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맘 사건과 길고양이

추천 : 0  |  비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  2015-10-17 12:18

떠돌이 고양이들을 길고양이라고 하지요. 요사이 방송들을 통하여서 이 길고양이들의 수난과 그들을 둘러싼 안타까운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데- 후유... 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갖추고 행하여야 할 정답은 무엇인지를 생각하여 보게 됩니다.

 

제가 사는 이 곳 강원도 산골짜기 마을에도 떠돌이 고양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거의 매일 서너 마리씩 떼로 와서는 야옹거리면서 저희 딸아이한테 밥을 얻어먹고 가곤 합니다. 대부분이 일정한 안전거리를 유지하지만 그중에는 사람에게 가까이 와서 애교를 부리는 놈도 있는 것을 보면 고양이들도 생존방식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형태로 교육을 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번식률도 상당하여 툭하면- 자기가 낳은 새끼들이 분명한 어린 고양이들을 쪼르르 데리고 와서 밥을 얻어 먹이기도 합니다.

 

쥐들이 없어져서 좋지 뭐...”

 

라고 하시는 분들도 의외로 상당합니다. 아마 시골이라서 들쥐들도 많고 또 그들로 인한 농사일의 피해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특히 요즘과 같은 수확기에 쥐로 인한논과 밭의 피해가 적지 않은 데다 들고양이들은 그러한 농가 소출물들에 대하여서는 피해를 주는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골치 아픈 들쥐들을 많이 잡아주기 때문에- 마을을 떠돌며 찾아오는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 주는 이들은 적지 않아서 집집마다 그 집의 단골고양이도 있습니다. 그들은 집 근처 후미진 곳에다가 새끼를 낳곤 하여서 그 개체 수가 자꾸만 늘어나고 있는데 이것도 불원간에 작지 않은 문제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용인의 한 고층 아파트 아래에서 고양이집을 만들다가 위로부터 떨어진 벽돌에 맞아 50대 아주머니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여 세상이 떠들썩하였습니다. 어제 오늘 사건 전말에 대한 당국의 발표를 보니 9살 난 초등학생 아이가 친구들과 아파트 옥상에서 중력시험놀이를 하면서 벽돌들을 아래로 던진 것이 그와 같은 참변을 부른 것이라고 합니다. -- 그 아주머니처럼 떠돌이 길고양이를 돌보아 주는 이를 캣맘이라고 한다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질 때에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을 둘러싼 감정의 대립으로 이웃 간에 일어난 불상사가 아닌가 하였는데 그것은 아닌 것으로는 판명이 되기는 하였습니다만...

 

호불호(好不好)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것이 분명히 갈린다.’는 말입니다. 길고양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그렇습니다. 특히 도심에서의 길고양이로 인한 생활피해는 의외로 심각하여 갑작스런 골목 안 등장에 놀라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싸우는 소리 등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아이들이 무서워하고 또 가끔은 어린 아이를 공격하여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하는 등등의 이유로 불호(不好)의 정도가 심하여진, 곧 아주 진저리를 치며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도심에서 살적에 새벽과 또는 한 밤 중에 골목길에서 마주치곤 하였던 길고양이들이 싫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망도 가지 않고 그 날카로운 눈으로 사람의 오고 감을 쭉 지켜보는 눈길의 오싹함과 저희들끼리 또는 동네 개들과 우당탕-퉁탕- 쫓고 쫓기는 소란스러움과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들이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심의 아파트 같은 주거지역에는 쥐의 출현같은 것으로 인한 고민이나 불편함도 거의 없고 하니까 이 곳 시골과는 달리 길고양이들의 존재는 오직 귀찮고 불편하고 아무데도 쓸데도 없는 것들이 소란을 피우고 위험하기도 하니 미움의 존재들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러한 길고양이들에게도 극진히 사랑을 베푸는 이들도 있으니 (예를 들면, 저희 큰 딸아이-!!) 떠도는 모습이 불쌍하여 먹을 것을 주고 어디 비 안 들이치는 후미진 곳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하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동물이라 할지라도 생명들이니만큼 마땅히 그러하여야 한다는 착하고 아름다운 생각과 마음들을 가진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 어떡합니까- 상기한 피해의 모양들 외에도 주차 된 자동차를 더럽혀 놓기도 하고 쓰레기장을 뒤져서 골목길을 온통 어질러 놓기도 하고 그렇게 된 더러운 발을 가지고 집안에도 몰래 들어와서 먹을 것을 찾으며 어질러 놓고는 부리나케 도망가는 등의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은 부글부글 마음속 미움냄비가 점점 더 끓게 되지요.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고대로부터 그러한 흔적과 기록이 있고 서양에서도 애완 고양이문화(!)는 오래 전부터 또한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기에 E. A. 포어의 검정고양이같은 문학작품들 속에도 종종 등장을 미술 쪽에서도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명작 그림들 속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사랑 받아 오고 있는 동물이라는 것에 대한 증거이지요.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개와 고양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끔찍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릴 적부터 집에서 개를 키워왔고 개와 같이 뛰어 놀기는 물론 어떤 때는 한 이불 덮고 자기도 같이 했던 터라-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면서 깊은 한숨을 쉬게 됩니다.

 

반세기 전만 하여도 고양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재수 없는 동물로 취급을 받았던 바- 괴기영화 속의 단골 등장동물이었고 저 어릴 적만 하여도 코로나 택시를 몰고 일 나가려던 이웃집 아저씨가 고양이 한 마리가 택시 앞을 가로 질러 뛰어가는 바람에-’ 그날 일진이 안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침을 퉤-- 뱉으면서 차를 돌려 세워놓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정도로 그러한 미신풍속이 크게 이상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는데 거기에 주범이자 주인공은 역시 고양이였습니다. 아침 출근길의 고양이 등장과 거울이 깨지는 것 등을 아주 싫어했던 시절이었고- 심지어는 아침 출근길에 여자가 자신의 앞길을 가로 질러 가는 것도 터부시했고 더하여 택시들이 그날의 첫 손님으로 여자승객을 태우지 않았던 때도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을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허허 하고 웃게 되기는 합니다만.

 

이렇듯 자꾸만 늘어나는 길고양이들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일까- 이미 우리나라는 법으로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의 학대를 엄히 금하고 있습니다. 그 동물들의 생명과 삶 자체를 존중하고 사랑해서라기보다는 그렇듯 학대하는 모습이 우리 인간사회에 여과 없이 그대로 비춰질 때에- 특히 아이들 교육에 생명경시와 폭력성의 반향 등에 대한 무감각적의 심리와 습관을 암암리에 심어줄 수도 있는 것이기에 좋은 것을 보고 배워야할 아이들의 초기 인격형성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비록 동물이라 하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얼굴과 몸짓과 울부짖음으로 자신의 고통의 표현을 적나라하게 하는 동물들을- 함부로 때리고 죽이는 모양을 아무런 여과 없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우리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야옹-야옹- -- 소리들이 우리들 속에서 결코 멈추어질 수 없고 언제까지라도 함께 가야만 하는 소리들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람들은 이들에 대한 법도 풍속도 좀 더 적극적으로 제정하고 갖추어 나가야할 문제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고양이와 개들이 각각 당면한 문제일 수만은 없고, 또한 이웃집 누군가의 일일 수만은 없으며 바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캣맘의 비극적 사건이 가뜩이나 산적한 정치적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회에 까지 의안으로 상정되어지는 것까지는 아직은 아니더라도- ‘동물과 사람들의 상관관계는 언제까지나 저 만큼 멀리 던져 놓아도 좋을-’ 가벼운 사안으로서의 대수롭지 않은 문제는 결코 아님을 주지하여야 합니다.

 

어쩌면 컴퓨터나 자동차 스마트 폰같은 생활 기기의 발전 경쟁보다도 사람의 능력과 영역 안에 있지 않은 생명을 가지고 우리 곁에 있다가 당장에 피를 흘리며 비명에 쓰러져 가고 있는 동물들에 대한 배려와 보살핌에 대한 풍속의 마련이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이어주기 위하여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이에 우리 사회가 깊은 호흡으로 선한 지혜를 모으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