 의지가 현존한다. 두 의지는 각각 자기의 본성적인 특성을 갖는다.
680 제 3 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는 예수 그리스도가 두 본성 곧 두 실체를 가졌으므로 두 본성적인 의지와 두 본성적인 활동을 가진다고 결정하였다. 단일 의지론자들을 바른 교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로 정죄하였다.

“기독론 논의의 종결”
6차 에큐메닉 공회의는 성육신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두 본성을 가졌으므로 두 본 성대로 두 의지를 갖는다고 확정하였다. 이로써 성육신을 완성하고 기독론 논의를 종결하였다. 알랙산드리아 퀴릴로스의 가르침대로 성육신한 한 본성을 강조한 단일 본성론 자들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로마교회가 주도해서 결정한 칼케돈의 결정을 논리적인 귀결에 이르게 했다. 이제, 기독론 교리의 논쟁은 종결되었다.
우리는 “두 의지”는 “두 인격”을 연상하기 쉽게 하지만 두 본성적인 의지와 두 본성적인 역사를 확정 하므로 성육신을 완성하고 칼케돈의 결정을 그 논리적인 귀결에 이르게 하였다. 그리고 에큐메닉 공회의가 로마 교황 호노리우스를 정죄하므로 교황무오설 위에 서 있는 로마교회의 근거가 희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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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성상숭배와 787 제7차 에큐메닉 공회의
: 제2차 니카야 공회의

“성만찬 예식의 변환”
공교회가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 교리들을 확정한 이후 이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교리를 받아들여 신앙을 체험하기 원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고 신비적인 신인식을 위해 애썼다. 점점 의식(cultus)이 강조되고 의식 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의식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져 “신화”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찬이 이런 신화에 큰 힘을 갖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성례전에서 은혜의 힘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세례를 받을 때 기름을 바르면 악의 세력을 이기는 힘을 얻는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일에 성물들도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그나치오스는 의식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메또디오스는 그리스도의 특징과 형상이 정절과 동정성을 위해 덕이 되고 불멸에 이르게 하는 덕이라고 보았다. 유세비오스는 희생의 제사의 관점에서 보면 바쳐진 물질적인 요소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적인 몸의 상징들이라고 보았다. 바실레오스는 우리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먹으므로 그의 성육신과 가시적인 생명에 의해서 그의 생명과 그의 지혜의 동참자가 된다고 하였다. 마카리오스는 영적으로 먹음은 어떤 실재적인 것을 즐김을 뜻한다고 보았다. 예루살렘의 퀴릴로스는 화체설을 주장했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성례전에 있어서 세례도 죄의 용서보다는 영의 통보로 보게 되었다. 이 영을 통보받으면 인간을 갱신하여 불사에로 이르게 하는 것으로 여겼다. 크리소스토모스는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인다는 주의 말씀을 그의 죽음과 부활로 보고 독수리들을 신자로 보았다. 반대로, 성찬상에 참여하는 자들이 하늘에로 오른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퀴릴로스는 성육신으로부터 성찬식을 보고 교회는 성찬식과 성육신을 결합하게 된다고 보았다. 신앙고백자 막시모스는 안디옥의 신비적인 예배의식과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적인 신비주의를 결합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유티키오스는 그 원인은 효과들과 구별되어 따로 실재하지만 그 효과들에 자신을 배가하고 각자 안에로 전체로써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다메섹의 요한네스는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에로 변화된다고 주장하여 그를 통해서 성례전이 완성되었다.

“성상 숭배 논란”
기독교는 이방종교들의 풍습과 영향을 받아들이게 된다. 기독교라는 신령한 신앙은 유물들과 순교자들의 뼈를 숭배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그림들을 숭배하게 된다. 성상숭배에 대해 논란과 반대가 많았고 황제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대중의 관습이 이겨 기독교를 우상종교로 만들었다.
에피파니오스는 아나블라타의 교회의 휘장의 그림을 반대하고 하나님은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암필로키오스는 성자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지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는 교회에 그리스도의 상을 세우는 것을 반대했다. 필록세노스는 그리스도의 상을 반대했고 천사들의 상도 반대했다. 6세기 안디옥과 에데사에서는 성상을 파괴했다. 8세기 니콜리아의 콘스탄티노스는 그림들에 반대했다. 소아시아의 주교들은 그림들, 성상 숭배가 하나님 경배에 배치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일반 대중은 예수께서 성육신으로 사람이 되었으니 그림을 존경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았다. 대 바실레오스는 그림들은 색깔로 대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스는 그림을 반대했으나 교훈적 가치는 인정했다. 닛사의 그레고리오스는 교회에 성 떼오도로스의 그림을 그렸다. 앙퀴라의 네일로스는 그림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상태를 기억한다고 보았다. 네앞폴리스의 레온치오스는 그림은 경배용이 아니고 회상용이라고 보았다.

“성상 신학”
그림숭배가 만연해지자 그림숭배를 정당화할 신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 게르마노스는 황제 레온이 성상 숭배에 반대하자, 오히려 황제에 반대하여 787 니카야 공회의에서 정통 성상론의 기초를 세우게 된다. 그는 그림의 목적은 신자들로 생활 개선하게 하고, 성경의 보고들을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754 콘스탄티노폴리스 공회의는 그리스도의 신성은 표현이 불가하므로 피조물로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모독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754 공회의는 787 니카야 공회의에 의해 배척된다. 이처럼 정치권력이 교회의 교리를 타락시켜 교회를 세속 종교, 우상종교의 하나로 만들었다. 신상들을 만들어 섬기던 이방종교의 관습이 그대로 교회에 들어와 그림숭배가 교회의 교리가 된 것이다. 영적인 종교가 물질적 종교가 된 것이다. 제7차 에큐메닉 공회의 이후 기독교는 미신과 우상숭배와 공교리가 혼합된 혼합 기독교가 되었고, 종교개혁의 전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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