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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
조회 165 추천 0 비추천 0 2018-06-04 08:51 작성자 : 장목사
성지이스라엘

1. 예루살렘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 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수 6:20)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 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편 132:13) 다윗왕이 원주민 여부스족을 물리치고 처음 예루살렘을 점령 한 이후 시온 산성(zion), 또는 다윗성(cityof david) 이라고도 불리던 예루살렘성,(삼하5:7-9) 그 성(the city), 하나님의 성 (gods city),거룩한 성(holycity),정의의 성(city of justice), 믿음의 성(faithful city), 평화의 성(city of peace), 아름다운 성(beautifulcity)등의 모든 이름들은 여러 예언자들이 서로 달리 예루살렘을 부르던 말 들이다.

 

2. 감람산 (mt. olive)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해발 약 800 m의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감람나무(olivetree)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루살렘 보다 약 90 m 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예루살렘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예수님은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기도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하였으며 부활 후 마침내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시었다. 예수님이 배신 당하고 체포당한 겟세마네 동산을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이곳 감람산의 서쪽 기슭이다.

3.겟세마네 동산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막 14:32) 겟세마네 동산을 감람산 서편 기슭으로 바로 아래에는 기드론 계곡이 있고 기드론 계곡을 건너면 예루살렘성의 동편 성벽과 이어진다. 이곳에는 몇 개의 기념 교회들이 세워져 있다. 예수께서 땀흘려 기도하시던 장소의 바위를 둘러싸고 지어진 겟세마네 교회, 러시아 황제가 자기 어머니를 위한 기념으로 세워 놓은 막달라 마리아 교회, 예수께서 붙잡히실 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자른 장소에 세워진 겟세마네 동굴 교회, 예수님이 우셨다는 곳에 세워진 눈물 교회 등이다.

 

4. 베데스다 못 (pool of bethesda)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다섯 행각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게 됨이러라." (요 5:2-4) 성 안나 교회 구내에 있는 베데스다 못의 지역은 1871 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오늘날은 원래의 그 모습을 잘 볼 수가 있다.


5.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제1지점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이며
  제2지점은 가시관을 씌우고,홍포를 입히고 희롱한 곳이며,
  제3지점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며
  제4지점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이며
  제5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며,
  제6지점은 성베로니카 여인이 물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며,
  제7지점은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8지점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  라고 말씀하신 곳이며,
  제9지점은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10지점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며,
  제11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며
  제12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이며
  제13지점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놓았던 곳이며
  제14지점은 예수님이 묻히신 곳 즉,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이다.

   ※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sepulchre)안에 있다.

 

6, 성전산 (temple mount) <대하3:1-5, 눅19:45-46, 마4:5>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사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산을 서기 전 1000년경 다윗왕은 그 땅의 주인 아라우나로 부터 은 50 세겔을 주고 구입하였고(삼하 24:18-25), 그의 아들 솔로몬은 페니키아인들의 도움으로 화려한 궁전과 여호와의 성전을 건설 하였다. 서기 전 586년 이곳을 침략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은 성전을 불태웠으며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을 바벨론으로 유배 시켰다.   바빌로니아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은 주전 515년에 소규모로 성전을 재건하였고, 이것을 제2성전(2nd temple) 이라고 부른다. 서기 전 37년에 로마제국의 후광하에 왕위에 오른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당시에 현존하던 성전을 헐어 버리고 대규모의 성전과 부속 건물, 주변의 요새 등을 원래의 크기와 위용대로 재건 하였고, 서기 30년경 나사렛 출신의 예수는 부패한 성전의 지도자들에 대항하여 성전을 정화시키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성전 모독 죄 및 반란죄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서기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이 성전은 다시 완전히 파괴되고, 성전 터엔 서기 135년경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이교도의 아도니스(adonis) 신전이 건설 되었고, 비잔틴 시대(서기 330∼ 640) 에는 이곳을 통치했던 기독교인들이 바신들이 비난시 했던 유대인 성전의 파괴를 후세에 보여주기 위하여 가꾸지 않은 황폐한 모습으로 성전산을 방치하였다. 서기 638년 이후 이곳을 통치했던 모슬렘들은 성전 산의 큰 바위 위에서 자신들의 최고의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바위를 종교적으로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서기 692년 당시 예루살렘의 통치자 (caliph) 압둘 말리크는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팔각형의 기단과 돔으로 이루어진 일명 "황금의 사원"이라고도 불리우는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을 건설하여 오늘날 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7. 모리아산의 바위 (rock of mt.moriah)


바위 사원 실내에는 폭 12야드 길이 15야드 높이 2야드의 넓직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던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표면에는 골이 패어 있어서 제물의 피가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슬람들은 이 바위를 딛고 마호메트가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세계의 3대 성도가 되는 것이다.

8. 통곡의 벽 (western wall )


이곳은 유태 교도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을 하는 곳이다. 이 벽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제2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주후 70년 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유독 이 벽만을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 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 되었다.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수세기에 걸쳐서 계속 되었는데, 1948년부터 1967년 까지 이 지역이 요르단 령에 속하게 됨으로써 유태인들은 다시 방문이 금지 되기도 했다.  유태인들은 6일전쟁시 이 지역을 탈환하므로 서 이곳은 범국가적인 즐거움과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 앞의 넓은 공터를 수 천명이 기도할 수 있도록 다듬어 놓았으며, 또한 이곳은 유태 교도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을 하는 곳이다. 이 벽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제2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주후 70년 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유독 이 벽만을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 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 되었다.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9. 여리고 (jerico)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수 6:2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 19:1-4)  여리고는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서 오렌지, 바나나,대추야자 등 온갖 작물이 풍성한 곳이다.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반면에 겨울과 봄에는 기후가 좋아서 온통 꽃 향기가 진동한다. 부근 일대에는 종려나무가 흔하기 때문에 종려나무의 도시 (thecity of palms)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해면보다 250m 낮은지역으로서 예루살렘 동편 약35km 떨어진 요르단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10. 여리고의 옛 도시 (the jerico excavations)


고고학적으로 여리고는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도시(walled city)이다. 이곳은 1930-1936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죤 카스팅(john garstang)이 발굴했고, 1952-1958년에는 영국의 여류 고고학자 캐더린 캐년(kathleen kenyon)이 정밀 발굴 하였다. 발굴 결과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 성을 발굴하고 성벽과 둥근망 대(round tower)를 발굴 하였다. 즉 주전 7000년경에 이미 성울 쌓고 도시 생활을 시작한 유물인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집안 벽을 그림으로 장식하였고 죽은 사람의 두개골은 방바닥에 매장 하였다. 또한 진흙으로 만든 여자의 형상, 동물 형상도 발굴 되었다. 이 시대에 속하는 주거 층에서 터어키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오석(turqu-oise)으로 만든 장신구가 발견 되었다. 이것은 이미 이 시대에 여리고는 여러 먼 곳의 지역과 왕래와 교류 관계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11. 요단강 (river jordan)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마 3:5)   요단강은 사철 눈이 녹지 않는 헬몬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를 거쳐서 사해까지 이른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 까지 직선거리 104km를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기 때문에 그 총 길이는 256km가 되며, 평균 폭은 약 30m이다.  갈릴리 지방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엄숙한 표정에 약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메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사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침례)를 받으신다.



12. 사해 (the dead sea)

 

길이 77km 폭 16km 표면적 약 950 평방 km 인 사해는 그 수면이 지중해보다 398m나 더 낮다. 즉 지구 표면 중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 이다. 구약에는 염해(yam hamelach =  salt sea)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생물이 전혀 살지 않기  때문에 사해라고 불리며 염도가 약25%로서 세계적으로염분이 가장 많은 물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해에 들어가면 손발을 휘젖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둥둥 떠 있게 된다. 혹시 손발을 휘젖다가 물방울이라도 튀어 눈에 들어간다면 눈이 쓰라려서 그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 정도이다. 보통 바닷물이 4-6 퍼센트의 염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해물은 그 5배나 되는 것이다. 사해가 그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 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요단강 등 주변에서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함유된 약 7백만 톤의 물이 매일 쏟아져 들어 오는데, 빠져 나갈 구멍은 없고 요르단 계 곡의 뜨거운 열기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화학물질 등 고 체 성분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특히 사해의 포타슘 매장량은 전세계가 이곳에서 나는 것만 쓰더라도 100년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포타슘은 비누, 비료들을 만드는데 쓰인다.사해 주변에는 사해 물을 분석해서 광물질을 추출해 내는 공장 들이 있다. 사해의 물은 피부병에 특수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또한 이곳의 검은 흙은 신경통 등에 특효라고 전해진다. 세계 각국에서 치료차 사해에 오는 사람들이 있고, 이 근처에는 이들을 위한 특수 병원도 있다.


13. 맛사다 (mesada)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며, 사해의 서쪽 해변에 위
치하고 있다. 주위의 유대 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높이 400여m의 이 천혜의 절벽 요새는 정상이 길이 600m, 가장 넓은 곳이 폭이 250 m인 평지를 이루고 있다.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를 통하여 마사다가 헤롯왕의 요새인 동시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유대 전쟁(jewish war)" 최후의 비극의 격전지 였음을 알게 해준다. 서기 66년부터 시작된 이 반란이 로마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의 "열심당원" 이라 불리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이미 66년에 당시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마사다를 점령하며 저장된 물과 식량, 무기를 이용하여 로마에 대항하였다. 예루살렘을 이미 점령하여 유대인 반란의 진압을 이미 달성한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titus)는 장차 아라비아 광야 지역으로의 진출을 예상한 광야 전투의 훈련을 목적으로 실바(silva) 장군으로 하여금 10군단을 이끌고 이곳에 대한 대규모의 포위 작전을 실시하게 하였다. 로마군은 2년에 걸친 무수한 정상 공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한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 갈 수 있는 거대한 경사로를 6개월에 걸쳐서 축조하였다. 유대인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성퇴가 성벽을 무너뜨리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로마군이 성벽이 파괴된 곳으로 진격해 올 바로 그 전날밤에 유대인들의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모두를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내일 아침 로마군에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오늘 밤에 우리가 스스로 자유스럽게 영광의 죽음을 선택 합시다."이 말에 감동한 각 가족의 가장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칼로 찔러죽인 다음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명을 추첨하여 그 열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죽였고 남은 열명이 한명을 추첨하여 아홉 명을 죽인 후 그도 최후로 자결 하였다. 3년 동안의 한 맺힌 포위 작전에 대한 영광의 대가를 바랬던 로마군들은 960구의 시체 앞에 망연자실 했으며, 이 비극의 전설은 오늘날까지 승화되어 마사다는 현재 이스라엘 군 장병들이 선서 식장으로 활용되고, 이곳에서 그들은 "never again!"을 외치면서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이 다시는 외적에 의해 정복당할 수 없다는 비장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14. 쿰 란 (qumran)

 

  1947년 봄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나섰다가 사해의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의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던 양피지에 기록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scroll) 사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이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서기 전 10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성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51∼6년에 걸쳐 프랑스의 성서 고고학자 드보(r. de vaux)는 쿰란언덕에 위치한 유적지를 발굴하여 이곳이 요세프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엣세네(essene) 집단의수도원임을 밝히게 되었다. 수도원은 원래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이 보다 높은 지점의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겨울철의 우기에 흘러내려오는 빗물이 수로를 따라 수도원의 물 탱크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었다. 한 주간 중 평일에는 근처의 수많은 동굴 속에서 기거하던 엣세네 수도자들이 안식일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물로 씻는 정결 예식과 성서연구를 하였고 공동의 식사를 위한 대형 식당과 주방,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 등이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다.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요한이나 근처의 요단 강에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 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15. 므깃도 (megiddo)

 

  이스르엘 평야 중에서도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제국들의 군대는 이곳을 통과하여 지나갔고, 가나안 땅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곳이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의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왕상 9:15)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sisak)은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그 후 아합왕때 이곳은 다시 재건되었다. 요시아왕은 북진하는 애굽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bc 609) 1917년 영국의 알렌비(allenby)장군이 터어키군을 패배 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 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므깃도는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되었다. 또한 1960년 이갈 야딘(yigael yadin)도 발굴하였다. 이곳은 주전 3000년 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식 신전을 발굴하였고, 또한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발굴 되었다. 므깃도에서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들을 건설하였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므깃도 발굴에서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큰 장소를 발굴 하였다.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왕 때의 주거 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 아합왕 때의 것이다.(bc 869-850)  므깃도는 시삭에게 파괴되었다가 아합때 복구 되었었다. 그러나 아합왕 때의 마병장은 그 이전 솔로몬때의 것 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으며, 규모도 비슷한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것은 당시의 발전된 공업 기술을 볼 수 있는 우수한 수로 장치의 발견이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 부터 도시 내부로 끌어 들이도록 되어 있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이것은 3,00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잘 보관되어 있다.


16. 나사렛 (nazareth)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나사렛은 예수께서 출생 후 잠시 애굽으로 피난 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태아에서 부터 유년기를 거쳐 성년이 되기까지 일생을 보낸 고향이다. 베들레헴 말 구유간에서 태어난 예수 님은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주의 사자가 이르는대로 이스라엘 땅에 되돌아와서 정착한 곳이 그 부모의 고향이기도 한 나사렛이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는 나사렛 을 떠나지만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항상 나사렛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크리스챤 이라는 말도 히브리어로는 노쯔리, 아랍어로는낫스라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는 나사렛사림들이라는 뜻이다.

 

17. 티베리아 (tiberiah)

 

티베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안에 위치하는 온천 휴양지이다. 티베리아는 주후 17년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티바스(herod antip as)가 건설한 도시로서, 로마 황제 티베리아스(tiberias)의 이름 을 따서 도시 이름을지었다. 이 도시가 세워진 후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이곳에 살기를 거부 하였으나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차츰 유대인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유태 지식인들이 이곳에 모였고 미슈나(mishnah)와 팔레스틴 탈무드(palestinian talmud)가 이곳에서 완성 되었다. 또한 히브리어에 모음과 구두법에 문법을 도입한 것도 이곳에서 였다고 한다. 따라서 유태인들도 티베리아를 그들의 4대 성도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 미슈나(mishnah) : 구약 율법(written law)에 대한 구전법(oral law)을 집대성한 것 으로서 주후 200년 경 완성
※ 탈무드(talmud) : 미슈나에 대한 논의, 해석, 주석, 설명을 총 집대성한 것으로 주후 5세기 경에 완성


18. 갈릴리 호수 (sea of galilee)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마 4:18)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 였다. 제자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으며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였다.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 속에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였다.  해면보다 그 수면이 200m 나 낮은 갈릴리 호수. 평상시에는 잔잔하고 맑으나 때때로 큰 폭풍으로 성난 파도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호수 연안은 중요한 교통의 요지 이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기름진 옥토를 갖고 있어서 주변 인구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 갖가지 농산물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있으며 갈릴리 호수의 물은 전 이스라엘 땅의 음료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까지 대부분 충당하는 생명선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남쪽으로 360km나 떨어져 있는 네게브 사막의 세데보케(ssede boque)까지 물을 공급해 준다. 호수에서 처음 시작되는 송수관은 큰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크지만 점차 가늘어 지면서 흡사 사람 몸의 혈관처럼 이리 저리 연결되어 전 국토를 적셔 주는 것이다.


19. 가버나움 (gapernaum)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 4:12-13) 고대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쪽 해안에 있었으며 당시에는 매우 번화해서 세관도 있었고 큰 회당도있었으며 주민들이 많았던 마을 이었다.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하셨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이적을 행함으로써 그의 신성과 전지전능함을 나타 내신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설교하셨고 문둥병자를 고치셨으며 중풍병으로 누운 종을 낳게 하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으며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셨으며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낫 게 하셨으며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펴게 하셨다.  배은망덕한 도시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은 적중하여서 이미 그 도시는 파괴되고 잊혀진지 오래이다. 지금의 가버나움은 호숫가 종려나무들 속에 폐허 더미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가버나움 터는 1905년에 발굴 되어서 가버나움 옛 회당을 발견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베드로의 집 터 위에 5세기 경에 세워졌던 유적들을 발굴하였다.

 

20. 가이사랴 (caesarea)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를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사 8:40) 가이샤라는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쯤 되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베니게 사람(phoenicaian)들에 의하여 세워졌던 이 도시는 헤롯 왕에 의하여 주전 20년에 크게 중건되어 훌륭한 항구도시로 만들어 진다.  헤롯은 로마 황제 가이샤(augustus ceasar)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도시를 가이샤라 라고 이름 붙인다. 로마 시대에 가이샤라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 가이샤라는 신약에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가이샤라는 사도바울과 베드로가 방문한 최초의 이방 도시 였으며 (행 10:1-24), 사도바울 이 로마로 보내지기 전에 이곳에 투옥되어 있었다.(행 23장 이하)   현재 가이샤라에는 로마시대의 야외극장과 수로(roman aqueduct), 십자군 시대의 성채 등이 발굴되고 있다

 

21. 욥바, 텔아비브 (jaffa, tel-aviv)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요나 1:3)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구약시대에는 솔로몬 왕이 욥바 항구를 통하여 레바논으로부터 백향목을 수입하였으며,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하여 욥바에서 배를 탄다. 신약시대에는 베드로가 욥바에서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죽은 것을 다시 살렸으며 피장이 시몬 (simon the tanner)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구약 시내로부터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던 욥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하이파 항구가 발전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잃는다. 주민들도 비좁은 욥바 시내에서 벗어나서 그 북쪽으로 신시가지를 이루며 옮겨 간다. 신시가지는 봄의 언덕 이라는 뜻을 가진 텔아비브라고 새로이 이름지어진다. 텔아비브는 순수한 유태인들의 도시로써 이스라엘 건국 후 급속히 인구가 증가한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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