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과 절제 속에서 고난당하는 이들과 함께 울라”

추천 : 0  |  비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  2017-04-12 10:38

고난주간을 맞아 각 교회가 특별새벽기도회 등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경건과 절제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특히 올해 부활절은 세월호 참사 3주기와 겹치는 만큼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한 고난당하는 이웃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고난주간은 사순절의 절정기로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을 준비하신 한 주간을 의미한다. 올해는 종려주일 다음 날인 10일부터 부활절 전날인 15일까지다.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경건과 절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라는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며 자신을 삶을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교계 일각에서는 고난주간에 무게중심을 두기보다 부활의 축복에만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십자가 없이 부활의 축복만 바라고 있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말이 있다.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도 있다는 뜻이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잃는 것이고 내려놓는 것이고 희생하는 것이고, 죽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사회적인 신뢰를 상실하고 날선 비판에 직면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주간을 맞아 경건과 절제 속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돌아봐야 한다. 말씀 묵상과 경건의 기도, 절제와 금식의 시간, 봉사와 구제의 손길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라
고난주간에는 특히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 기간 중에는 오락을 멀리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등 경건한 삶을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하지만 고난기간임에도 이를 제대로 지키는 성도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세속적 즐거움을 탐닉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그동안의 과오를 반성하고 새로워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먼저 교계 지도자들이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반성하고, 겸허한 성찰과 함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사회전반에 확산되어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불신을 종식하고, 교회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사회의 갈등극복과 경제난 및 환경재난으로 고통당하는 이웃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교회가 건넬 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먼저 경건함을 되찾아야 한다. 오직 교회가 한국사회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소망과 신뢰를 안겨줄 수 있도록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아울러 이 땅에 소외받은 이웃들을 위한 섬김과 나눔 사역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동안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만 치우쳤다면, 진정으로 소외된 이웃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고난주간에는 소외된 이웃들의 고통 받는 삶을 체험하고, 그들이 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보여주기식 나눔 실천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우러나는 섬김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말씀 묵상과 경건의 기도를 해야 한다. 고난주간을 느슨해진 신앙을 다시 회복시키고 닫혔던 영성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절제와 금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기간 중에는 화려한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오락이나 식도락 같은 세상적 즐거움에 미혹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가능하면 단 한끼라도 금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몸소 체험해보는 것도 좋다.


△공의정착 위한 구제와 나눔 실천
고난주간에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서의 경건과 절제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공의정착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는 삶 속에서 구제와 나눔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가능하다.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절의 의미를 간략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다. 그것을 단 한마디로 말한다면 사랑이다. 기독교의 생명이 사랑이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모든 행사를 ‘사랑의 실천’에 두고 진행한다면 분명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어 교회성장과 복음전도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사랑이란 곧 용서하고 주는 것인데,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고난주간을 통해 이웃을 용서하고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 수 있다면 기독교적인 공의정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당장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추운 겨울 거리 곳곳에 누워 떨고 있는 노숙자가 있고, 불의에 항거하다 감옥에 갇혀있는 양심수가 있고, 병든 몸을 가눌 수 없어 골방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환자가 있다.


그 뿐인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병든 몸을 이끌고, 하루에 몇 천원을 벌기위해 넝마주이를 하는 불쌍한 노인들도 있고, 힘 있고 가진 자들 중심으로 짜여 진 잘못된 사회 제도와 구조에 짓밟힌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이처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인 예수님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우리는 이들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아니면 들으면서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우리가 이들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과 함께 울고 아파하고 위로하고 싸워 주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독교의 참사랑은 교회강단의 미사여구가 아니고 값싼 동정이나 몇 마디 위로의 빈말이 아니다. 말없이 행하는 자기희생이다. 우리가 이 같은 희생의 정신, 십자가의 삶의 살아가야 한다.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고난주간 동안 우리의 손길을 통하여 어려운 이웃에게 뻗어 가야 한다.


△경건과 절제로 그리스도 고난에 동참
매년 부활절마다 한국교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행사들은 십자가의 고난에는 별 관심 없이 부활의 축복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추구하기보다는 대외적으로 세를 과시(?)하는 데에만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렇다 보니 대형 부활절 행사를 준비하는 곳에서는 불미스러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행사의 요직이 행사를 위한 헌금액수로 결정 된다느니, 보다 많은 성도들을 모으기 위해 설교는 큰 교회 누가 해야 한다는 식의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가 아닌 사람 중심의 예배, 자신을 뽐내고 높이는 예배가 ‘많은 사람이 모이는 성대한 부활절 예배’로 포장돼 한국교회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대형 부활절 예배가 크고 많은 것만을 추구하는 물량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한국교회의 저급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씁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크고 넓은 장소에 구름떼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 더 영광스런 것이냐는 반문이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다종교사회인 한국사회의 특성으로 보아 범교단적 행사를 치러 세(?)를 과시하는 것이 복음전도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복음전도는 복음전도고 거룩한 부활절예배는 부활절예배대로 따로 경건하게 드리기 위해 각 교회에서 거룩하게 드리는 것이 더욱 하나님께 영광된 예배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부활의 축복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경건과 절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우리들은 고난주간을 맞아 경건과 절제, 인내를 통해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섬김과 헌신, 나눔을 통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석구석에 전파하는 첨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발췌:기독교한국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