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오픈하우스    지식&정보    자료업!    게시판   목회자료실
베스트자료모음 클릭소나기 목회자이야기방 목회공간가이드
로그인 | 회원가입
아이디 로그인
비밀번호
아이디저장 | ID/PW찾기
목회공간 카테고리 more
전체보기
목회자 이야기방
- 자유 게시판
- 명사☆ 칼럼
- ☆동 영 상☆
- 목사☆쉼터
- ☆유 머 방☆
- 대화☆마당
- 교회☆탐방
- 유익한자료
- 성지순례실
- 사진겔러리
- 개혁이의 횡설수설
- 포토러브맨
- 선교사 코너
- 후원요청코너
- 아름다운후원
- 재정사용보고
- 목사후원교회
- 교회 행사 목사 소개
- 교단 교계 각 노회(연회)행사 소개
- 맛따라 여행따라
- 합동보수교단 (소식)
- 목사 산악회
- 황규식목사저서요청기록
- 이준목사 성경해석코너
- 강영원 선교사 영어성경해설
- 개혁리서치 시론 및 설교
- 합동보수교단 중국상행 3박4일 동행취재
목회공간 목회자 이야기방 글보기
신옥주 목사 방언은사 훼방
작성자 천마산 조목사 등록일 2013-08-06 조회수 2364 추천 14
 
 

신옥주 목사 무엇이 문제인가

신옥주 목사는 근간에 상당한 분량의 설교 강의를 공격적으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그의 공격적 언행은 일반 교회의 목사들이 성경을 모른다 하며 더 나아가서는 모두 거짓 선지자, 짐승이라고 계속 매도한다. 아니다. 물론 기독교 목회자들의 신행에 허물이 많은 시대이다. 그렇다고 짐승이라고 훼방하면 되는가? 누구나 범죄할 수도 회개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녀에게 크게 잘못된 것 핵심은 비유풀이식낱말맞추기로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종말론의 오류이다. 성경론, 기독론, 교회론, 은사론, 인간론, 종말론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성경을 사사로이 풀어 잘못된 가르침을 말과 글로 퍼뜨려대고 있으니 신목사는 적그리스도의 종노릇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잘못된 가르침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신 목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영원 전에 혼이 선재한다고 한다. 아니다. 그것은 반성경적이다. 창 1:27, 말 2:15절에 분명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것이 확실하다. '바라'=창조는 무에서 유의 창조이다. 또한 만약 혼이 영원전부터 선재한다면 타락과 원죄의 교리는 무너진다. 타락에 대한 정죄는 영혼이 지옥 형벌을 받는 것이다.

혼의 사람이 거듭나야 영혼이 된다고 비성경적인 소릴 한다. 원어 원어 하지 말고 그런 말이 맞나 조사해 봐라. 물론 영-루아흐-프뉴마와 혼-네페쉬-프쉬케로 구분되기는 한다. 그러나 혼과 영혼은 상호 교대적으로도 쓰이고 있으며 강조점이 어디냐에 따라 혼으로도 영혼으로도 달리 표현되고 있다.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르다고 한다. 구세주 메시야를 가리키는 동일한 말이다.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과정을 모르고 오해한 것이다. 예수는 음역이요 그리스도는 의역일 뿐이다. 문자와 영이 다르다고 한다.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이원론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이 영이라고 하신다. 진리의 성령이 신성인 그리스도란다. 삼위일체의 기본도 모르는 소리다. 태초부터 삼위는 계신다. 아들은 아들, 성령은 성령이시다. 영적 하나됨을 물리적 수학적 하나로 오해하면 안 된다. 그런 인식은 양태론적 이단이다. 초대교회부터 신목사 같은 주장은 이단이다.

또 지구는 종말하지(?) 않으며 변화할 뿐이며 마귀만 종말할 것이란다. 성경은 신천신지가 하늘로부터 임할 것이며 지금의 지구는 체질이 불에 풀어지듯 다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또 지금이 7일째 말세요 곧 천년왕국이 임할 것인데 2001년은 신년절이요 2010-2015년은 대속죄절이요 2015년은 장막절이란다. 그런 식의 계산이라면 6천년 지났으니 지금이 천년왕국 시대라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 탄생은 BC 5년 3~4월 즈음임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2014년은 사실은 그리스도 탄생 후 2018년인 셈이다. 성경에서 성도들에게 주어진 믿음의 도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단번에 주어진 동일한 말씀이다. 성경 어디에 종말이라고 말씀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피의 대속을 믿고 신자됨과 신자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새 계명을 어떤 환란과 유혹 속에서도 따라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고백하는 믿음을 지킬 따름이다(계 14:12).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말세가 왔다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말씀이 곧 마지막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성육신의 신비처럼 사람의 말이기도 하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것처럼 자신의 뜻을 인간과 나누기 위해 계시의 글을 주신 것이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온전히 인간이 되셨듯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것이다. 신목사처럼 영적인 뜻 운운하면서 기록된 말씀을 넘어서려는 것은 제멋대로 성경을 사용하는 죄악이다.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성경 기록 자체로 충분하다. 신목사는 겸손하게 중등과정 언어문화와 국어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또 성경을 해석할 때 주의할 두 가지 중요한 면이 있다. 하나는 성경 속의 신학이 통일성이 있다는 점이다. 원죄 아래 태어난 아담 자손들에게 한 분 성령의 영감으로 계시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신목사처럼 지난 시대와 지금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시대에는 다른 도가 주어지거나 다르게 성경을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시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대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신 것'이니(히 1:2) 성육신 후 이미 말세이다. 믿음의 도리는 동일하다. 아담 타락 이후 천하인간에 예수님 외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믿어 구속된 신자에게 또 다른 도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물론 종말이 가까워 온다는 의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초지일관 일맥상통 '단 번에 주어진 믿음의 도'일 뿐이다(유 1:3). 다른 도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도는 이미 더하거나 뺄 수 없이 완전하다. 단지 개인적 우주적 종말을 생각할 때마다 더 깨어 경성할 필요를 주님 친히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또 한편 성경 각권의 다양성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각각 다른 배경과 사건 속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이다. 시와 서신이 다르다. 묵시서와 지혜서가 다르다. 법조문과 역사서가 다르다. 구약은 모세오경을 기본으로 그후 역사적으로 다른 시대와 환경 속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들이다. 신약도 산상수훈을 기본으로 각각 다른 환경과 문제 속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들이다. 그러므로 신목사처럼 낱말맞추기를 하는 것은 성경해석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언어 차원에서는 구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이다. 그 언어들의 특성을 기반으로 해석해야 한다. 흔히 번역은 반역이란 속담이 있다. 서로 일치하지 않는 외국어 단어와 표현이 흔하기 때문이다. 신약은 헬라어이다. 당연히 그 언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시제의 예를 보자. 히브리어는 시제가 완료와 미완료 둘뿐이다. 신약 언어인 코이네 헬라어 시제는 대과거완료, 완료, 미완료, aorist, 현재, 미래, 미래완료가 있다. 우리 말은 히브리어와 가까우나 헬라어의 시제에는 못 미친다. 그러니 신약성경을 우리 말로만 보면 불분명한 표현이 종종 있다. 영어는 12시제가 있으나 aorist에 해당하는 시제가 없고 우리 말에는 있다. 생각 없이 히브리어 어법으로 신약을 보거나 그 반대로 보아서도 안 된다.

그의 낱말 맞추기의 어리석음의 한 예를 보라. 그는 한글 성경만 보고 구약과 창세기의 '방언'과 고린도전서의 '방언'을 연결한다. 우리 말 신약의 '방언'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글로싸(혀 또는 혀의 발성, 2:4)와 디알렉토(대화의 언어, 2:6)이다. 창세기의 방언은 디알렉토에 해당하고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글로싸이니 전혀 다른 말인 것이다. 구약 히브리어에는 라숀(, 언어/ 개역성경은 방언으로 번역)과 싸파(말단, 입술, 언어, 연설), 나바(영감에 의해 말하다, 예언하다/ 2:17,18은 요엘서를 인용하여 오순절 '방언은사-글로싸' = 영감적 발성 은사에 적용한다) 등이 있다.

번역성경인 우리 성경은 늘 조심해야 한다. 로마서나 히브리서의 율법과 갈라디아서의 율법 문제가 동일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한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동시에 성경 각권 각절마다 그 상황에 꼭 맞게 성육신한 말씀이 성경이다. 그 문맥, 배경, 시상, 의도를 주의하여 해석해야 한다. 신천지나 박태선, 문선명, 정명석 무리처럼 아무데서나 같은 단어를 찾아 맞추는 식으로 해석하면 당연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신옥주 목사는 신구약을 통으로 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와 예수님을 분리하면서 문자적 의미와 다른 의미, 온전한 율법 운운하며 기록된 말씀을 혼미케 하며 가상화한다. 또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단어를 중심으로 많은 성구들을 꿰어맞춘다. 또 한편으로는 '때를 따라 주는 양식'을 강조하며 일반적으로 잘 다루지 않는 종말론 계시록 같은 주제들을 많이 다룬다. 신옥주식 성경관은 신천지식과 유사하다. 신천지가 성경은 비유이며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곧 비유를 풀이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이만희는 본문을 언제나 영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육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를 묻는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온갖 알레고리 해석과 비약과 극도의 자의적 해석들을 거리낌 없이 행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근거는 그야말로 무식에서 온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다. 문자적 해석이 본문해석의 가장 기본적이며 본문해석의 기초상식임에도 그는 그것을 육적인 해석으로 치부하며 황당한 본문 해석을 일삼는다.

종종 중요한 부분을 원문의 뜻이라며 조립한다. 누가 지은 원어사전인지 모르나 사전을 참고하는 것은 일반화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그러나 사전의 의미항목을 모두 한 곳에 나열하며 연결시키는 것은 비상식적 사고이다. 왜냐하면 그 낱말이 그곳에서 불특정 다수의 모든 의미를 가지고 쓰이는 것이 아니요 그 문맥 상황 속에서 특정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인간 언어 행위 관습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말로 특정한 의사를 소통 전달하는 것이지 특별한 경우 외에는 한 말로 여러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것이다.

신목사는 또 반대로 번역된 문자적 단어들을 그 배경을 무시하고 뚝 떠어내서 혼미하고 저급한 낱말맞추기식 해석을 즐긴다. 대표적인 예로 방언 통역을 말하면서 요한계시록 17:15절을 인용하는 부분이다. 그 말씀에 말세에 음녀가 백성, 무리, 열방, 방언 위에 앉아있다. 그런데 이곳의 방언이라는 단어를 고전 12,14장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 방언에 연결한 후 '방언으로, 영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에 열매가 없으니 마음으로도 기도해야 한다'는 문맥에서도 오히려 중요한 뒷부분은 빼고 열매 없다 하지 않느냐 열매 없으면 심판의 대상이니 방언 은사 운동은 음녀의 종노릇 목회자, 사기꾼, 영혼을 죽이는 기계, 여의도귀신 들린 자들이라고 심한 욕설 폄훼하는 말을 무서워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내뱉고 있다.

또 고전 12:6부터 길게 방언 사용의 주의 사항 중 목적 외 사용, , 기도의 은사인데 대중 앞에서 설교하듯 말하는 것을 금지한 이유는 알아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부분을, 앞뒤 문맥 다 잘라내고 무조건 방언은 허공에다 말하는 무의미한 짓이라며 훼방하는 데는 너무나 어처구니없어 상식을 가진 사람인지 걱정스러울 노릇이다. 오늘날로 보면 새 신자들인 고린도교인들이 대표적으로 방언 은사를 위시하여 은사 사용에 서툰 것을 바로잡아 주는 글의 일부분일 뿐이다.

아무튼 계 17:15의 방언도 전후의 문맥상 일반적 의미의 '언어들'일 뿐 방언 은사가 아니다. 어떤 사람도 신 목사처럼 그 부분을 방언은사로 보지 않는다. 결국 신목사는 '개인적인 방언 은사만 주장하며~ 믿고 가는 지도자와 교인들은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성경과 다른 거짓말] 62쪽과 설교들 다수에서)'고 심판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계 14:6, 17:15 등의 방언은 전후의 문맥상 일반적 의미의 '언어들', 즉 모든 언어를 쓰는 족속들을 표현하는 대유법(한 부분으로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법)적 언어표현일 뿐이다.


또 신옥주 목사는 근간에 방언 운동을 우리나라 순복음교회가 세계적으로 보급하였다는 둥 잘못된 지식을 자주 말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 문서 기록을 보면 방언은사는 사실 교회사 가운데 중세 타락시기에 기록상 조금 덜 나타나지만 교회 역사에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부흥 운동의 영향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특별히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크게 일어나 지금은 세계 기독교인들의 대다수가 방언을 인정하여 경험하고 있다.

말세에 기도의 은사로 주어진 성령이 주신 방언의 은사를 훼방하는 처사는 성령님의 역사는 아니다. 신목사 자신도 방언을 받아 큰 은혜를 누린 적이 있다고 하면서도 모순되게도 방언은사를 훼방하는 말을 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성령충만한 가운데 방언을 받고 얼마나 크게 변화하였는가?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체험자들이 있는가? 물론 방언 받는 사람의 충만함의 차이와 방언 받은 후의 활용상태에 따라 큰 차이는 있다. 하여튼 방언의 은사뿐만 아니라 모든 은사가 각각 그 은사의 목적을 따라 유익하기에 성령께서 주신 것이다(고전 12:7). 그러므로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명백히 기록해 놓으셨다(고전 14:39). 성령으로 기도하는 일이 이성 너머의 은사이기에 이해할 수 없다 해도 방언은사는 하나님께서 말세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엄청난 능력의 기도은사이다.

신 옥주 목사의 해석은 성경 본문을 성령으로 감동되어 기록한 저자의 일반적 의도를 영적 의미 운운하여 왜곡하며 혼미케 하는 짓이다. 자기 생각에 맞는 성경 단어 성구들을 찾아 여기저기서 자연스럽지 않은데도 비틀어 왜곡하여 자기 의도에 짜 맞추는 미혹이다. 이런 해석은 그 스스로도 자주 언급하는바 베드로 사도를 위시하여 성경에서 누누이 경계하는 '억지 해석'이다. 스스로 '제 맘대로 푸는' 사적 성경 이용 장사짓거리이다.
종교개혁의 원리에 따라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연스런 문자적 의미를 따르는 것이다. 천주교의 타락이 무엇인가? 문자적 계시를 교황권이 부자연스러운데도 제멋대로 왜곡해석한 것이었다. 바른 짝찾기란 문자적으로 직접 해석되지 않을 경우 그 사건과 배경과 주제에 따라 서로 해석해 주는 절이나 문단의 짝을 전후 문맥이나 그 성경이나 다른 성경에서 찾는 것이다. 성경의 신학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목사식으로 제멋대로 배경이나 사건을 무시한채 낱말맞추기를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성경은 통일성과 함께 다양성도 갖고 있기에 한 권이면서 동시에 신구약이 다르고 66권이 각각 독립적 독특성도 갖고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과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하는 율법의 용도가 각각 다른 것을 생각해 보라.
생각해 보라. 신옥주 목사를 따르는 사람들이여! 성경 계시의 목적은 분명하다. 딤후 3:14-17에 말씀한 대로 성경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함에 온전케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신 목사식 낱말놀이가 남들은 모르는 어떤 특별한 선한 일을 교훈하고 있는가? 아니다.
억지스럽게 성경 구절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높이기 위해 기존 교회와 목회자들을 훼방 모멸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녀의 설교가 신자들로 어떤 더 선한 사람으로 더 선한 행위로 인도하며 공헌하는 점이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을 균형 있게 더 잘 지키게 하는가? 아니다. 신목사의 무리들은 비방 훼방 심판 저주로 막장 시간으로 가는 모양이다. 그런 행사는 영혼 도적질이며 간교한 말질로 하나님의 말씀을 혼미케 하며 오남용능멸하는 짓거리이다. 참된 믿음의 도리로 돌아오라.

신옥주 목사에 답함 - 성경적 방언관 고찰

1. 방언이란?

신옥주 목사가 성경과 교회 역사와 세계 교회에 일반화한 방언에 대한 기존 개념을 아주 강하게 정면으로 무너뜨리려 한다. 방언에 대한 박사 논문이나 책만 해도 얼마나 많은가? 신옥주 목사는 방언 은사에 대한 기독교 역사와 신학과 세계적으로 공교회에 일반화한 개념을 왜곡하여 결과적으로 소멸시키며 부정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는 방언은 영으로 기도, 찬양, 감사, 축복하는 은사이다(고전 14:2, 14-16). 때때로 방언은 예언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는 통역이 있을 때만 하라고 한다(고전 14:27,28). 그런데 신목사는 성경 구절을 여기저기서 짜 맞추면서 알레고리적으로 푸는 자신의 '사사로운 생각'을 성경적 방언통역이라고 강변한다. 성경이나 그 누가 성경이 하늘나라 방언이라고 하는가? 그 중요한 문제를 성경 어디에 그리고 사도들이나 그 직계 제자 속사도들 중 누가 신목사처럼 말한 적이 있는가? 결코 그런 적이 없다.

신옥주 목사는 여러 성구들을 짜 맞춰 성경이 하늘나라 방언이라 하고 결국 방언은사주의자들은 아주 무서운 살인 기계, 사기꾼이라고 공격한다. 그리고는 신천지나 정명석이나 안상홍-장길자나 다른 이단자처럼 자신이 진리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아합왕 때의 미가야 선지자 같은 유일한 참 선지자인 것처럼 말한다. 이것을 합리화하는 논리로 신옥주 목사는 역사를 7일 역사라면서 지난 6일 즉, 6천년과 지금 이후를 구분하려 한다. 결국 자신이 특별한 선지자가 되려는 결과이다. 스스로 그 선지자 된 신 목사는 '성경이 방언'인데 다가온 7일에는 자신이 통역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자기만이 말세에 알곡을 모으는 참 선지자라고 세뇌시키려 한다. 베드로 사도가 하나님께서 그 자녀 된 신자들이 다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기다린다고 한 성경구절을 창세기에 엮어서 지금이 우주적 7일 째라고 한다. 물론 성령 운동 진영이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나 지도자나 교인들 공히 성결한 삶에 무너진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 원인을 방언에 대한 개념정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식의 신목사의 생각은 어느 모로 보나 옳지 않다. 성경이 방언을 신목사식이 아니라 은사방언으로 명확히 계시하고 있고 방언을 통해 놀랍도록 변화받고 성결한 삶을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2. 방언의 기원

방언은 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직접 예언하신 말씀에서 언명된 신자에게 따르는 표적들 중 한 은사이다(16:17). 예언하신 그대로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에서 120문도가 체험한 이후 출현한다. 이 오순절 사건의 방언의 정체에 대해서는 오순절주의와 개혁주의 간에 약간의 견해 차이를 보인다. '다른 나라 말뿐'인가 '알지 못하는 방언 은사를 중심으로 한 일부 다른 나라 말도'인가에 대한 차이일 뿐 '은사로 주어진 말'인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 오순절날 아침에 성령 충만하여 방언 말하는 사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보자. 먼저 15개 이상의 나라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독한 새 술에 취한 것처럼 지껄인다고 비웃는다. 베드로 사도가 즉시 이 현상을 설명하기를 이것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의 성취라고 설교한다. 몇 년 후에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 가정의 방언 사건을 11장에서 처음 오순절에 체험한 것과 동일하다고 설명한다(10:44-47, 11:15-17). 고넬료의 식구들은 은사 방언로 하나님을 높이며 말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120문도가 성령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한 방언은 자신이 배운 적이 없는 말인데 다른 나라 말(소위 대인방언)일 때도 있으나 기도를 위한 은사방언(대신방언)일 때가 대부분인 것을 알 수 있다. 근간에도 은사 운동의 방언 받는 현장에 실제로 종종 나타난 이런 대인 방언현상에 대한 기록들과 증언들이 있다. 또 방언은 부수적 기능으로 통역이 있을 때는 예언 은사와 같이 쓰이기도 한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방언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도행전 216~21절에서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은 문맥과 배경을 조금 더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종말적 징조와 환란 중에 하나님께서 무장시켜 주시는 은사라는 것이다.

모세오경은 성경의 근본이다. 그래서 사마리아 유대교인들은 지금도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모든 예언서나 성문서들은 오경의 설명일 뿐이다. 오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 말씀으로 그 백성과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선지자들을 세워서 그 계약으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요엘 예언의 뿌리도 오경에서 찾아야 한다. 민수기 11장의 광야 생활에서 모세는 자기 혼자 이삼백만의 이스라엘을 인도하다 지친다. 그때 하나님은 70인의 지도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신다. 그들이 다 한 동안 '예언'을 한다. *'예언''말씀을 전하는 예언'이라기보다 '강신 현상으로 나타난 영적 발성'임을 당시 상황을 볼 때도, 타종교나 구약의 다른 곳의 강신 현상과 오순절 경험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어 자체가 성령으로 말하는 신약의 방언이 '혀의 말'을 뜻하는 방언(2:4 글로싸-방언들)과 성령으로 들리는 '대화의 말'을 뜻하는 방언(2:6 디알렉토-방언)이 다르다. 방언 은사로 말했는데 들리기는 자기 나라 말로 들린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 많은 오순절 순례객들과 120문도가 방언으로 외치는 소리가 본토 유대인들에겐 술취한 듯이 시끄럽기만 한데 16개국에서 온 사람들에겐 일시적으로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임해 자기 나라 말로 들린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해 베드로가 바로 곧 설명해 주는 내용이 사도행전 2장의 설교이다. 민수기와 사무엘상 10장과 19장의 예언이라는 단어도 혀의 말임에 강조점을 둔 '나바'라는 단어이다. 나바는 신약의 은사 중 발성의 은사(방언, 예언의 은사)를 통칭하는 말에 해당하다. 그때 70인 중 두 사람이 회막에 나가지 않고 진에 머물러 있었는데도 동일한 현상을 경험한다. 여호수아가 그치게 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말에 모세가 대답한다.

(11: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모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다 성령을 받아 선지자 되기를 원한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예언하는 것을 성령을 받은 것으로 이해한 부분이다. 또 사무엘 때 사울 왕이 체험한 성령으로 예언한 사건과 그것을 주변 사람들이 사울도 선지자가 되었느냐고 의아해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는 예언의 영으로 성령이 부어지는 종말의 때를 기다린다. 선지자들도 이때를 예언한다. 특히 요엘 선지자는 예언의 영이 말세에 모든 육체에 부어진다고 한다.

3. 방언의 의의

예수님은 그 예언의 성취자이시다. 부활 승천하시어 승귀하신 주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누누이 약속하신 그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그 일을 하신다. 히브리서 61,2절에서는 그리스도 도(), 말씀, 교훈에 대해 요약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 도는,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이라고 한다. 그 중에 세례들과 안수를 말씀한다. 세례들 즉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그리스도 도에서 핵심요소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신학자들이 아닌 성경 자체에서 근본적으로 정의한 성령세례는 방언을 말하는 오순절적 성령 충만 사건이다(2:33, 11:15-17). 또한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는 이 은사는 모든 육체에 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24:49, 2:33). 그리고 성경의 약속은 언약이기에 이것도 무조건 주어짐이 아니라 사모하며 회개하며 말씀 듣다가, 안수 받거나, 기도할 때 주어진다고 한다(11:13).

그런데 왜 예수님은 선지자 즉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데에 성령으로 세례 받아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는 오순절 사건을 강조한 것인가? 동시에 성령님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 오순절 사건을 예언하시면서 각양 종말의 징조들과 함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종말론적 환란의 때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성령이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10:15-39, 24:9-13).

예수님의 명령대로 주님 승천하신 후 열흘 간 기도한 120문도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다 방언을 말한다. 그 오순절 방언 사건을 베드로는 구약에 예언된 '예언' 사건이라고 한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구약 예언의 핵심은 성령을 받아 '선지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늘 반대와 핍박이 있었음을 증거한다. 예수님은 이 예언 성취를 '권능을 받아 내 증인 되는 것'이라고 하신다(1:8). 오순절 전에 제자들은 이미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을 다 배웠다. 그런데 제자가 되었어도 그들은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한다. 사도행전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아버지께 받아 부어주시는 그 능력이 임하는 현장을 보고한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 것에서 시작된다. 방언을 받은 그들이 바로 세상이 감당 못할 하늘의 능력자들이다. 그들은 전에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친 자들이다. 그런데 방언을 말하는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수의 순교적 증인이 된다.

방언과 이 능력의 관계가 무엇인가? 영으로 기도하는 것과 이 능력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영으로 비밀을 말함’(고전 14:2),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8:26),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8:27),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함’(6:18), ‘성령으로 기도’(1:20)하는 것이라고 한다. 바른 기도엔 응답이 있다. 예수의 증인 되어 사는 길에는 부지불식간에 만나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 더구나 말세에는 예언된 대로 신자에 대한 핍박과 환란이 있다.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그 모든 것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다(13:36, 16:2,33). 그러므로 말세를 당한 제자들을 향해 주 예수님도, 바울도, 베드로도,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교훈도 기도와 말씀에 깨어 있으라고 누누이 강조하시는 것이다(24:42, 고전 15:34, 6:18, 벧전 5:8, 16:15).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 충만하여 방언을 받은 사도들이라도 다시 기도할 때에 하늘의 능력으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4:29-31).

4. 방언 은사 활용의 주의 사항

그러므로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한 바울 사도의 교훈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고전 14:39,40). 바울 사도는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많이 함을 감사하며(고전 14:18) 모든 성도가 다 방언 말하게 되기를 소원한다(고전 14:5). 고린도교회에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이 은사 사용에 미숙한 이들이 있어 여러 교훈을 주었다. 방언으로 공예배시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 것과 예언처럼 쓰일 때에는 반드시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는 가운데 할 것이며 질서 가운데 하라고 한다.

(고전 14:39,40)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특히 방언에 대해 오해하기 쉬운 부분들이 있다. 고린도전서 1414절에서 영으로 기도할 때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목사는 이것을 왜곡하여 열매 없는 것은 심판이니 어쩌느니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맥을 따라 읽어 보면 어렵지 않은 말씀이다. 영으로 기도할 때는 영에 열매가 있고 마음으로 기도할 때는 마음의 열매가 있으니 2중주 합주처럼 방언으로 기도할 때 속마음으로도 기도하라는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그 영이 비밀을 기도하는 것이니 비밀이란 당시에는 알지 못하는 일들이다. 또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방언 통역의 은사로 꼭 필요한 것을 교회 안에 알려주신다. 물론 방언 통역의 은사를 구하라 하시며 주님을 더 사랑하는 이들이 더 풍성한 교제를 누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방언 받은 자는 그 위에 더해서 예언의 은사를 구하라고 한다. 성경에서 예언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한 예언의 은사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424-26절을 보면 예언을 통해 책망’, ‘판단’, ‘숨은 일이 드러남을 언급하고 있으니 이것은 은사적 예언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여기에서 언급하는 방언도 방언은사를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19절에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한 것은 방언의 불필요성을 말하는가? 이것은 단순한 오해인데 성경을 부주의하게 읽은 탓이다. 방언과 예언의 활용에 대해 교훈하면서 방언은 개인 기도용이요 예언은 공적 교훈용이니 공적 교훈 장면에 방언을 말함은 바른 활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422절에서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요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 한다. 여기서 위하는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eis’이다. 직역하면 ‘~에게는정도의 뜻이다. 고린도전서 1423-25절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 방언을 보고는 미쳤다 할 것이나 예언을 듣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고 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무슨 뜻인지 모르고 신목사는 여기 봐라! 방언은 믿지 않는 자의 표적이라 했지 않느냐? 그러니 방언 은사를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 불신자들이다.’라고 한다. 그 문단이 길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문맥상 이것은 방언과 예언의 활용에 대한 교훈의 일부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해하기 쉽다. 바울 사도가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한 데서 볼 수 있듯이 당시 교회 안에서 방언은 흔한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교회 밖의 믿지 않는 자들에게나 표적인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들 중에 새 방언이 들어 있다(16:17). 방언은 불신자들에게는 체험 못한 표적이지만 신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두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니 믿음으로 구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다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은사이다. 그러나 예언의 은사는 신자라고 아무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도 희귀한 은사이니 예언은 신자들에게도 표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 위하는으로 번역된 헬라어 ‘’eis’‘~에게는정도의 뜻이다.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활용할 때 그 목적이나 대상에 따라 모든 것을 적절하게 하고 질서대로 해야 할 것’(고전 14:40)을 마지막에 다시 결론적으로 강조하여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5. 방언 말하기를 금하는 신목사의 오류

사도행전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현장을 보여준다. 그 원동력은 성령 충만의 시작인 오순절 성령 세례 사건이다. 신목사의 방언관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의 엄청난 선교 현장을 간과하는 오해이다. 20세기 이후의 세계적 기독교의 급속한 부흥은 성령 충만으로 방언 말하는 오순절운동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 한국교회의 급속한 부흥도 오순절 성령세례 운동하는 조용기 목사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성령 충만한 부흥 운동을 일으켜 무수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목회자들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능력을 받는 기도의 기본으로 말하지 않는 이를 찾아 볼 수 없다.

그 자신이 방언의 은사를 받아 크게 행복했었고 기도할 때는 손이 커지는 것 같고 신유은사가 강하게 나타나기도 했다는데 그후 은사에 대해 제대로 지도를 받아보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설교에서 방언 은사 운동을 모욕하는 이유를 추측할 만하다. 신 목사는 지금이 우주적 7일이기에 본질적으로 불신자를 모으는 교회 개척이나 전도의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이제는 자신처럼 기존 신자들에게 다시 예언하며 방언통역을 해 줘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교회의 양들을 유인하는 일을 목적으로 하니 불신자 전도가 소홀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전도 현장을 떠나면 목회적 은사가 중요시되니 성령의 능력적 은사에 대한 필요성은 희미해지고 소홀히 될 수밖에 없다.

신목사의 생각은 은사나 능력에 대한 성경적 기본 목적을 간과하는 것이다. 은사는 기본적으로 전도와 선교 현장을 위한 것이요 더 나아가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16, 고전 12,14, 4). 성경의 기초인 출애굽 사상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 현현은 이스라엘로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 알고 믿게 하려 함이다.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하여서도 그 사랑받는 제자 요한이 그 복음서에서 그리 말하지 않는가? 많은 능력과 기적과 이사들을 다 기록할 수 없으나 요한복음에 몇몇을 기록한 것은 그것들이 표적으로써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그 표적들을 인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20:31). 공관복음도 예수님은 늘 먼저 기적을 행하시고 그 제자 된 자들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는가?

은사를 통해 불신자가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면 이제는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잘 먹여 양육해 줘야 한다. 은사에만 머물고 삶의 열매를 소홀히 하는 이들이 많아 신목사 같은 이의 오해도 생긴다. 교회 지도자들의 허물들이 인구에 회자됨이 실로 적지 않다. 그러나 성경에 고라의 당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드린 성물은 거룩하다 하시듯이 하나님의 은사는 그 자체로 거룩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성령의 은사를 멸시하고 방언 받는 성령세례운동 하는 주의 종들을 모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방언을 받고 변화된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방언 기도 생활을 가장 특별한 은사로 활용하는 성도들이 참으로 많다. 성령의 은사 방언으로 신자 개개인이 인간적 지정의의 연약함과 한계를 넘어서는 기도가 가능하다(8:26,27). 이 신비한 방언 은사로 기도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용사로 세워 놀라운 말세의 추수꾼 만들고(1:8) 알곡 되게 하시려는 것(3:11)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신목사는 더 이상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고 회개하고 성경 지식을 재정립하길 바란다.

-신옥주 목사는 누군가?-

신옥주 목사는 7년동안 평촌에서 전도사로 빌라델비아교회를 개척하다 스승 ???목사에게 넘겨주고 중국선교사로 3년 동안 힘들게 섬겼고 귀국하여 다시 국내 목회를 하며 세미나를 열고 20098'바울사관 아카데미'라는 단체를 개원하고 교회도 다시 시작했다. 이사장은 이기웅 목사가, 그리고 원장은 자신이 맡았다. 현재 한국 기독교영적군사훈련원 명예원장, 경기도 과천시 주암동 159번지 대한예수교장로회 은혜로 교회와 이천시에 통신판매회사 솔로몬의지혜를 두고 1개월, 3개월, 6개월, 12개월 과정으로 온라인 유료 강좌를 운영하며 활동하고 있다. 월간 현대종교(탁지원 소장, 이단이나 이단성 시비가 있는 단체에 대해 집중조명)에서는 이미 이단성 시비로 상당한 자료와 글들이 올라와 있다(201110월호). 일반교회를 부정하고 교인을 유인하며 교회 역사상 이상한 성경해석, 교회 예배 훼방, 가정 붕괴 등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월간 현대종교는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신목사는 '전 성경이 방언으로 기록되어 있어 자신이 통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존 교회의 성경해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해석을 하면서 전국적인 세미나를 개최, 세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는 일본에까지 그 세를 확장해서 야마나시를 위시하여 '개척' 활동하고 있다. 초청장 등에 실려 있는 신옥주 목사의 약력에 있는 예장(합동) 서울신학교, 예장 중앙총회신학대학원,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목회학과 졸업, 핸더슨신학대학원 명예교육학 박사 - *여기서 말하는 '합동'교단은 사당동 총신대학교와 사랑의 교회(오정현목사)가 소속되어 있는 건전한 합동교단과는 다른 비주류 군소교단이며 그녀가 거친 당시 비주류 신학교육기관들에서 기초신학교육의 부실한 실상이 보인다. ()합동(해외)총회 서북노회 소속으로 신분세탁 중이다.

한국기독교방송 등 유사 기관과 저명 인사 초청으로 정체 위장 행위 등에 관해; 사설 인터넷 방송 KCBSCBS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기독교 유명 기관 유사 명칭을 사용하고, 신목사의 가르침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저명인사를 초청 선전하며서도 실제 설교로는 그들을 모욕하는 이중행각을 보인다. 왜 국내 목회를 하면서 떳떳치 못하게 옮겨다니며 해외총회노회에 소속하고 있는가? 그녀가 여기저기 들은 풍월은 있는 듯해 보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천연덕스레 떠드는 것은 기초신학교육을 제대로 거쳐야 할 필요성을 웅변하는 듯하다. 비유풀이 짝풀이 운운하며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계시된 성경을 심히 혼미케 한다. 교회 전체를 부정하며 온오프의 세미나에 초대하는 식으로 해서 기존 신자들을 데려가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특별한 주의가 요청된다.

신옥주 목사 저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방언” ="방언통역과 방언"으로 제목만 바꿔 재출간.
3•성경 보는 방법
4•육에 속한 사람
성경과 다른 거짓말


$ 1.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세줄, 2009. 9. 10., A5, 270, 11,000)->방언통역과 방언으로 개명 재출판

홈페이지 소개글: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는 방언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지식을 전달하고자 방언에 대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름에 대한 해답으로 원문을 제시하고 있다. 방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줄 책이다.

책을 내면서

서론

본론

첫째, 우리가 들어야 하는 신적언어

둘째,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에 대한 '하나님의 뜻'

셋째,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각종 방언과 방언들 통역함에 대한 정의

넷째,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사람의 방언'에 대한 정의

다섯째, 사도행전에 기록된 방언

여섯째, '방언'이 온전해지려면 다시 예언해야 한다

결론

$ 2. - 한국 기독교 130- 성경과 다른 거짓말 - 이 세상과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

2013. 5. 20. 은혜로선교회출판사 간

차례

서언

본말

거짓말1. 성령의 불 받아라.

거짓말2. 방언 기도는 하나님께 비밀로 하는 기도이다.

거짓말3. 짐승 표를 받아도 구원과 상관이 없다.

거짓말4. 기도만 하면 다 들어 주신다.

거짓말5. 동이빨을 금이빨로 바꾸시는 성령님.

거짓말6. 짧은 다리가 길어지도록 하시는 성령님

거짓말7. 안수기도 받으면 쓰러지게 하시는 성령님

거짓말8. 자살해도 천국 갔다.

거짓말9.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

거짓말10.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술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맺는 말

추천하기 수정 삭제 목록
번호 제 목 글쓴이 조회 추천
전인적 목회사역이 대안입니다(이충선 목회대학원장)   전인목회상담 3918 4
7080 세대 쫄병수첩 4월10일 출간합니다 .   개혁이 5069 5
웨딩 피에스타 를 소개 합니다 .   개혁이 6785 3
현대수콘도미니엄 이용에대해 목사 사이트 회원 목사님들께 (뉴 소...   목사회 9814 3
믿음으로 낳은 아들 입니다 .   개혁이 9325 12
기독지혜사의 모든 노하우 총집합체   이성일 13206 18
마닐라 신학대학 2011년도 스케쥴      [1] paulino 13462 11
moksa.co.kr 가입 하시고 연락주시면 [황규식목사 저서 ...      [52] 목사회 12200 39
16884 투잡 뛰는 목회자       뉴미션 12 0
16883 長春 돌아 돌아 ...(2)      개혁이 106 0
16882 누가 구원을 잃을 수 없는 사람인가?      이준 42 0
16881      가라지가 가라지라! 웃기는 양반!      진리사수! 20 0
16880 십자가에 달리신예수는요 ?      강릉최 24 0
16879 구원을 잃을수 없는이유       오목사 37 0
16878      참! 좋은 글이네요! 허나 구원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진리사수! 23 0
16877 청와대게시판에다 "땅굴"에대한 경각심을 가지라고 올린글/   전도꾼/ 조 무웅 목사 30 0
16876 천주교문제 마리아 숭배    이단들 52 0
16875 부산의오지성목사가쓴== 조무웅목사에대한"선입관" 이무너지다   전도꾼/조무웅목사 48 0
16874 長春 돌아 돌아 ...(1)   개혁이 141 0
16873      : 長春 돌아 돌아 ...(1)   한중한 49 0
16872        : : 長春 돌아 돌아 ...(1)      이준 26 0
16871          : : : 長春 돌아 돌아 ...(1)      혁이 21 0
16870 참연보생활 성공 합시다    노사랑글 퍼오미 74 0
쓰기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다음     다음10페이지  
클릭 소나기 more
인물설교
이동원목사설교100편
신천지 이만희교주 몸의...
전도설교 묶음
예화 묶음
심방설교
장례식 설교 모음
신천지 이만희(본명 이...
목회자 이야기방 more
한국교단 홈페이지   
야후 '검색' 창 에...  
목사 사이트 후원 이...  
전도간증 제4탄= 괴...  
전도행전 제17탄== ...  
목사님들만의 공간   
합동총회세세선교회 에...  
이단 단체 숙지하기   
교육 신학패키지신학단과실용/음악상담/세계관사이버신학교학위
미디어 뉴스사설공식성명서토론설문
지식 기독교컴퓨터음악자연과학
컬럼 기독교직장사회문화정치자유기고
블로그 정치경제사회문화
이야기 교회이야기10대20대30대40대50대60대이상
자료 주일학교설교컴퓨터일반자료
목회 설교자료신학자료예화자료기타자료이야기방
회사소개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고객센타          광고문의          제휴문의
개인정보 관리 책임자 정관진 | master@moksa.co.kr
주소 : 서울 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02-986-3834 | Copyright ⓒ 2006 Let’sGOD. All Rights Reserved.